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좋은 소리가 많다 산에서 듣는 나뭇잎 소리. 먼 절간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새벽녘 골목에서 들려오는 개 짓는 소리, 저녁 식탁에서 그 날의 자질구레한 일들로 조잘거리는 아내의 목소리도 듣기에 편한 소리다.

조선시대 명재상 백사 이항복은 ‘동방화촉(洞房華燭) 좋은 밤에 가인(佳人)이 치마 끈 푸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라고 했다던가. 하지만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귀 기울여주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특히 대화란 말 그대로 말의 주고받음이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 못지않게 듣는 사람의 자세도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도 역시 말하는 사람의 말을 잘 경청(傾聽)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중 하나로 ‘먼저 경청하라. 그 다음에 이해 시켜라’ 는 항목을 들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 사회에 말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듣는 사람은 의외로 적은 것 같다. 무슨 자리간에 화제를 독점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가로채 혼자만 떠들어대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어떤 모임에서 여럿이 토론을 하는 경우 처음에는 한 두 사람이 말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경쟁적으로 자기 목소리만 높일 수밖에 없고 급기야 어느 누구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각종 단체나 집단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 자기 편 사람들의 소리만 내고 있지 다른 편의 소리는 아예 귀를 막아버린다. 그리곤 한술 더 떠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우고 걸핏하면 집단행동에 들어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각목을 휘두르며 크레인 위에 올라가고, 때로는 단식으로 위협을 한다.

최근 모 대학에서 근시안적인 자기 논리에 빠진 교직원. 학생들이 총장을 감금하는 등 상식 밖의 작태를 보이는 가하면 또 모 대학에서는 총동문회 이사 선출에 불만을 품은 회원이 동창회에서 선출과정을 설명해도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기 말만 하며 사무처장을 헐뜯는다.

또 천안함 피폭과 관련, 군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북한 소행으로 볼 수 없다며 정부를 불신하는 일부 정당과 단체, 모두가 다 남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자기 말만 고집하다보니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이처럼 대립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은 국회의 대정부 질문이나 청문회 같은 데서 극치를 이룬다. 자신들은 근거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마구 떠들어 놓고는 정작 상대방이 질문에 답하려면 무조건 큰소리로 간단하게 말하라고 윽박지르며 초입에서부터 아예 말을 막아버리기 일쑤다. 그러면서 질문은 왜 그리 길게 하는지? 더욱 답답한 것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최고지도자들 마저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자고로 지도자는 말을 아끼고 많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달 말이면 ‘분당을’ 등 몇 개 지역에서 재보선이 있다. 벌써부터 각 당 후보자들이 자신만이 최고적임자라며 홍수처럼 쏟아 놓는 무수한 말들로 어수선하다. 정작 지역유권자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누구의 계파다, 혈통이다 하면서 죽은 자까지도 들먹이며 오만에 빠져 거칠고 품위 없는 자기들 말만 하니까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

과거 10년의 정치역사가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을 정녕 모른다는 것인가. 남의 말을 잘 들으려면 마음에 충분한 여유 공간을 가져야 한다. 비단 사람소리뿐만 아니라 가끔은 자연의 소리도 엿듣고, 나아가서는 신(神)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기도는 절대자에게 무언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목련화가 피는 푸른 4월, 바야흐로 갖가지로 들려오는 봄의 교향곡 소리가 아름다운 사월이다. 이런 때 나의 고뇌를 지성껏 들어주는 친구가 곁에 있어준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 가! 노사(勞使)가 마주 앉자 알 콩, 달 콩 대화를 나누는 모습, 늦은 시간에 의사당에 남아 발언을 하는 동료의원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는 국회의원의 모습, 국민의 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지도자의 모습은 얼마나 미덥고 존경스럽겠는 가! 그런 세상을 그려보며 그 꿈이 깨기 전 끝을 맺는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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