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대학에 강사로 있는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평소에도 그 후배의 고민거리를 잘 들어주고 가끔은 해결책도 일러주곤 했던 터라 그 날도 후배는 예외 없이 사회 돌아가는 모양도 보기 싫고, 학교 돌아가는 꼬라지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등 푸념을 잔득 늘어놓았다.

약간 취기가 오른 후배에게 동병상련의 관계에서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한 구절을 들려주면서 그를 다독였다. 7년차 강사 생활을 하는 내 경우도 도덕경(道德經)등을 읽으면서 마음앓이를 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족(知足)과 지지(知止)에 대한 것이다. 도덕경 중간쯤에 지족불욕(知足不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만족할 줄 알면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는다’ 는 뜻이고 지지불태(知止不殆)란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명예가 되었건, 재물이 되었건,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말고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족’, ‘지지’라는 글을 통해 조언을 한 것이다.

똑같이 학위를 받았고 나름대로 열심히 강의를 했음에도 불구, 다른 강사는 10시간, 8시간을 받았는데 왜 자신만 4시간밖에 받을 수 없었는지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물론 강사를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자신을 알라는 애달픈 마음에서 일침을 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배는 시간 배정자에 대한 야속함을 노골적으로 토해냈다. 이해가 되지만 열아홉 살의 어린나이에 장원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의 자만심을 꺾은 한 노스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맹사성이 무명선사에게 자신이 고을을 다스리면서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무명대사가 ‘나쁜 일을 하지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는 것’ 이라고 대답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을 들으니 맹사성이 화가 날 수밖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스님이 녹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는다. 마지못해 앉은 맹사성에게 이번에는 스님이 컵에 넘치도록 찻잔에 물을 따른다. 그러다보니 물이 넘쳐 방바닥까지 흐르니 맹사성이 물이 넘친다고 소리를 쳤으나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물을 따랐다.

그러면서 화가 잔득 난 맹사성에게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냐”고 꾸짖었다. 이 말을 들은 맹사성이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그만 문에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시면서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중이 절(寺刹)이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떠나지 못할 바에는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 아무리 자신이 박사일망정 자신을 좀 더 낮추고 또 낮춰 저 대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의 울타리가 없으며 아울러 벽도 없다. 마음을 넓게 열어야 한다. 열린 마음은 강하다. 따라서 열린 마음에는 일체의 탐욕도 없다.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마디 더 했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한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 셋을 불러 각각 5달란트, 3달란트, 1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1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른 종과는 달리 불평을 하고 주인을 원망했다가 주인이 돌아오면서 1달란트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쫓겨나기까지 했다.

강사도 마찬가지라고..... 주인이 보는 시각에 따라 그 능력만큼 맞게 맡긴 거라고 그러니 분한 마음 접어두고 원망도 하지 말라고 했다. 벌써 2학기가 시작 된지도 2주째 접어든다. 내 경우도 그 후배와 다를 바 없지만 사고가 조금은 다르다. 우선 강의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에 이르면 많은 시간을 받게도 될 것이며 실행이 되지 않더라도 내 능력을 그 정도로 인정받았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어찌하겠는가? 문제는 가르치는 자로서 자신이 이루고자 한 바를 얼마나 성심을 다해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취의 기쁨은 느낀 자만이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 또한 느끼는 게 다를 수 있다.

농부는 일 년 동안 땀 흘러 거둬들인 볏섬을 보며 성취의 기쁨을 맛보는 가하면 건축가는 자기가 설계한 건물이 완성된 것을 보고 만족해하고, 작곡가는 자신이 작곡한 곡이 연주되는 것을 들으면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가르치는 사람도 그렇다. 나도 마찬가지다. 한 학기가 끝난 후 제자들이 보내주는 감사의 메일들, 또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사회에서도 소중한 삶을 산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제자들, 때론 졸업 후 상담 전화를 하는 몇 안 되는 제자들.

학교에서 어떤 대우를 하던 간에 이 모두가 나에게는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하고 새로운 용기를 주는 활욕소가 된다. 며칠 전에도 한 졸업생이 전화를 걸어와 “늘 교수님의 가르침 잊지 않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사회생활을 한다”며 “곧 결혼을 하게되는데 주례를 부탁한다”고 했다.

주례도 주례지만 너무나 반가웠고 고맙기까지 했다. 이제까지의 우울함과 고통이 사라지고 희열을 느낀다. 그동안 주례를 몇 차례 선적이 있는데 그 중에는 직장 직원, 고교동기생의 자녀, 또 후배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자의 주례까지 받게 되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관계를 잘한 게 아닌가 싶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만남의 관계를 가진 것 같다. 기왕지사 내가 남을 잘 만나서 행복해지기보다는 나를 잘 만나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그런 만남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만남이 아니겠는가.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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