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질척이는 요즘이다. 검푸른 수조에서 빠져나왔나 싶었는데, 바로 벌건 화로 속에서 가쁜 숨을 내몰아 쉰다. 그리고 또 폭우, 이어 폭염이다. 비와 더위가 순간순간 자리바꿈을 제멋대로 하며 중생들을 희롱하고 있다. 달궈진 땅과 바다에 더위를 먹은 까닭일까. 반복되는 폭염과 ‘극한 호우’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정부와 지자체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거짓말과 상대 비방의 구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와 학생, 교사 간 신뢰와 존중이 앞서야 할 교육현장은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로 만신창이가 된지 이미 오래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제 버릇 남 못준다는 속담처럼 여‧야 정당이 상처 난 민심에 소금을 뿌리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좌파 유튜브에서는 괴담이 나돌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직사회가 들끓고 있다. 교사의 사망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료교사들을 중심으로 고인이 악성민원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많은 교사들은 교권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갑자기 유명해진 ‘서이초등학교’ 젊은 교사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이 학교 3개면이 근조화환과 꽃다발과 메모지로 뒤덮였다. 조문용 꽃다발을 들고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이 충혈 된 눈으로 벽에 붙어있는 메모를 읽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조화와 꽃다발이 계속 쌓이고 있다. 교사의 반 학생들의 메모도, 주변 교사와 다른 학교교사들의 사연도 눈에 띈다.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 국민의힘은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원인을 ‘진보 교육 정책이 불러온 교권침해’ 로 규정하고 ‘학생인권조례’도 원인이 되었다고 비판하며 총공세를 펼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충하는 것도 아니고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마치 이번일이 학생인권 조례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말하는 것이 크게 우려스럽다”고 반발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교직단체와 기자회견에서 “교육 이슈가 과도하게 정치적 쟁점이 되고 정략적 갈등의 소재가 되면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며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이지만, 학생의 권리 외에 책무성을 한 조각 넣는 부분은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종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서이초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은 무엇일까. 죽은 교사는 유서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학폭 사건과 학부모 문제 제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 교사가 어떤 고충이 있었을지는 이 학교 벽에 붙은 교사들의 메모로 충분히 짐작해볼 만하지 않을까.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지난 2021년 5월까지 재직 중 사망한 교육공무원 중 11%가 극단적 선택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긴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서이초 벽에 붙은 메모는 학생인권이 악용된 탓에 마녀사냥 당했던 교사들의 커밍아웃이다. 벽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교실을 구해라. 교사를 구해라. 더 많이 죽기 전에”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은 권리, 폭력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 등을 담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시행되면서 이로 인해 교사의 정당한 교육권도 학생 인권보호라는 이유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어찌하다 보니 교사는 학생이 때리면 맞고, 잘못이 없어도 빌며, 학부모 폭언에 냉가슴 앓고, 교단이 멍들어가고 있다. 많은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더 이상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이 겪은 교권 침해 사례는 교사에 대한 기망과 폭력, 성희롱,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 다양하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그동안 쌓여온 교사들의 억울한 심정과 분노가 폭발하는 양상이다. 문제는 교사들이 교권침해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조차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잘못에 대해 정당한 지도를 한다 해도 지난 2014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아동학대’ 사례로 신고 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는 ‘내 자녀 권리’만 챙기도록 설계된 제도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질뿐만 아니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당한 지도도 아동학대로 치부돼 각종 민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교사들은 정신적 괴롭힘을 넘어 고발이 남발되는 게 문제라고 호소한다. 심지어는 다른 학생을 칭찬한 게 차별에 해당한다며, 반면 학생에게 꾸지람하면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이라며 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다. 따라서 교사가 무혐의처분을 받기위해서는 최소 몇 달간 여러 형사적 절차에 시달려야 한다. 부모들의 이런 갑질은 소아청소년과 의원 폐업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조금만 불만이 생기면 의사에게 화를 내고 나아가 SNS에 비방 글을 올리고 관련 기관에 고발까지 하는 환자부모를 상대하기 버겁다며 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진료 분야를 바꾸거나 의원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결과로 아이들이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줄고, 소청과 지망 의대생들도 희귀해지고 있다.

교사 사회에서도 교권침해를 버티지 못해 교단을 떠나는 젊은 교사와 명예퇴직 희망자가 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5년차 미만 퇴직교사는 589명으로 전년 303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내년 2월 명퇴를 계획하고 있다는 한 교사는 “남자 친구와 모텔을 다니느냐”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기도 했고 “‘정신병자’ 같다는 막말을 학생들에게 들었다”며 그럼에도 일부 학부모들의 악성민원 때문에 교권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토로했다. 교사를 희망하는 청년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수시로 시달리는 직업이라는 게 그 이유 중 하나다. ‘내 자식만’ 이라는 학부모의 비뚤어진 권리의식과 몰상식이 공동체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는 심각한 병폐적 요소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근래의 사건들은 학생인권과 교권의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 둘 사이의 권리는 학생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다.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갑을 관계가 아닌 대등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 인권은 있는데, 교권은 없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학교 곳곳에서 학부모의 민원을 우려해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극구 만류하는 관리자와 이들을 두둔하고 방조하는 교육청의 행위다.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문제의 요인이 된 학생인권 조례 폐기와 함께 교권의 보호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때다. 이제라도 명확한 훈육지침을 규정해 교사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다. 늦었지만, 정부와 여당이 초중등교원법과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에 나섰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동안 교사들은 학부모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시달려 왔다. 야권 진보성향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교사에게 ‘면책권’을 부여하는 데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조속한 법 개정에 정파를 떠나 야당도 협조하기를 부탁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우습게 여기며 함부로 대하고,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를 겁내는 세기말적 현상은 여기서 끝내자.

[호 심송,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미. Creative University 특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