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하면 ‘모른다.’ 는 ‘모로 쇠’, ‘위법’이 드러나면 ‘관행’ 이다. 전 정부에서는 더 심했다며 ‘남 탓.’ ‘거짓’ 이 들통 나면, 가짜 뉴스. 언론과 야당이 ‘분열’을 ‘획책’ 한다. 거대여당의 고질적병(病)으로서의 특징 중에 하나다. 눈만 뜨면 “허 참” “정말 요지경 속이구나.” “이 나라가 어찌되려고?” 긴 한숨을 내쉰다. 기가 차거나 막힐 때 마다 나오는 탄식소리다. 황당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 아주 난감할 때 순간적으로 나타내는 현상이다.

세상이 요지경이 되어서인가.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뽑은 일꾼이 주인행세를 하며 “군말하지 말고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마치 왕조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누가 주인인가. 대통령을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건 완전 시대착오다. 제왕적 대통령은 있을 수 없고, 용납도 되지 않는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족 비리수사를 기점으로 울산시장 부정선거 개입, 월성원전 파기 사건, 라임·옵 티 머스 사태, 최근에는 김 학의 불법 출국금지 혐의 사건 등 현 정권 실세와 강성 친문(親文)의원들이 줄줄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재임 1년간 사사건건 사생결단식으로 윤 총장과 대립하며 기녀(棄帤)소리를 듣던 추미애 전 장관이 떠나고 박 범계 법무부장관이 부임했는데 우려한대로 한 술 더 떠 칼날을 휘두르는 것으로 보면서 “허 참, 그 나물에 그 나물”소리가 공허한 허공에 울려 퍼진다.

지난 7일 박 장관의 첫 검사장급 인사가 우려한대로 발표되자 분노를 삼키는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휴무날인 일요일 대낮에 ‘추미애 시즌 2’가의 개봉이 선포되었으니 많은 이들이 이외로 당혹감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최근에 논란이 일고 있는 신현수 민정수석 사의(辭意) 파문의 본질은 “나만 옳다”고 믿는 제왕적 대통령의 독주로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를 향하는 권력형 비리 수사 차단은 임기 말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자신을 유일하게 지켜줄 수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한 것으로 풀이 된다. 그러니 박 장관이 “왜 너는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는 취지로 신 수석을 몰아세우며 검사장급 인사에서 그를 패싱 한 게 화근이 된 것 같다.

신 민정수석은 “윤 총장은 문재인 정권의 총장”이라는 대통령의 말만 믿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중재하려 했다. 오죽하면 신 수석은 “다시는 박범계와는 만날 일이 없다”고 했을까? 헌법 11조가 명령한 ‘법 앞의 평등’은 실종됐다. 기업 CEO로 잔뼈가 굵은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합리적인 신 수석의 기용으로 민생 중심으로 국정운용 기조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문 대통령은 신 수석에게 “검찰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거듭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결과적으론 말만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메신저를 보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했다지만, 이와 상관없이 대통령 주변에선 윤 총장 밀어내기 광풍이 불었던 것과 흡사하다. 어느 쪽이 진짜 문 대통령의 ‘심중’인지 헷갈린다.

지금으로부터 6년여 전 야당 의원이 이런 개탄을 했다. “지금 청와대에는 위아래도 없고, 공선사후(公先私後)의 기본 개념도 없다. 콩가루 집안이란 말이 있지만, 국가 운영의 심장부가 어떻게 이처럼 비극의 만화경(萬華鏡)일 수 있겠는가.” 또 한 야당의원이 “국가 기강이 쑥대밭이 됐다”며 대통령의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최장수 민정수석 출신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 때 보다 더 한 지금, 문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어떤 말로 어떻게 변명하며, 위기를 넘기려고 할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여전히 그림자로 숨어서 침묵만 하고 있을 것인가.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반성했다.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1219 끝이 시작이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진보’가 여전히 살아 기승을 부리며 이 사회에 혼란을 주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수사의 대상이 된다.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 티 머스 사태, 김 학의 불법 출국금지 혐의로 정권 실세는 물론 청와대, 더 나가서는 문 대통령에까지 수사의 손길이 뻗칠 수도 있다.

실제로 월성 원전과 울산 선거 개입,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사건에는 대통령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되었다. 이와 관련, 현재 현 정권 실세와 강성 친문(親文) 의원들이 줄줄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수사의 칼날을 막거나 속도라도 줄이려면 ‘충견’ 같은 가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는 굳이 법무부인사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구린내가 물씬 풍기는데도 여전히 감추려고 애쓰는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감추면 감출수록 의혹은 커질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이 그 한 예다.

문 대통령은 불리하다 싶으면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 예로 김 학의. 장자연 사건에 대해선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또 세월호 사찰 의혹에 대해서도 기무사의 재수사를 외국에서 공개 지시까지 하는 열성을 보이면서도 정작 사회문제로 확산되는 박원순. 오거든. 안희정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입을 굳게 닫고 회피한 게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의와 공정을 앞세운 인권 변호사 출신 문 대통령의 임기 중에 사법의 신뢰가 무너진 것은 슬픈 역설이다. 검찰의 산 권력 수사과정을 지켜보면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는 대통령 선거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지시를 장. 차관급 공무원들에게 하달 할 때, “헌법과 법률의 적법절차를 지켜서 하라.”는 말을 잊고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설령 그 말을 했어도 지켜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나름 상상으로 맡기겠다.

이번 법무부 인사 발표가 먼저 나고 하루 뒤 대통령이 사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이라면 분명 법 절차 위반이다. 또 박 장관이 임의로 결행했다는 말과 관련, ‘보고가 됐다’는데 누가 했나. 이광철 민정비서관은 어느 정도 개입돼 있는가.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전임 민정수석 때도 이 비서관이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이 부분에도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회피했다. 의문투성이다. 그러나 박 장관이 밀어붙인 이번 인사 안은 어쩜 묵시적으로 대통령과의 이해관계가 일치 할 수도 있다.

애매한 신 수석이 졸지에 왕따를 당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복귀는 했지만, 사의 철회는 아니라고 했고, 다만 대통령에게 일임한 것은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청와대의 빈약한 설명대로라도 이 같은 사단을 자초한 건 박범계 법무부장관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박 장관에게 어떤 식으로든 경고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사전에 용인했나, 아니면 묵과하기로 한 건가. 의구심이 들지만 이 부분에서도 대통령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우려되는 것은 이번 검찰인사에서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이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되었다는 점이다. 임 부장검사는 이번 인사로 수사권을 확보한 뒤 내부 감찰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임 연구관이 그간 검찰이 한 전 총리 수사 과정에서 주요 증인들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과 관련, 감찰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임 연구관이 앞서 다수의 고발을 직접 제기해 감찰과 수사 등이 계류 중인 점을 고려할 때 공정성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검찰의 한 간부는 “결국 한 전 총리 사건을 수사해 기소하라는 임무를 내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법무부 장관이 이렇게 인사를 내는 건 사실상 수사지휘권 행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를 곱씹게 여기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의 비리를 캐라고 한다면 과연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 질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허 참’ 소리가 자꾸 절로 나온다. 임 연구관은 ‘등산화를 신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흡족해하지만, 오히려 망나니가 칼자루를 쥔 것처럼 보인다. 민심은 생각보다 냉철하다. 이 같은 검찰 인사 갈등에 대해 최고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반성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권력은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언제까지 문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것인가.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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