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내 손안에 있을 때는 그것의 귀함을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없어지고 나면 그제 서야, 사람들은 아! 하며 아쉬워한다. 누구라도 이 세상을 살다보면 이 같이 무엇인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아쉬워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그런 것 같다. 항상 손닿는 곳에 있을 때는 소중한지를 느끼지 못하다가 내 손을 떠나고 나면 그 때서야 후회하고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게 어쩜 우리들의 참 모습인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싫증이 나고 밉고 이젠 더 이상 자신에게는 없어도 될 것 같은 사람, 더 이상은 쓸모도 없고 없어진다 해도 그다지 아쉽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들. 그러나 그들과 이별을 한 후 아쉬워하고 또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귀한 줄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은 한 발짝 떨어져 멀리서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책을 읽을 적에도 너무 바짝 보면 무슨 글씨인지 알아 볼 수가 없듯이 소중한 것들도 너무 가까이 있다 보면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행복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 한다면 행복지수의 목표를 낮추면 된다. 간단하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불행은 목표를 너무 높게 정하다보면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인생의 성공지수도 이와 마찬가지다. 성공지수의 목표를 너무 높여 잡다보면 아무래도 불만을 더 나타나게 된다. 일상생활에 대한 행복감이든, 성공지수에 대한 만족감이든, 너무 욕심을 내어 목표를 능력 이상으로 지나치게 높여 잡다보면 오히려 불만과 불행을 더 느끼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의 크기는 성취한 목표의 높낮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만족해하는 마음에 달려있다. 그래서 낮은 목표를 이루고도 크게 만족하면 더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지수의 목표를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욕심을 줄이고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물론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그리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에 대해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며 행복감에 취 할 수도 있다. 비워야 할 것을 비우지 못한 허용 때문에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상사는 일이 고통스럽고 고되어도 지금 우리 너무 힘들어 해서는 안 된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았고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을지라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날의 새로운 소망이 있기에 이미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 스스로가 가쳐 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해탈하지 않고서는 완벽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존재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병들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내일 아침 해를 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주위를 돌아보면 자신보다 못 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육체가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손과 발이 있고 소화를 시킬 수 있는 튼튼한 장이 있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축복인 것이다.

비록 보여 지는 것은 없어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스러운 존재와 편히 쉴 수 있는 가정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 나누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이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특히 행복은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마련된 최상의 아름다운 선물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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