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는 상대를 부정하는 협량(狹量)에 갇혀 있다. 범부(凡夫)의 상식에 부합하는 최소합의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바다에 있어야할 배는 엉뚱하게도 산으로 가고 있다. 지금의 여야 갈등은 내전(內戰)수준이다. 수백 건에 달하는 민생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해야할 국회는 암초에 걸려 있다. 한마디로 여야는 완전히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내편하고만 손잡는 정치는 바른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전쟁터의 총검(銃劍)이 아니다. 상대의 모순까지도 포용해 차선의 합의를 이뤄내는 전환의 상호 고백이고 고해 성사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피식민지 국가에서 해방된 이후 74년째 분단돼 준전시(휴전)상태로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갑진년 올해는 선거의 해다. 한국은 물론 미국, 러시아, 인도와 유럽 각국 등 전 세계 76개국 40억 명이 선거판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철만 되면 희망과 우려가 교차하지만, 필자로서는 올해의 경우 다소 걱정이 앞선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게임 룰은 당선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들고 있다. 특히 전체주의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는 선거철을 만나 민주주의 탈을 쓰고 기승을 부린다. 더구나 북한의 안보위협까지 더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것 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국고가 바닥이 나는 것조차 안중에 없다. 올해 선거의 특이점은 체제와 이념의 대결 양상이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동맹과 안보를 중시하는 세력과, 평등, 분배, 국가 개입을 우선하고 대북 유화론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세력 간의 대결이다. 아울러 집권당 심판론과 또 다른 기득권인 486운동권 심판론이라는 기득권 구도의 대결이기도 하다. 소위 세력교체의 문(問)을 여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더 이상 국민을 갈라치기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하며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한 민족이 이렇게 갈등하고 분열하는 곳이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면 설득과 타협을 해야 마땅하거늘 왜 적(敵)처럼 제거대상으로 삼는지, 국회에서도 당이 다르면 대화가 없고, 같은 당이라도 계파가 다르면 밥도 함께 먹지 않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러니 정치적 내전 상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입으로는 여전히 ‘협치’를 외치지만, 속내는 ‘정권 흔들기’를 계속하고, 소수 여당(집권당)은 안목과 용기 부족으로 국면을 제대로 타개하지 못한 채 야당에 끌려가는 모양새다.

임기를 70 여일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21대 국회 민낯이 볼썽사납다. 그런 추한 꼴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4월 총선에서 목숨 줄인 공천이 최우선 가치이니 민생이고 나발이고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고 들리지도 않는다. 4년 전 한 표가 아쉬울 때 ‘민생의 공복’을 자처하며 외칠 땐 언제고, 이제 다시 총선이 다가오니,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이다. 21대 국회는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쟁만 일삼아왔다. 정부 권력을 쥔 집권 여당과 입법 권력을 틀어쥔 거대 야당은 틈만 생기면 싸웠다. ‘탄핵과 특검’이 아예 입에 배였다. 현실정치의 묘미인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헌법 46조에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과연 국회의원이 그리하는가. 주요 안건일수록 당 대 당의 대결이 심해지고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은 당의 대변인으로 전략한다. 그저 소속 정당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굳이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을 뽑을 필요가 있겠는가. 법률상 보장된 소신투표나 발언을 했다가는 정치 생명이 끝나고 만다. 소수가 밀실에서 정한 당론으로 사사건건 밀어붙이는 나라는 의원 내각제 국가에서 조차 드물다. 당론에 비판적이거나 반대를 하면 다음 공천에서 탈락된다. 보장을 받지 못한다.

미국 같은 대통령제를 취하면서도 미국에는 없고 의원 내각제 국가에만 있는 당 대표, 사무총장, 대변인등을 한국 정당은 두고 있다. 공천권을 비롯한 모든 권한은 정당(구체적으로는 당 대표 및 실세 몇 명)이 행사하고 책임은 국회의원이 지는 이중적이고 무책임한 정당 우위체제가 고쳐지지 않는 한 이 땅에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역대 어느 선거든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없지만, 이번 선거는 어느 때와는 달리 특별하다. 결론부터 내린다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야당이 승리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그날부터 레임덕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걸핏하면 탄핵 카드를 꺼내들었던 야당에 의해 임기를 다 못 채우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반면 집권 여당이 승리하면 정국은 안정되고, 이재명 대표는 정치 생명이 끝나고 다른 야당이 민주당을 대체할 수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대폭 갈아치워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왜 그런가 ‘물은 갈지 않고 물고기만 갈아 치우기 때문’이다. 국회의 제도와 운영, 피의자 신분일 경우 급여 동결, 등 사고 방식을 획기적으로 뜯어고쳐야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지난 수십 년간 국회는 ‘국회 개혁’은 입으로만 부르짖을 뿐, 기본적인 ‘정상화’조치하지 않았다. 자체 규제안도 의정활동 평가 기준도 없는 막무가내 국회다. ‘특권 내려놓기’는 할 일 안 해도 괜찮은 관행부터 뜯어고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불법 비리 부도덕과 폭언, 폭행, 무례는 용납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제재를 분명하고도 단호해야 한다. 여야를 떠나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 공천 받고 선출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 윤리규정을 제대로 만들고, 윤리위원회를 독립적 상설기관으로 해야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그래야 의원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선거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당 간 경쟁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표심에 호소하는 방법은 깨끗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영입해 앞세우는 것이다. 이른바 ‘공천의 공정성’이 있어야 정권 창출도, 선진적인 민주정치 발전도 가능하다. 총선 공천이 이처럼 중요함에도 여야 모두 선거를 70여일 코앞에 두고도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고심만 거듭하고 있다. 특히 47명의 비례대표 선출 방신에 대해선 좀처럼 진전이 없다. 위성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은 정당 득표율로 비례대표를 정하는 병립형 회귀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준(準)연동형 비례 대표제 유지 여부를 놓고 내홍을 빚고 있다. 국민들이 오는 4월에 치러질 22대 총선에 기대하는 것은 과감한 인적 물갈이를 통한 정치 혁신이다. 참신하고 적합한 인재를 발굴해 국민에게 선 보여야 한다. 증오 발언으로 극렬 지지층을 부추기고, 정치 불신을 심화시킨 인물들은 과감히 낙천 시켜야 한다. 공천 결과가 ‘그 나물에 그 밥’이 된다면 우리 정치의 앞날이 암울할 것이다.

여야가 고인 물을 걷어낸 자리에 참신한 후보를 채워 넣는 쇄신 공천을 놓고 경쟁하기를 바랄 뿐이다. 여야 정당이 사사건건이 갈등하면서 정쟁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선진국 형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 획기적 희생과 용단을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시 된다. 여야는 정치신인들의 발굴과 지역구도 완화. 표의 등가(等價) 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선거제 논의를 마냥 더 미룰 수 없다는 인식 아래 하루라도 빨리 선거제를 결정해야 한다. 1백년 전쟁을 치룬 베트남, 인류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배출했던, 독일, 1차 대전 이후 세계 5대 부국으로 있던 아르헨티나, 아시아에서 잘 사는 민주국가였던 필리핀을 보라. 오늘을 만든 것은 그런 지도자를 선택한 그 나라 국민이다. 세계적으로 어둡고 험한 파고가 몰아치는 가운데 나라의 명운이 걸린 선거를 치러야 한다. 묻고 싶다. 우리에게 내일은, 희망은 있는가. 나라의 흥망은 결국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호 심송,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미. Creative University 특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