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제(漢高帝)는 해와 달처럼 명철했고 신하들의 지략은 연못처럼 깊었으나 몸소 어려움을 겪고 위험을 무릎 쓴 뒤에야 비로소 평안을 얻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신하들도 장량, 진평 같지 못하건만 계획만 오래 세우며 앉아서 승리를 얻어 천하를 평정하려 하니 이는 신(臣)이 알지 못할 첫 번째 일입니다” 제갈공명이 ‘신(臣)이 알지 못하는 일’(比臣之末解也)이라는 반어법으로 안일과 나태에 빠져있는 군신(君臣)을 질타하는 글이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길이 아닌데 길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이 똑똑해지다보니 그런 추세인 것 같다. 사실 길의 종류를 말한다면 여러 종류가 있다. 좁은 길, 넓은 길, 고갯길, 내리막길, 길고 곧은 길, 구부러진 길, 힘든 고갯길, 쉽고 편한 길 등 수없이 많다. 포장도로가 있으면 비포장도로도 있다. 길은 길이되 모양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길이 아닌 곳은 가지를 말아야 한다. 특히 자기 확신이 없거나 누구에 의해서 따라가는 길은 참으로 위험하다. 아울러 그 길을 갈 때 안내자가 누구이며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의 경우 다시는 기생집에 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는데 어느 날 술이 만취가 되어 말(馬)이 가는 대로 가다보니 평소에 자주 가던 기생집 앞에 까지 오게 되었고 이때 기척을 듣고 반겨 나오는 기생을 본 장군은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가 후세까지 전해오고 있다. 길이 아닌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장군의 모습이다.

요즘 이런 심지가 깊고 결단력이 있는 정치가(家), 경제가(家), 종교인(人)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시급한 때인 것 같다. 사람들이 약아지다보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로 길을 가려고 한다. 무조건 빠른 길, 지름길만을 찾아 나선다.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길을 가려고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에는 교통의 4대 법규가 있다. 첫째, 황색 선을 넘지 말고 자기 길을 가라는 것이다. 자기 길을 벗어날 때 남의 길에 가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자기 짐을 실어야 한다. 과적재도 위반이지만 공차운행을 해도 안 되고 정원초과를 해서도 안 된다. 셋째, 반드시 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빨간 불에는 서야하고 파란 불에는 직진해야하고 화살표 방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끝으로 넷째는 제한 속도를 지켜야 한다. 과속을 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진짜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 정도의 길은 무엇인가? 진리의 길, 구원의 길, 생명의 길, 그 길은 좁고 힘든 고갯길이다. 비포장도로의 길로서 양심의 길이다. 다른 동물들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양심의 길이 바로 정도의 길이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모두가 짧은 순간의 실리를 찾아 정도를 벗어난 길을 가려고 한다. 오직 빠르고 편한 지름길을 택하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삶일지라도 우리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그것은 삶을 지혜롭게 사는 최고의 경국이자 모든 좋은 것을 다 불러 주는 주문(呪文)이기도 하다.

정도를 걷다보면 사람은 못 도와줘도 하늘은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다. 길이라고 해서 다 길이 아닌 것처럼 언어로 대화가 된다고 해도 다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마음이 통하고 변화가 공유될 때 비로소 소통이 되는 것인데 그 같은 당연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보니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 해도 잃어버린 횡포와 싸움과 미움과 투기, 질서를 잃은 오늘, 이 같은 세상을 질타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이 길 잃은 양의 길을 찾아주려는 목자로 나서보지 않겠는가.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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