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채우지 않아도 늘 끊임없이 채워지고 넘치지도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우물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해진 우물이지만 그런 우물에 물을 채워 넣고 물을 다시 퍼마시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저 끊임없이 폴폴 샘솟는 우물물은 계속해 퍼 마시기만 한다.

한 바가지를 퍼도, 열 바가지를 퍼도 늘 그대로다. 넘치지도 않고 또 줄지도 않는다. 박박 긁어 백 바가지를 푸면 바닥이 드러나 물이 없어질 것 같은데 우물물은 신기하리 만치 푼만큼 물이 솟아나 있다. 그리고 물이 넘쳐나지도 않는다.

이런 우물의 신비한 특성은 퍼서 ‘나누어 주는’ 그 만큼 우물물이 유지되지만 우물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게 되면 우물에 차 있는 물의 무게 때문에 물이 샘솟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물 샘이 막혀 우물물이 말라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우물을 끊임없이 사용하는 자에게만 우물물은 마르지 않는 참 된 축복, 생명의 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인 이 물을 마신 자 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 특히 이 우물물은 나누어 주는 만큼 생겨나는 신기한 샘물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 같은 신기한 은혜의 우물에 의존하여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물이 없으면 인간은 생존 할 수 없다.

생떼쥐베리의 말처럼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막 어딘가에 샘물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삭막한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움을 간직 할 수 있었던 것도 세상 어딘가에 샘솟는 샘 물 같은 사랑의 불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물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생명을 살리려고 사랑운동을 펼치는 사랑 운동가다.

사랑 역시 샘물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리 퍼주고 퍼내어도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늘 언제나 가득하고 풍요롭다. 나누어주는 그 만큼 언제나 채워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랑에도 인색하다. 무궁무진한 사랑을 꼭 움켜쥐고 있다. 우물물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물 샘이 막혀 우물물이 말라버리듯 우리의 사랑도 오랫동안 퍼서 나누지 못하면 사랑 샘이 말라 버려 이 세상이 삭막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 역시 나누어 주는 만큼 생겨나는 신기한 생명수다. 그래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물을 깊던 여인이 주님을 만나 신기한 우물의 축복을 받아 사랑 운동가로 새롭게 변모하듯 우리 또한 우물물을 퍼서 나누는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사랑을 나누어주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가뭄으로 갈라진 땅처럼 삭막한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사랑으로 촉촉이 적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학의 발달로 인해 그렇게 끊임없이 샘솟던 우물도 없어지고 용어조차도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50대나 넘어서야 우물이 무엇인지를 알 정도다. 요즘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고 심지어는 왼쪽, 오른 쪽으로 꼭지를 틀면 찬물 더운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우물에 대한 진리를 깨우칠 수가 없다. 그래서 물에 대한 교훈은 물론 귀함과 소중함 조차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주 편 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랑 역시 우물물과 마찬가지다. 단어만 기억되어지고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렘이나 애틋함, 그리고 가슴 저린 아픔의 감각이 매 말라 버린 지 이미 오래됐다.

똑같은 사랑일지라도 이웃을 생각하는 헌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눈물도 인정도 없다. 깊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편리한대로 사랑도 하고 편리한대로 헤어지기도 한다.

기독교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되겠지만 성선설을 믿는 나로서는 근본적으로 인간은 선하고 착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이 열악하게 만든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불씨만큼 남아있는 사랑, 나눌수록 커지며 풍족해지는 우물의 축복처럼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을 퍼주고 나눠주는 사랑의 운동가가 되자.

그래서 마르지 않는 행복의 사랑을 퍼내고 퍼주면서 적막한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되자. 온 세상에 마르지 않는 샘 물 같은 사랑을 전파 시켜보자.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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