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정신적인 어버이로 불리는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만들어진 날이다.

그런 스승의 날이 언제부터인가 스승에 대한 아름다움과 존경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채 곤욕스러운 날로 되어버렸다. 카네이션 한 송이조차 기쁘게 주고 받을 수 없게 된 것이 요즘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일부 부도덕한 교사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겠지만 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듯 스승은 나라의 임금이나 나를 낳아주신 부모와 같았다. 그러나 가장(家長)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자연적으로 스승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필자가 20여년 간 누군가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교사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 어느 하나 애틋하지 않은 제자가 없다. 모두가 다 귀한 제자들이었지만 유난히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몇몇의 제자들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들 다수는 그룹에서 소외를 당하는 일명 왕따를 당하는 제자들이다.

물론 나는 내 과목만 가르치면 된다. 그러나 스승된 자로서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동료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있어 공통적인 점은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그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열게 했고 한편으로는 과대표들과 긴밀한 대화를 통해 동료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주게 만들어 결국은 그들이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며 무사히 졸업을 하고 하교를 마치게 한 바 있다.

그런 제자들이었기에 졸업 후에도 자주 전화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문자 메세지를 보내기도 하고 때론 상담을 받기도 하며 안부를 묻기도 한다. 이번 스승의 날에도 어김없이 그들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제자는 아주 외롭고 좌절감에 빠져 학교도 나오기 싫었는데 교수님의 말씀과 사랑에 용기를 얻고 학업에 충실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졸업 후 사회에서도 밝은 마음으로 살 수 있어 감사드린다고 했다.

또 어떤 제자는 그동안 교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을 메모해두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말씀을 꺼내보며 사회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이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올 때면 늘 가슴이 아프고 후회가 된다. 그들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외로움을 알면서도 때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며 위로하지도 못했고 도움도 주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생각하면 미안할 뿐이다.

스승이란 과연 무엇인가?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다. 또한 스승은 운전기사와도 같다. 왜냐하면 운전기사를 믿고 승객이 탑승을 했는데 운전을 하는 기사가 어떻게 운전을 하느냐에 따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고 때로는 탈선을 하면서 대형사고를 일으켜 수많은 사상자(死傷者)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한 인간의 품성과 인격, 사고력이 바뀌면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스승을 자처하는 교사가 과연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는지 돌이켜보는 5월이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만 하기에 앞서 사람으로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지혜를 알려주고 있는지, 험악한 세상 속을 헤쳐나갈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었는지, 또한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베풀고 나누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일 할 자세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교육의 개념이 바뀌다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기계적으로 정확하고 똑똑은 해졌지만 안타깝게도 사회 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예의와 소통능력이 예전과 달리 상당히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그릇된 교사들의 이념교육으로 인해 요즘 젊은이들이 국가관이 희박해지고 안보에까지도 위기의식을 느낄만큼 해이해졌다.

정작 주적인 북한은 같은 동포로서 인도적인 사고를 갖고 있고 오히려 동맹국인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은 참으로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잘못 운행을 하는 기사와 같이 제자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치면서 제자들의 올바른 판단능력을 흐르게 하는 등 사회 질서까지도 파괴하고 있다.

과연 사회적 능력을 갖춘 스승은 누구인가?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옳은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참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의 교사는 물론 부모와 직장의 선배도 스승이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스승의 날이 이렇게 된 것은 학교교사들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학교교사들도 크게 반성하고 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이기도 한 부모의 의식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사회성의 부족은 가정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잘못된 사회를 탓하기에 앞서 그 사회속에 공존하고 있는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바라는 것을 바꿔야 한다.

자식들이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좋은 성적표와 일류대학. 1등이 되어야만 성공과 행복을 보장받는다는 잘못된 믿음이 자식의 앞날을 그르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류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나와 지식은 많았지만 대인관계능력이 부족해 사회에서 홀대를 받는 다면 그것이 과연 자식의 행복된 삶, 성공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식에 앞서 남과 어울려 지내는 인간이 되는 법을 가정으로부터 먼저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하면서 스승의 권위도 함께 회복해야 한다. 며칠 전 TV에 나온 공익광고의 문구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부모는 멀리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스승의 날 적어도 이 날 하루만큼이라도 자신이 누군가의 진정한 스승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모든 이들이 누구인가에게 스승이 될 수 있다. 경기도 분당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꽃이나 선물을 보내지 말라고 했단다. 그 교사는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늘 마음이 잔잔하고 평화로운데 여기에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을 해야했을까. 올해 역시 스승의 날 촌지나 과도한 선물이 전해지는 것을 막겠다고 휴교를 한 학교도 부지기수다. 한국교총도 스승의 날이 법제화 된 지 29년째가 되는 올해 처음으로 기념식을 갖지 않았다. 휴교를 한다고, 기념식을 갖지 않았다고 곤혹스러운 스승의 날이 축제의 날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학부모를 비롯한 모두의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되새기게 하고 교사들은 자긍심과 더 큰 책임을 느끼게 하는 흥겨운 축제의 스승의 날이 되도록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제가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을 나누는 기쁘고 자랑스러운 날이 되어야한다. 그렇게 되어야 이 사회가 밝은 사회가 될 수 있다.

비록 5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대학에서 강의했지만 단 한 번도 가르치는 사람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늘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을 대하듯 제자들을 차별없이 대해왔다. 올해도 야간부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부르면서 작은 선물을 했다.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따듯한 마음에서 보람과 함께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바르거라 참되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라.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학교에서 ‘스승의 은혜’ 가 울려 퍼지면서 모두에게 축제의 날이 되는 스승의 날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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