어김없이 ‘흑룡의 해’인 임진년(壬辰年) 한해가 지고 ‘뱀의 해’인 계사년(癸巳年) 새해가 밝아왔다. 신년을 맞이하면서 덕담을 나눈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중순으로 접어든다. 요즘 사람들은 참으로 바쁘게 사는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 “시간이 없어서”다. 시간이 없어서 가족과도 함께 하지 못하고 취미생활도 못하고 운동은 물론 여행 같은 것은 꿈도 꿔보지 못할 정도다.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인데 무엇이 바빠 시간이 없다는 것일까.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은 환영을 받는다. 빠른 통신, 빠른 서비스, 빠르게 나오는 음식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어야 할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주위를 훑어보면 모두가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뿐이다.

안아프지 않은 세대도 없다. 젊은이부터 늙은이까지 온통 아프다는 소리뿐이다. 어느 이동통신사의 TV광고가 문득 떠오른다. ‘빠름, 빠름, 빠름…’이 ‘아픔, 아픔, 아픔’으로 들려도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나는 잘된다’ ‘돈 많이 벌어 행복하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 실제로 건강하면서도 돈도 잘 버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말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바쁘게 살며 죽는 소리만 하고 살아왔는지? 그런 환경탓일까. 서점에 가서 시집 코너에 가보면 대체적으로 ‘아픔’이 대세다. 시집이나 에세이집 제목을 보아도 모두가 ‘아픔’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시집이 지난 12년판 아픔, 치유, 위로증후군에 불을 붙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잠시 아무리 시간이 없고 아프다해도 우리의 삶을 조용히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과연 행복했던 때는 있었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던 어린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 어린 나이 때는 무엇이든지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말하면 거의가 다 해결되었다. 엄마란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위대한 존재로 비쳐졌다. 적어도 어린아이에게 보이기는 ‘전지전능하신’ 사람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바쁘게 살고, 아프기만 한 우리가 구두코만 바라보며 바삐 걸을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서 넓고 푸른 하늘을 닮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볼 여유가 없다. 그저 어둡고 막막하기만 하다.

도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도둑이고, 천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천사이듯 하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은 곧 하늘이 된다. 내가 하늘의 마음을 닮아 살면 내가 하늘처럼 되고 내가 하늘이 되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거다. 사람의 마음은 마음 보따리 안에 있다. 그 마음 보따리 안에 들어있는 마음을 우리는 ‘감정’이라고도 칭한다. 그런 감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용’에서는 한마디로 요약해 ‘희로애락’이라 했는데 희로애락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중용’에서는 속(內)이라는 뜻에서 중(中)이라 표현했다. 흔히 사람의 감정이 미처 나타나기 전의 상태가 중이라는 것이다. 그 중(中)에서 나타나는 감정이 자기중심적, 계산에 의해 왜곡되면 남과 갈등하게 되지만 똑바로 나오면 주위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하늘의 마음이고 하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하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늘 마음이 주도하지만, 탐욕으로 사는 사람은 탐욕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하늘 마음이 주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바른 사람이지만, 욕심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거꾸로 서서 사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천지가 뒤바뀐 삶을 사는 것이다. 천지가 거꾸로 되어있고, 만물이 거꾸로 자라는 곳, 그곳은 바로 지옥이다.

이에 비해 하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바로 서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머리 위에 하늘이 있고 발 밑에 땅이 있다. 그리고 만물이 모두 제대로 자란다. 하늘 마음으로 살면 바로 천국이다. ‘해가 가고 달이 가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답답한 현실을 잊으려고 사람들은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춰봐도 깨어나면 언제나 똑같은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일상(日常)에 찌든 삶을 사는 우리지만 간혹 멈춰 서서 대자연의 섭리로 핀 들꽃과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보자. 비록 삶이 힘들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봄이면 키가 작은 꽃들이 피고, 여름이면 쑥쑥 자라서 피고, 가을이면 단단하고 여문 꽃들이 되고, 겨울이면 강하고 매몰찬 꽃들이 피어나는 꽃들의 끈기와 질서의 조화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런 여유의 마음은 꼭 한가한 사람의 것만은 아니다. 시간은 아낀다고 모아지는 것도 아니고 또 바삐 쓴다고 더 많이, 빨리 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같은 시간이라도 우리의 감정 여하에 따라 빨리 가기도, 느리게 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할 뿐이다. 시간은 엔데의 말처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제는 급하다고 앞만 보고 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고 아픔만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지금 내 마음이 바쁜 것인지, 세상이 바쁜 것인지” 잠시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혜민 스님의 지혜다.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치고 받던 열전의 대선도 끝나고 과거에 얽매인 ‘정권교체’가 아닌 미래의 꿈을 그리는 ‘시대교체’가 되어 새로운 여성 대통령이 최초로 탄생했다. 한때 대한민국을 떠받쳤던 ‘근면, 자조, 협동’을 되살리든 ‘더 잘 살아보자’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이어받든 간에 이제라도 퇴영적인 아프다, 시간없다 타령은 그만하자.

더욱이 젊은 세대들까지 아프다고 징징대는 풍경은 더욱 더 보기 싫다. 아무리 뱀의 해, 계사년이라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자. 그러면 비로소 하늘이 보일 것이다.

[시인.수필가.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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