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시계의 분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고요한 시간. 창 밖에서 들려오는 차량소리도 멈춘 지 이미 깊은 밤. 모친과 딸과 사위, 그리고 외손녀까지 썰물처럼 모두가 떠난 고요한 밤. 가만히 음력 초하루인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똑같이 해와 달이 뜨고 지는 하루다.

지난 세월, 내 삶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구나 하는 마음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까지 60여년 넘게 살아오면서도 무엇 하나 해 놓은 것, 가진 것이 없었구나 했는데 30여년 넘게 함께 한 아내가 있고 딸들이 있고 외손녀까지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난 왜 이 모양으로 살까? 라는 생각이 들면 ‘넌 괜찮은 사람이야. 그래도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꿈꾸고 또 목표가 있잖아’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지갑이 얇아 움츠러들 때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감사한 생각이 든다.

추워서 속이 비었을 때 길거리 커피 자판기 200원짜리 커피의 그 따뜻함. 더더구나 사지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숨쉰다는 자체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 살아있기에 내일은 오늘보다는 더 나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면서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그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차피 한정된 삶을 사는 것이라면 그 삶을 늪에 빠트리는 무모함은 없어야 한다. 기왕이면 긍정적인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그렇게 열심히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

한 지인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자네는 선비로서 교수 타입이지만 그런 남편을 둔 여자는 고생만 한다네.” 그 말이 맞다.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내 일부가 되어 내 하루 생활을 좌우하는 아내. 그런 아내를 내 마음 안에 그려 넣으면 어느새 입가엔 고운 미소가 번지고 내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내에게 해 준 것은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이처럼 사랑을 가슴에 담으면 세상 모든 것들의 의미가 기쁨이고 즐거운 행복이다. 그런 탓에 난 돈 버는 것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가 지금 아내로 인해 많이 웃고 즐기며 행복한 것처럼 아내 역시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걱정도 많은 아내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가난한 시인이든, 부자이든, 야누스 같은 정치인이든 하루 세끼 먹기는 마찬가지인데 이 세상 사람들은 먹는 것 조차에도 계급을 만들고 차별까지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너무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하며 산다는 것이다. 누군가 실수라도 할라 치면 “나는 이해하는데 남들이 뭐라 한다”는 식의 그윽한 목소리로 질타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것도 흥이 나서 말이다.

생각해보자.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스치며 울고 웃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느 때 떠난 후 누가 남아서 떠난 자에게 미소를 보내겠는가.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고 결국은 모두로부터 자유로움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구름 같은 흘러가는 인생이다.

아무리 예수나 석가의 이름을 빌린다 해도 어느 누구를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찾아올 그 날. 그 날을 대비해 때때로 임종을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야한다. 돌아오지 않을 먼 길을 떠나고 나면 그림자만 남는 빈자리. 먼지 속에 흩날릴 빛 바랜 몇 장의 사진들, 읽혀지지 않을 몇 줄의 시(詩)가 누군가의 가슴에 살아남은들 떠난 자에게 그 무슨 의미가 남아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살아있을 때 흘리는 눈물이나 한숨이 무덤 속보다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잡고 연연하며 무엇 때문에 서러워하고 슬퍼해야 한단 말인가! 그럴 때면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 수 억년 말없이 빛을 발하는 별들을 바라보자.

인생은 분명 유한(有限)한데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도 아귀다툼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그대로 할 것인가? 아니오 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축사 중 한 대목이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니 가는 것 서두르지 말고 또 사는 것도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야 한다. 풀잎 위의 아침 이슬 같은 삶 일진데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누구도 탓하지 말고 그저 바람처럼 허허롭게 살다 가야한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이라면 하고픈 일도 많고 후회도 많이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더 따뜻하고 포근한 세상이 될 것이다. 해가 점점 길어지는 만큼 우리 마음도 밝음이 가득 한 신묘 년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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