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갓난아기 때 단맛을 먼저 알고, 짠맛, 신맛을 배운 후 비로소 쓴맛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어쩜 독성이 있는 물질에 들어있는 쓴맛을 가장 늦게 배우는 이치는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가장 늦게 인생의 쓴맛을 맛보게 되는 셈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깨닫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자기의 책임의식보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에게 잘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불평이 쌓일 때 그 원인을 자신에서 찾기보다는 남에게서 찾으려 한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에 기쁨과 평화. 희망이 사라졌다고 해서 남을 탓한다는 것은 참으로 유치한 발상이며 책임 회피다. 옛말에 ‘화복동문’(禍福同門)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화(禍)와 복(福)은 모두 ‘자신이 불러드린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자신 안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다면 바로 내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자기 안에 뿌린 사랑의 결실 때문에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이란 두 글자 때문에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부터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나약해 약육강식 하는 생태계의 사슬 속에서 우위를 점 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약한 인간은 뭔가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를 만들어 그것에 복종하기를 즐기며 그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찾고자 했다.

불가에서는 그런 안위를 찾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밝히면 자기가 곧 부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했다. 한 마디 더하자. 부처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과 지나온 과거의 해골 무더기 중에 어느 것이 더 크겠는가 하는 질문을 제자들에게 한 후 해골무더기가 더 크니라 하신 것은 우리가 미생물에서부터 시작해 이렇게 사람의 형상을 갖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무수한 진화를 해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도 내포되어있다.

중국 선종에서 달마대사의 맥을 잇는 혜능 선사는 “밝음과 어둠을 보통 사람들은 서로 다른 현상으로 보지만 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둘이 아님을 꿰뚫어 본다. 이 차별 없는 자리가 참 본성이다. 참 본성은 바보라 해서 적지도 않고 지혜로운 이라 하여 많이 갖지도 않았다. 그것은 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서 영원불변한 경지에 있으므로 이것을 도(道)라 부른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과거 때문에 자신의 현재까지 미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 릴 수 없는 이미 흘러간 시간임에도 불구, 아쉬워하고 또 연연해하면서도 가장 뜻 깊고 가장 중요한 현재의 시간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어 눈에 거슬린다.

최근 일련의 정치적 사태와 모 부처 장관 딸의 특채 문제, 특히 애비 된 모 장관의 경우 “지금 어떤 세상인데....그런...”이라며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구름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또 애비들의 힘으로 벼락출세하는 고위직 자녀들, 어디 불공평한 게 어디 그곳 하나 뿐이겠는가. 힘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비로서 자식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이상한 진화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마치 오랜 세월 앞다리가 길다는 이유로 여우에게 먹이 감이 되어야만 했던 토끼들의 한탄과 안타까움의 경험을 통해 우월하게 살아남기 위해 앞다리가 더 짧아지게 되는 진화의 법칙이 나오듯 사람들은 그런 쪽으로 진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런 마음이 과욕을 부르는 것이다.

결국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가 있을 뿐인 약육강식의 법칙에만 익숙해 있는 모순된 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화와 복은 메아리처럼 자신이 행하는대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운명을 좌우한다. 남을 칭찬하기에 앞서 험담을 하고 비난을 더 많이 하는 세상이다. 특히 백성들에게 귀감이 되어 야 하고 신성해야 할 국회가 망 말을 더욱 심하게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엿보게 한다. 우리 주변에는 고운 말과 아름다운 말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모로코 속담에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더 깊다”는 말이 있다. 또 말은 깃털과 같이 가벼워서 한번 날리면 주워 담기가 힘들다”는 탈무드의 교훈이 생각 날 정도다.

고운 말,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심성도 곱고 남에게 상처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욕심도 없다. 아울러 마음의 인의(仁義)롭게 해서 남에게 부드럽게 말해주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그 일이 그 마음의 진실함으로 인해, 용서와 화해가 되어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복이고 또 그렇게 하면서 나이 값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험담하고 싶은 욕망을 이겨 낼 때마다 자기를 칭찬하고 부정적인 말을 꺼내기 전 자신을 억제하며 충동을 이겨내야 한다. 물론 험담하지 않는다고 박수를 쳐 줄 사람도 없다. 그러나 내 자신은 올바른 일을 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많을 수록 이 사회는 밝아지는 법이다.

마음을 바꾸자. 그리고 한 번에 하나씩.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짧기만 한 인생. 늘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누구에든 자신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용기의 말 한마디. 그리고 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으로 늙어가면서 모두가 나이 값을 하자.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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