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신문 펴보기가 두려워지는 때도 없는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폭행, 강도사건이 발생하고 폭력배가 대낮에도 시민들을 괴롭히고 특히 여성들을 납치, 성폭행하는 파렴치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선거철만 되면 정치가들은 거짓공약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하려 들고 순진한 유권자들은 번지르르한 말에 현혹되어 표를 찍는다. 언제부터 우리가 범죄와 악덕(惡德) 더미속에서 살게 됐을까.

우리네 국민소득이 2백~3백 달러 정도밖에 안되던 42년 전 얘기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머리가 좋고 유식하기로 이름난 어느 사람이 예언을 했는데 국민소득이 7백 달러만 넘어서면 범죄율은 크게 떨어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민소득이 열다섯 배나 오른 오늘날 범죄는 열다섯 배 이상으로 흉악해지고 몇 십 배나 더 대형화되고, 백 배나 더 늘어만 가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비록 나라는 가난했어도 매우 살기 좋은 나라였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거리는 지금처럼 탁한 공기로 숨막히지도 않았고 또한 사람 물결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걷는 게 보통이었다.

점심도 큰맘 먹고 호식한다는 게 보신탕이나 설렁탕이 고작이었다. 돈이 많다고 더 좋은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때가 있었다. 그렇게 가난한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의 마음은 요새처럼 메마르지도 않았고 각박하고 살벌한 세상도 아니었다.

비록 잘 산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못산다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았다. 일제에서 해방된 이후 6.25 전쟁을 치르면서 워낙 어려움에 익숙해진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저 그 만큼 순박했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대한 지나친 탐욕으로 정치를 그르친 권력자들만 빼면 거의 모두가 자기 분수를 알고 가난했어도 이웃사촌으로 행복했다. 그 때도 요새 말처럼 권력형 부정은 있었다 하나 얼마든지 눈감아 줄 수 있을 만큼 그 규모는 미미했다. 부정하게 축재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요즘처럼 뻔뻔스럽지도 않았다.

그 때엔 학교에서도 학생들은 군사부일체로 스승을 어버이 같이 여기며 존경을 했다. 그러고 보면 그 때에는 학교나 사회에서나 존경할만한 인물이 요새처럼 귀하지 않았다. 유엔군의 구호물자를 받아보며 언제쯤 우리도 미국처럼 잘 살 수 있게 될까하고 꿈을 꾼 적도 있었으나 못사는 우리사회가 나쁘다고 여겨본 적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도 별로 많지가 않았던 것 같다. 요새처럼 매정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이웃사촌이었다. 대폿집에서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에게 막걸리 한 잔을 철철 넘게 따르며 권할 정도로 소탈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파출소까지만 기어들어 가기만 하면 경찰이 집까지 부축해서 데려다 주는 훈훈한 인심도 있었다.

정말로 그 때는 살기 좋은 나라였고, 모두가 분별있게 살며 염치를 지킬 줄도 알았다. 그 때도 깡패가 있어 세력다툼도 있었지만 깡패는 깡패의 의리를 지킬 줄 알았으며 뒷골목에서 큰길로 나와서 일반 시민을 괴롭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 때의 강도는 요즘처럼 폭행을 하지 않았고 성폭행을 할 줄 몰랐다. 뇌물을 받는 공무원도 요즘처럼 추하지 않았으며 정치가들도 요즘처럼 철면피 같지는 않았다. 그 때는 지금보다 문맹률도 훨씬 높았고 평균 수명도 몹시 낮았다.

어느 시절에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정치구호가 유행할 정도의 어려운 때도 있었다. 명동거리엔 거지가 우글거리고 시인이며 화가들이 허기진 몸을 커피 한잔으로 간신히 달래던 때가 있었다. 자유롭지 않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이민을 가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도 요즘처럼 많지도 않았다.

그 때는 사람들이 요즘처럼 돈독이 오르지도 않았고, 눈에 핏줄을 세워가며 남을 헐뜯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지 어언 60년. 우리는 이제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자신이 당선되기 위해 상대를 헐뜯고 인기를 내세워 출마하고 선거운동원들이 혈투를 벌이는 유세광경을 TV로 보면서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지식인도 많아지고 돈도 많은 부자나라가 되었지만 선악의 감각을 잃었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가난할 때보다 심성(心性)은 파괴되고 웬만한 폭력이나 비리에는 끄떡도 하지 않은 강심장이 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잘 사는 나라’란 짐승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라일 뿐이다. 아름다운 인간처럼 살게 하는 나라가 아닌 것 같다. 해방 이후 60여년 동안 폭력을 합법화 시키고 권력을 부정에 이용하고 돈이면 양심이나 신념마저도 버리게 한 사람들이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당리당략에서 잘못된 정치로 나라 안을 모조리 더럽게 어지럽힌 정치인들이 일말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다. 지금도 민폐만 끼치고 추한 꼴을 보이며 세비만 축내는 국회와 지방의회 의원을 아예 없앴으면 한다.

의원을 자처하면서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당파싸움만 일삼다보니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짐작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7.28 재보선을 지켜보면서 더욱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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