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들러 준 옛이야기 중 새우젓 장사로 몰락한 양반의 일화가 있다. 굶주리다 못해 새우젓 통을 짊어지고 거리에 나서긴 했지만 막상 ‘새우젓 사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그 때 마침 굴비 장사가 ‘굴비 사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지나간다. 양반은 얼른 굴비 장사를 뒷쫓아가며 모기만한 소리로 ‘새우젓도 요’했단다.

아무리 몰락은 했어도 체면치례는 여전히 버릴 수가 없었던 게다. 허기사 옛날 양반들은 물만 마시고도 잇 쑤시개로 이를 쑤셨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리 생각하는 것 처럼 모두 허례허식에 젖어 살지만은 아닌 것 같다. 발가벗겨 놓아도 개성상인은 십리를 달리고 수원깍쟁이는 무려 삽십리를 거뜬히 달렸다고 한다. 치열한 상혼 (商魂 )과 실용주의로 무장한 조상님네들이 없었던 아니다.

요즘의 정치권을 보면서 ‘양반 새우젓 장수’의 답답하고 꽉 막힌 체면치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지막 생계수단임에도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도 못해 주저하고 망설이며 말조차도 어눌한 양반의 태도가 오히려 신선해 보이니 어쩌란 말인가. 언젠가부터 이 땅에 사는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개성상인, 수원깍쟁이가 되어 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달리기만 한다.

체면치례가 없어진지도 오래다. 달려도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편 가르며 내 편. 네 편으로 달리니 중간에서 옷이라도 걸치고 어쩡쩡하게 서 있다보니 양쪽으로부터 치이고 밟혀 죽어만 간다. 극단주의 앞에는 중간 지대는 없는 법. 모두들 자기편 논리만 앵무새처럼 되내이면서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

그런 부류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 라고. 남을 속이려면 먼저 나부터 철저히 속여야 한다는 것을 양당 대변인들이 교채되면서 알았다. 그들은 당을 위해서는 체면이고, 윤리고, 도덕적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규칙도, 원칙도, 싹 무시하고 때로는 본심 마져 버려야 했다는 고백 성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같은 생태는 결국 과도한 자기 확신과 상대에 대한 증오감이 일상화 된 오늘의 세태를 여실히 드러내는 진리 정치(Politics of truth)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치행위 자체를 진리의 실현으로 보는 탓에 자기만 진리이고 상대는 허위라고 보는 것이다. 일본인이 즐겨찾는 한국 음식은 비빔밥이다 일본 문화에서는 서로 다른 음식을 결코 비비는 일은 없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의 비빔밥의 비빔을 대단한 격식의 파괴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말 할 것도 없이 비빔의 문화다. 도저히 어울릴것 같지 않은 채소와 밥. 참기름과 고추장등의 재료가 섞여서 비빔밥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비빔의 문화‘에는 전재 조건이 있는데 서로 인정 할 때 비로소 비빔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비빔을 통해야만 발효가 된다. 각 재료의 고유한 맛이 섞이고 물들고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승화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익은 김치의 맛이 나오게 되고, 고추장의 맛, 참기름의 맛도 밥맛도 아닌 비빔밥의 특유한 맛이 나오게 되면서 구미가 땡기는 것이다. 그게 바로 소통의 맛이고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다.

지금 논쟁이 되고있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는 비빔밥의 재료에 불과 할 뿐이다. ‘우리쪽 나물이 더 많이 들어갔네’ ‘저들의 고추장이 더 많이 들어갔나’ 만 따지고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비빔의 큰 이유는 나물을 위함도, 고추장을 위함도 아니다. 또 좌파. 우파로 편 가르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하나 어떻게 하든 모든 재료를 다 골고루 넣어 최상의 비빔밥을 만들기 위함이 우선이다.

배추에 온갖 양념을 넣고 저려 만든 컽저리의 맛도 일품이지만 그 컽저리로는 김치찌개를 만들 수는 없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만들려면 신 김치찌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묵은 신 김치가 필요한 것이다.

현 정권이 최근 내각을 개각하면서 총리 영입에 있어 한나라당이 젊은 피 운운하지만 그깐 몇 살 차이가 무슨 대수겠는가.? 단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소통이 될 수 없다. 비빔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따져봐야 한다. 과연 여 야는 비벼질 준비가 돼 있는가 하고. 그런 선택 앞에 여당은 물론 지금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세력들이 서 있다.

세종시문제도 그렇고, 4대강 사업도 그렇고, 다수의 시민의 휴식처인 서울광장 신고제로 바꾸는 조례규정도 그렇고, 야당은 무조건 대여 투쟁만 강조하는 ‘밥 따로, 국 따로’ 인 ‘따로 국밥’의 신세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실질적인 대안과 정책을 제시하며 비빔밥이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자신들의 주장만으로 꽉꽉 채워 도데체 절충할 여지가 없는 작금의 분열상을 떠 올리며 옛날 옛적 몰락한 양반의 새우젓 장사의 우유부단 하고 순진했던 체면치례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립다.

어쩜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중도도 실은 비빔밥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처럼 여.야 중앙정부와 지방단체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대립이 지속된다면 이 나라의 앞날은 절망적이다. 망하게 될 것이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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