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내로남불이 만연한 세태를 꼬집기 위해 원전에 없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는 그때보다 달라졌을까. 오히려 분위기는 더 흉흉해졌다는 게 대다수 민심이라 생각된다. 아시타비가 그나마 상대방과 비교하는 수준이라면 이제는 오직 나만 옳고 나만이 선(善)이라는 ‘유아독존 식’의 ‘아집’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착각을 넘어 나만 옳다는 교만이 온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아유시교라는 또 다른 사자성어를 만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우리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남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가로 젓지만, 정작 본인만 모른 채 나만 잘되면 그 뿐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사는 정치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자들이 크든 작든 권력을 갖게 되면 그 폐해가 훨씬 더 커지기 십상이란 점이다. 혼자만의 망상은 자유지만, 주어진 권한을 함부로 휘둘러 주변에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주게 될 경우 이는 곧 사회 문제로 비화 될 수밖에 없다. 사적관계도 이럴 진대 국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정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 가. 3년간 시달린 코로나 팬데믹에 켜켜이 쌓인 국민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하고 오로지 권력 다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게 오늘의 한국정치 현실 아닌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눈만 뜨면 우울한 뉴스, 짜증나는 뉴스들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더 나아지기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데 다수의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갈수록 상황이 급속하게 악화하고 있는 데도 정치계는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의 실망감은 더 커져가고 있다. 2030 MZ세대나 노년층을 비롯 심지어 견인차 구실을 하던 4050중년층까지 전 세대가 희망보다는 절망감으로 삶에 애착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눈앞에 비춰지고 있다는 게 명백한 현실이다.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과 목표가 상실되고, 중심축이 흔들리고 있는 용기와 결단이 우리 내부에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 비관론을 확산시키고 있을 뿐이다. 고도성장 시기, 그래도 잘 나가던 시절에는 정치가 망가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도 경제적 성취감은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진전된 산업화 덕분에 더디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민주화의 속도를 지켜보면서 내 삶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잠재된 불편과 불만을 인내로 버텼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이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다. 미래가 불안하다는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깜빡거리는 데,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편 가르기 식 내부 분열로 인해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정치판이 이 같은 구도를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민생은 뒷전이다. 한마디로 국민을 도탄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매 5년마다 반복되는 정권 창출을 위해 사활을 건다. ‘모 아니면 도’ 배팅으로 아마겟돈 식의 혈투를 벌이면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하는 꼴을 보면 국민의 삶이나 국가의 장래는 그들에게서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의 자질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인지? 싶을 정도로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물며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보세력들이 진지를 구축하면서 기존 국가의 틀이나 계획을 일거에 확 바꾸는 무모함을 스스럼없이 추진해오고 있다. ‘함부로 쏜 화살’은 자칫 자신이 맞을 수도 있다. 말에도 선견지명이 필요하다. “정치보복이라며 죄 짓고도 책임 안 지려는 얕은 수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정치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 같은 발언들로 자승자박의 꼴이 됐지만, 최측근들을 겨냥했던 수사의 칼끝은 이제 이 대표에게로 향하고 있다. 자신이 내 뱉었던 말들을 부정해야할 판이니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검찰이 가진 증거는 넘치는 듯한데 반증이 없으니 그냥 보복이라 우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치보복과 부패척결의 경계는 모호하다. 부패척결이라는 가면을 쓴 정치보복이 횡행한 탓이다. 악습이라면서도 정치보복(?)을 포기한 역대 정권은 없다. 앞서 문재인 정권이 폐단을 바로 잡겠다는 미명아래 사회 전반을 벌집 쑤시듯 헤집은 적폐청산(?)도 기실 정치보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념으로 돌돌 뭉친 전위부대들이 마치 중국의 홍위병처럼 설쳐댔다. 반대파들을 숙청하듯 몰아냈다. 사생활을 뒤지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없이 자행했던 문 정권. 그런 문 정권이, 정권이 바뀌자 주인이 도둑이 되듯 상황이 역전됐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조사하겠다는 감사원에 대해 “무례하다”고 일갈했다. 참으로 듣기에 거북한 언어다. 군왕이라도 된 양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되려 국민들에게 무례함을 보였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 않고 ‘정치보복’ 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좌파들은 이에 뒤질세라 능숙하게 방향 전환을 한 감사원에 ‘사냥개’ 란 칭호를 붙였다. 문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직원 월북사건과 관련, 자신의 참모였던 인사가 구속되기 전. “우국충정의 열사를 매도한다”며 “선을 넘지 말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오히려 자신의 죄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역정을 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위기를 느끼는 지도 모른다.

정치 풍토에서 정치보복은 ‘필요악’ 인 것 같다. 수사. 감사 기관들의 취약한 독립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고 권력 앞에 찍소리 못하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면 칼자루를 바로 잡아 정의의 사도로 환생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정부패는 영원히 묻히게 된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이 대표 측근들의 비행(非行)도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충견’ 소리를 들어도 검찰이 하는 일 자체는 무조건 보복이 될 수는 없다. 민주적, 법적 절차만 제대로 지킨다면 말이다. 이재명 측근 수사가 보복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이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려면 입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못한 다면, 아니 할 수 없다면, 이중 잣대, 내로남불 그 이상도 아니다.

충견과 사냥개는 전 정권, 전전 정권에서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민주당은 건망증이 심한 것 같다. 과거 자신들이 내뱉었던 말들과 행동들을 망각한 모양이다. 묻고 싶다. 문 정권의 검찰? 적폐청산의 선봉장이 아니었던가. 불의의 처단은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차선의 정의는 될 수 있다. 도둑질을 하는 주인을 물 수 있는 최고로 정의로운 개(犬)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최근 이 대표는 검찰이 자신과 측근들의 계좌 추적에 나선 데 대해 “언제든지 털어보라”며 “검찰이 수사를 해야지, 쇼를 해서 되겠느냐”고 강하게 반박했다. “선무당 굿하듯 알맹이도 없이 소리만 요란하다”고 비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수사의 정점에 있는 법무부장관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수사는 지난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뤄 두거나, 엉성하게 마무리 지으려 했던 일이 아니냐며 절차에 따라 정상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뿐이다. 즉 정권 차원에서 진행하지도 않으며 검찰이 마음대로 수사하는 것도 아니며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 말대로 없는 죄를 만들기 위해 ‘별건 수사’나 진술에만 의존한 수사라면 결국 법원에서 혐의 입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검찰 내에서는 이제껏 이 대표 측근 구속시킨 것과 관련, 자신감에 넘쳐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규정한 ‘정치적 공동체’인 이 대표 수사 또한 자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이 대표 말대로 ‘없는 죄를 만들어 씌울 수 있다’고 생각할까.

문득 “빨간 신호, 다 같이 건너면 겁날 것 없다” 여러 언행이 상식에 어긋나고 혐한(嫌韓) 발언 등으로 우리 정서에도 맞지 않는 기타노 다케시라는 일본 영화감독이 내 뱉은 말이 떠올랐다. 요즘 다수의 의석을 갖고 단체로 집단행동을 하는 민주당을 생각하면서다. 코미디출신이기도 한 기타노 감독은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도 여럿이 함께 무시해버리기로 하면 겁날 게 하나도 없다’는 논리다. 이 말은 무슨 일이든 다수가 무리를 이루어 저질러 벌면 다 통한다는 뜻이다. 맹목적 집단주의로 인해 상식이 전도된 상황을 풍자 한 것인데, 지금 민주당이 그런 언행으로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으며 비웃음을 사고 있다. 민주당이 이처럼 무모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것은 ‘대가리가 깨져도 나는 네 편’이라고 외치는, 전 국민의 30%에 이르는 맹목적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열성 지지자들은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나진 않았어도 사실은 범죄자라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는 이재명 당 대표에 대해서도 열광을 한다. 오직 내 편이니 믿고 지켜야 하고, 또 내 편이니 함께 우겨 주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대선 당시 “나를 위해 이재명을 위해” 라는 구호를 그의 지지자들은 정말 믿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사실이 2022년 우리 앞에 닥친 실제 상황이며 망신스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일단 멈춰서야 한다. 그게 바로 약속이고 질서가 아닌가.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려는 그들. 더 큰 다수의 국민들이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것을 그들만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다수의 횡포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민주당은 알고 있는 것일까.

양호에 이어 공산불뉴, 후범 등의 난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평정을 하면서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공자는 이 모든 게 소정묘의 농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자(孔子)는 모든 신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사구의 자격으로 소정묘(少正卯)를 탄핵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소정묘가 교묘한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이 같은 말에 신료들은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소정묘(少正卯)는 우리 노나라에서 명성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데, 어찌 공산불뉴의 난이 소정묘의 농간이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공자가 다시 말했다. “소정묘(少正卯)는 거짓을 참말처럼 말하고, 행동과 말이 같지 않아 알게 모르게 인심을 어지럽혀왔습니다. 저런 자를 죽이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재명의 행적을 보자. 그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엽기적 존재였다. 자신을 따르는 가신에게는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관대했고, 경쟁 상대나 방해하는 세력에게는 매우 잔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 던 그의 말대로 철저하게 사유화 했다. 시정잡배도 감히 하기 어려운 형수에게의 욕설 파문, 모진 환경에서 혼자 자란 사람이 보여주는 피해의식과 적개심. 잔혹함. 무자비한 공격성이 뒤섞인 행동이었다. 대선 낙선 후 주자 투식에 나선 것만 보아도 보통사람의 심성으로는 생각조차 못할 일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웠다. 변명하는 이재명과 숨통을 조여드는 검찰, 창과 방패의 싸움은 어떻게 마무리 될까. 형사 코롬보 드라마를 볼 때의 긴장감으로 법무부장관이 생각난다. 누군가 소 정묘와 닮은 사람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한 짓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남 탓이나 하는 하이에나 정치는 이제 그만두라” 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호 심송,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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