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를 의심하고,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속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느라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워하고 이러한 의심 때문에 일상적인 직업기능, 가정생활, 친구와의 대인관계조차도 힘들어하며 평생을 지내는 경우 일반적으로 편집증적 성격이라고 부른다.

편집증이란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과거 정신의학적으로는 망상장애 혹은 광범한 정신장애를 의미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고 언론이나 문학적으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을 뜻하기도 하였다.

편집증의 원래의 뜻은 영어의 ‘파라노이아(paranoia)’를 번역한 말이다. 그리스어의 para(beside)와 nous(mind)에서 유래한 말로서 ‘제정신이 아닌’, ‘마음의 결함’이란 뜻 정도가 되겠다.

편집증의 정의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정신병의 한 가지’이며 앞서 언급했듯이 정신의학적으로는 망상장애의 옛말에 해당한다. 망상이란 ‘논리적 불합리 혹은 모순된 증거에도 잘못된 믿음이나 지각이 지속되는 상태’를 뜻한다.

흔한 망상의 종류로는 애정망상, 과대망상, 질투망상, 피해망상, 신체망상 등이 있다. 애정망상이란 어떤 사람이 자신과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망상이다. 애정망상이 생긴 사람은 흔히 망상 속 주인공과 로맨틱한, 영혼이 교감하는 정신적 사랑에 빠졌다고 믿으며, 그 대상은 연예인이나 직장 상사와 같이 아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상상 속의 사람인 경우도 있다.

흔히 망상 속 주인공과 연락하려고 전화를 걸거나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고 스토킹을 하는데, 망상의 내용은 ‘그와 나만의 비밀’에 부치는 경우가 흔하다. TV나 라디오에서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하거나 ‘눈이 예쁜 여자가 좋다’고 했다가 그 말을 자신을 향한 사랑 고백으로 여긴 여성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사랑한다고 해놓고 왜 이제 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느냐’며 괴롭힘을 당했다고 고백

과대망상이란 자신이 위대한(아직 남들은 모르지만) 재능을 가졌거나 위대한 사람(대통령과 같은)인데 아직 숨겨져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망상이다. 또 자신이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과 같이 유명하고 실력 있는 사람과 특별한 관계(흔히 숨겨놓은 자식이라고 믿는다)에 있다고 믿기도 한다. 때로는 종교망상과 혼합되어 자신이 하느님의 메신저 혹은 예수라고 여기기도 한다.

질투망상은 자신의 배우자나 연인이 자신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믿는 망상을 뜻한다. 이러한 망상에 걸린 사람은 ‘실제 외도가 없었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억울해 하지만, 정당한 이유가 없거나 그럴만한 이유라고 보기에는 매우 사소한 근거(옷에 묻은 얼룩과 같은)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경우 질투망상을 의심할 수 있다.

피해망상은 자신이 음모에 휘말려 있다고, 속임수에 걸려들었다고, 감시를 당한다고,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다고, 누군가 자신의 음식물에 독극물을 탔다고, 누군가 자신의 뒤에서 헐뜯고 비난하고 있다고,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이러한 망상의 체계에서는 확신하게 되는 근거로 작용한다.

피해망상에 걸린 사람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고소를 하고 정부나 언론에 자신의 억울함을 알린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모두 한패’라고 여기며 더욱 분개하고 화를 내는 자신을 말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위압을 가한다’고 여기게 된다.

신체망상은 신체 일부의 기능이나 감각에 관한 망상을 뜻한다.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믿거나 피부에 벌레가 있다, 에이즈에 걸렸다, 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등의 증상을 흔히 호소한다. 이러한 망상만 있는 경우는 망상장애라고 하지만 망상 외에 어떠한 증상이 동반되는가, 얼마나 지속하는가, 인격 전반에 영향을 주는가에 따라 다른 정신질환을 진단하기도 한다.

일반에서는 외골수, 집착이 강한 성격을 편집증적인 성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의심’이라는 편집증의 핵심적 모습에서 파생되는 모습 중 하나이지 집착이 강하거나 모난 성격이 정신의학적으로 ‘편집증적 인격장애’인 것은 아니다. 공고하고 한두 가지 주제로 귀결되는 망상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망상장애와는 구별된다.

망상에 기억력 장애가 동반된 경우는 망상장애보다는 치매를 의심한다. 치매에 걸리면 망상을 비롯한 정신병적 증상이 흔히 동반되어 나타난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심해진 경우에도 망상이 자주 동반되는데 이 경우 망상은 우울한 기분 혹은 평소보다 고양된 기분과 같은 기분 증상이 선행된 다음 생긴다.

망상과 환각은 알코올, 본드, 필로폰을 비롯한 뇌에 영향을 주는 물질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또한, 망상과 환각이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사회적, 직업적 기능의 심각한 손상이 있고, 여러 전구기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었을 경우에는 정신분열병을 진단할 수 있다.

이처럼 편집증은 다양한 여러 질병의 증상일 수 있으므로 전문가에게 상담한 후 어떠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편집증의 치료는 원인이 되는 질병이 무엇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정신의학적 치료제 개발에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며 부작용은 최소화되어 치료를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편집증상이 있는 사람을 고립시키거나 외면할 경우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피해를 당할까봐 두려워 방어하고자 화를 내는 것이므로, 치료와 병행되어 제공되는 따뜻한 관심은 더욱 효과적인 치료를 가능케 한다.

[도움말=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정신과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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