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결과 4㎎/L만으로 항경련 효과 있어

뇌전증 치료제 ‘토피라메이트’가 4㎎/L의 혈중농도만으로 충분한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세계뇌전증연맹 권고농도보다 최대 5분의 1 낮은 수치다.

특히 혈중농도가 6.5㎎/L 이상일 경우 부작용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토피라메이트만으로 뇌전증 치료 효과가 불충분하면 약제를 증량하기보다 다른 항경련제를 병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신경과 이상건·주건 교수, 임상약리학과 장인진·유경상 교수
[사진 왼쪽부터] 신경과 이상건·주건 교수, 임상약리학과 장인진·유경상 교수

서울대병원 신경과 주건·이상건 교수(1저자 이설아 전공의, 김현철 박사과정, 장윤혁 임상강사) 및 임상약리학과 장인진·유경상 교수 공동 연구팀이 2017~2022년 서울대병원에 방문한 389명의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토피라메이트의 적정 혈중농도를 분석한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뇌전증은 원인 없는 발작(경련)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세계적으로 약 5천만명, 국내에서는 약 36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편적인 치료법은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것이다.

토피라메이트는 1996년 FDA 승인된 이래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는 2세대 항경련제다. 고용량을 복용하면 인지기능저하, 어지럼증, 체중감소, 실조증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사용 시 뇌전증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세계뇌전증연맹은 뇌전증 치료를 위한 토피라메이트 혈중농도를 ‘5~20㎎/L’로 권고하는데, 권고에 맞춰 사용해도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아 적정 혈중농도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연구팀은 토피라메이트를 처방받은 뇌전증 환자 389명을 대상으로 토피라메이트 혈중농도와 항경련 효과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의 94.4%(371명)에서 경련 증상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처럼 충분한 항경련 효과를 보인 환자들의 토피라메이트 평균 혈중농도는 4㎎/L였다.

즉 토피라메이트 기존 권고농도(5~20㎎/L)의 5분의 1 수준인 ‘4㎎/L’만으로도 충분한 경련 조절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무리한 증량은 불필요하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반면 토피라메이트 혈중농도가 6.5㎎/L 이상일 경우 ‘실조증(ataxia)’ 부작용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실조증은 신체 부위 간 상호작용 장애로 인해 동작이 서투르고 섬세한 움직임을 할 수 없는 신경학적 증상이다.

추가로 연구팀은 토피라메이트 단일 약제만 처방받고 충분한 항경련 효과를 보인 환자를 ‘무경련군(39명)’과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잔여 경련이 있는 ‘내약성 경련군(13명)’으로 나누어 2023년 4월까지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무경련군 및 내약성 경련군에서 약 7.5년 이내에 3개 이상의 항경련제를 처방받는 환자 비율은 각각 7.7%, 54.8%로, 내약성 경련군이 크게 높았다. 내약성 경련군은 약물 저항성이 큰 난치성 뇌전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혈중농도 4㎎/L로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환자의 경우, 토피라메이트를 증량시키기보다 새로운 뇌전증 약제를 추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경련을 조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건 교수(신경과)는 “이번 연구를 통해 많은 뇌전증 환자가 사용하고 있는 토피라메이트 약제의 무리한 증량의 불필요함을 확인했다”며 “토피라메이트를 혈중농도 6.5㎎/L 미만으로 사용 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향후 새로운 뇌전증 진료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미국신경과학회 ‘임상 및 중개신경학회지(Annals of Clinical and Translational Neurology)’ 최신호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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