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밟고 가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조국의 시간’ 이란 책을 펴내면서 한 말이다. 시대착오적 현실 인식 때문일까, 뭔가 모르게 석연치 않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 불현듯 ‘민주’ 와 ‘조국’이 떠오르며 “어허, 이거 참” 맥 빠진 소리만 힘없이 나온다. 흘러가는 시간을 한 움큼 움켜쥐면 시대가 되고, 그 시대의 묶음은 역사가 된다. 시대와 역사는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그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천수(天壽) 는 지위고하(地位高下), 부귀빈천(富貴貧賤)을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며, 어느 누구도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부질없듯 시간의 한 중심에 점을 찍어도 그 시간이 멈추거나 되돌려 질순 없다.

조국의 내면에는 ‘어느 한 순간 문재인 대통령을 잠재적 피의자로 인식’하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난했다. “윤 총장이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는데, 문 대통령이라고 구속시키지 못하겠느냐” 고 윤 전 총장을 공격하는 자세다. “감히 문 대통령을 그렇게? 그럴 순 없다”는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었을까. 그야말로 ’내로남불‘ 이 아닐 수 없다. 박 정부 시절, 현직 대통령과 그 측근의 불법과 비리를 참다못해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이 문 정권이 입술에 침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극찬하고 감사(?)해하며 그토록 예찬하던 촛불혁명이 아니었던가. 최근의 한 세기에 한정할 때, 시간과 시대, 역사의 불가역(不可逆)성이 강했던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먼 훗날 후세에 평가될 역사들이 살아있는 권력자에 의해 마구 강탈당하고, 훼손이 되며, 역사를 잃어버리는 비운의 나라가 되고 있다.

한 동안 잠잠해져 잊어져가던 ‘조국’이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화제의 인물로 재부상하고 있다. 책의 첫 장에 있는 글귀를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불씨는 여전히 남아 타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자신과 부인(정겸심)이 무엇을 얼마만큼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 내려 가는 심정이었다. ”법을 어겨 처벌을 받은 것인데도, 무척이나 억울한가보다. 희생양인줄 착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 교수는 기소된 15개협의 중 11개가 유죄로 인정되어 중형을 선고 받았지 않은가. 인정을 하고 싶지 않은 가보다. 이보다 앞서 시험문제를 유출했던 숙명여고 교감은 징역 3년을 받았고 그의 쌍둥이 딸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 기소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해 3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위조문서를 행사하고 방송에 출현, 허위인터뷰까지 한 조국 딸은 성인인데도 기소조차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아버지 잘 둔덕에 특혜를 받은 바 있다. 가족이 피를 흘리게 한 것은 타인이 아니다. 다름 아닌 조국 자신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어떻게 자기 가족들이 그렇게 한 일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장관자리에 욕심을 내지 말고 거부했다면 이런 사태가 드러나지도 않고 묻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법은 없었습니다.”그는 청문회 준비과정에서도 줄 곳 불법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정치적 오판으로 다 드러났지 않은가. 심지어는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된 11개 혐의를 모두 부정했다. 정말 인정 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왜 법정에선 입을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했을까? 이제는 떠난 줄 알았던, 기억조차하기 싫었던, 조국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시간이 홀연히 되돌아오고 있다. 아직 필자는 조국의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구입 할 맘도 없다. 그런데 지인은 ‘조국의 시간’을 필독하고 내게 “말은 ‘회고록'이라고 하지만 참으로 민망한 수준이다.”라고 말한다. 고작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과 페이스북 친구들의 격려사, 그리고 관변언론의 기사들을 복사해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특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한동훈 검사장을 서울 중앙지검장 시켜달라고 했다는 고자질을 빼고 나면 나머지는 주관적 추측과 망상에 가까운 검찰 음모론 이라했다.

좀 조용하다싶던 민주당이 ‘조국의 시간’의 책이 나오자마자 시끌 하다. 지난 4월 성추행보권 선거 참패 이 후 잠시 자숙하는 듯싶었던 민주당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조 전 장관이 고난 속에 기반을 놓은 개혁과제, 특히 검찰개혁 완성에 힘을 바치겠다.”(이낙연 전 미주당 대표)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글귀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가슴이 아리다.”(정세균 전 국무총리)“ 조국의 시련은 개인사가 아니다. ‘조국의 시간’을 우리의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필자가 듣기엔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른 바 ‘대깨문’의 표를 의식하고 하는 발언 같은 느낌이 든다. 무슨 꿍꿍이가 있나 대선주자 중 유일하게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만 침묵을 지키고 있어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추측하건데, 일찌감치 1위를 굳힌 마당에 중도 층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책에는 ‘자신을 밟고 지나가라’ 고 했다지만, 대권 후보들마저 이 모양인데, 어느 누가 감히 조국을 밟고 지나가겠는가. 이는 조국이 ‘어디 한 번 나를 밟고 지나만 가봐라’ 하는 협박성으로 들린다. 한 때 차기 주자로 떠올랐던 주자였지만 지금의 형국은 당을 망치려는 물귀신 같은 존재로 보여 진다. 문 대통령도 “이제 조국을 놓아주자”고 했던 조국이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 조국은 당과 진영과 국민들을 양분화시킨 장본인으로서 나라를 초토화해 놓고도 뻔뻔하다싶을 만큼 ‘가족의 피’를 말하고 있다. 원망을 들을 사람이 남 탓하며 남을 원망하고 있다. 자신이 초래한 사회적 폐해에 대한 ‘공적 책임’엔 눈을 감고 외면했다. 또 자신과 가족의 탐욕이 초래한 ‘사적 피해’를 내세우는 오만함을 보여주었다. 공인으로 져야 할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오직 자식을 둔 아버지,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당한 아픔만을 내세우며 덮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자식과 아내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책 제목은 ‘조국의 시간’이었지만 내용으로만 본다면 ‘윤석열의 시간’ 이 맞는 것 같다. 온통 윤석열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윤석열을 저렇게 대선 반열로 올린 것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조국이 진보적 가치를 무참하게 무너트렸다. 신뢰를 잃었다. ‘공정’ ‘평등’ ‘정의’는 아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신뢰를 잃었다. 시민단체와 진보매체는 어느 때부터인가 어용이 되었고, 진보적 지식인들은 조국. 유미향. 박원순 사태를 거치며 제 존재의 바닥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는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사회적 발언의 힘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대깨문’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조국은 진보의 재앙이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스펙 품앗이’와 관련,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공정과 정의를 누구보다 크게 외치고 남을 단죄했던 우리가 과연 자기 문제와 자녀의 문제에 그런 원칙을 지켜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송 대표가 이날 ‘민심경청 대국민 보고회’라는 ‘큰 판’을 벌이면서까지 사과에 나선 배경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사를 둘러싼 ‘내로남불’ ‘무너진 공정’ 논란을 일찌감치 불식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또한 ‘리스크 관리’가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일부 강성 당원들은 민주당 당원게시판에 “민심도, 도의도 모르고 반(反) 정부 질한다.”, “조국한테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사과를 왜 하느냐” 등 거세게 반발했다. 사과한 송 대표를 두고는 “국민의힘으로 가라”, “사퇴하라” 등 항의가 빗발쳤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송 대표의 자진사퇴 또는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편 조 전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송 대표의 이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드린다” 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민주당은 이제 저를 잊고 부동산, 민생, 검찰, 언론 등 개혁 작업에 매진해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저를 밟고 전진하라”며 “저는 공직을 떠난 사인으로, 검찰의 칼질에 도륙된 집안의 가장으로 자기방어와 상처 치유에 힘쓸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아직 망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망상을 깰 유일한 인물은 오직 조국 자신뿐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그동안 거짓말 했다고 고백하고 지지자들에게 이제 자신을 밟고 가라고 하는 것 밖에 없다. 새로운 시간과 시대의 가치를 찬양하다가 불리해지면 옛 시간과 시대의 가치를 슬그머니 끌어다 붙이는 식의 자의적, 편의적 행보를, 사람들은 ‘내로남불’이라 부른다고 한다. 조국 사태와 관련, 사과한 송 영길 민주당 대표 수위 놓고 고심 할 필요 없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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