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필자의 큰 딸이 ‘교회 창립기념’ 연주회를 하는 기회가 있어 토요일 오후 지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듬성듬성 청중들로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콘서트홀은 생각 외로 그리 넓지 않았지만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대학 학창시절 1학년 때부터 재능(성악)을 인정받아 국내 오페라 공연에는 물론 국제행사에도 합창단 일원으로 출연한 바 있는 딸은 이번 공연에서도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소프라노인 딸의 노래를 듣다보면 음악에 무지한 필자라도 그 성량의 풍부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공연을 마치면서 사회자가 청중들이 다소 적은 것을 의식한 탓인지 영국의 경우 귀족 몇 명을 위해 합창단이 출연하기도 한다며 여러분은 귀족으로서 연주를 듣는 영광을 얻었다고 해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도 딸의 이름이 사방에서 나오는 등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딸과 그 딸을 대견한 듯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한편으로는 남모르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딸의 뒷바라지를 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가 평소 좋아하는 음악회이기도 하지만 딸 덕분에 곧잘 음악회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 합창을 하기위해 무대에 늘어선 단원들을 보며 느껴지는 것이 있다. 저들 중에는 독창에 뛰어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독창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소리만을 낸다면 아름다운 합창의 멜로디를 기대할 수 없다.

소프라노, 바리톤, 테너, 거기에다 피아노까지 서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루어진 합창이 탄생될 수 있다. 우리의 생활도 합창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음을 바로 쓰지 못하고 제 잘난 맛에 톡 튄다면 그 재능은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평화롭고 즐거운 사회란 재능이 많은 어느 한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쓰고 자기의 역할 기능을 충실히 하며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예로 시계의 톱니를 보자. ‘초침’ ‘분침’ ‘시침’ 에 역할을 하는 톱니가 서로 맞물려 회전을 해야 만이 시계로서의 역할을 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존재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침’의 역할을 맡은 톱니나 ‘분침’의 역할을 맡은 톱니가 서로 자신이 최고라며 제 멋대로 움직인다면 그 시계는 시계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버려질 수 밖에 없다.

인간 역시 서로가 잘 났다며 독불 장군 격으로 합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게 마련이다. 조직체란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피는 따뜻해야만 한다. 따뜻한 피가 순환되는 조직체란 ‘정’(情)이 있게 마련이고 ‘정’ 이란 바로 조직원간의 유대관계를 긴밀히 계속해주는 결속력인 것이다.

인간 본질은 선하다고 생각하기에 순간순간의 갈등을 참을 뿐인데 오히려 작금의 세상은 그렇게 보아주지 않는 것 같다. 정녕 숲속을 보기보다는 겉의 나무만 바라보듯 남을 쉽게 속단하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기 자신을 돋보이며 위로를 받고자 하면서도 남을 위로하고 이해하기에 앞서 시기와 모함과 질투 속에서 약한 자를 짓밟으며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해 용트림 한다.

아무리 비싼 금 젓가락이라 할지라도 한 짝일 경우 두 짝의 나무젓가락에 비하면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다. 젓가락 두 짝이 있어야 활용가치가 있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 하고 싶다.

따라서 이 사회도 합창단과 마찬가지로 서로가 화음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밝고 명랑한 세상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서울정보대겸임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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