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1박 2일간 법무부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을 간다.

퇴직 후 참으로 오랜만에 맞은 공식적인 외박이라 그런지 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날 밤 설레던 것처럼 가슴이 마냥 설렌다.

문득 고향이 떠오르면서 추석 명절이 생각났다. 추석명절을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 가버렸다.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하던 풍요로운 분위기도 어느 듯 시들해졌다.

늘 이맘때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먼 길을 떠나곤 했다. 그런 풍경을 보면 세상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대중가요 중에서 고향을 주제로 한 곡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고향무정’ ‘꿈에 본 내 고향’ ‘ 머나먼 고향’ ‘ 고향이 남쪽이랬지’ ‘남행 열차’ ‘고향이 좋아’ ‘고향 초’ 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옛말에도 모든 병에는 약이 있어도 향수병에는 약이 없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 있던 시절에 당시 O.K 레코드사가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조선일보와 제휴해서 ‘애향가’ 가사를 공모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당선된 가사가 바로 ‘타향살이’ 다.

몇 해 전 작고한 손목인 씨가 곡을 쓰고 그 당시 신인이었던 고복수씨가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친 곡으로서 음반이 발매 된지 한 달만에 무려 5만장이나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와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이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유대인들은 2천년 가까이 나라 없이 각국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살다가 1948년 기적적으로 국가를 재건한 민족이다.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같은 저력은 그들의 신앙과 교육에서 길러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을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던 민족이다. 그들에게는 이 땅은 영원한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의 지혜를 모아놓았던 ‘탈무드’에 보면 ‘이 세상 다리입니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다리 위에다 집을 짓지 않습니다. 다만 건너갈 따름입니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탈무드와 성경에만 우리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한 것은 아니다.

50대가 넘은 세대는 60년대 유행했던 최희준 씨의 ‘하숙생’ 이란 노래를 기억하며 아하 할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가는 길에 정이란 두지 말자. 미련이란 두지 말자.” 서양속담에도 “어리석은 자는 방황하고 지혜로운 자는 여행을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모든 사람들은 이 땅을 나그네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천년만년 이 땅에 존재 할 수 있는 생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인생이 바로 그렇다. 다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아는 목적지가 있는 나그네인가 아니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목적지가 분명치 않은 나그네인가 하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지성 ‘장 풀 샤르트르’는 임종 시 “아! 나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구나.” 하고 탄식을 했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 돌아갈 고향이 분명히 있는 사람은 쉽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실향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지자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고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목적지로 삼은 순례자의 일생이었다.

명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고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가족. 그리고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고향의 친구. 어릴 적 코흘리개인 죽마고우(요즘말로는- 죽치고 마주 앉아 고스톱 치는 우정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는 나그네 인생이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마음의 고향을 향해 떠나가야만 하는 나그네다.

우리가 험한 나그네 길 ‘마음이 가난한 인생’으로서 순례의 여행을 마치고 이 땅을 떠나면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하늘나라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귀천 中에 나오는 글귀를 떠 올리며 1박2일의 여행을 하고 귀경한 내 마음은 어떤 마음으로 변했을까 자못 궁금하다. 모두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고 세상 물욕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자의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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