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막 가자는 건가 요!” 초임 검사들과 대화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암담하고 착잡한 심정이 들며 꽃 감 연시 터지듯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다. 마치 왕(王)의 나라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짐의 말이 곧 법이니라’ 실감 나는 요즘 현실이다. 임기 3년 반 동안, 민생현안은 다 제겨두고, 오직 검찰개혁에만 사활을 걸고 매달렸던 문 정권이 메뉴를 바꾸었다. 이른바 검찰개혁 다음으로 사법개혁을 찍었다. 이들 부류에게는 특징이 있다. 늘 누군가를 ‘적(敵)’으로 만들어 여론몰이로 희생제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검사들을 소금에 절이듯 절여놓았다는 판단 아래, 이제 법관(판사)들을 새로 개혁에 저항하는 적폐세력으로 정의를 내린 것이다. 어찌하다 이 나라가 이런 무법천지가 되었나하는 생각에 서글픈 마음이 된다.

개혁의 방법은 법관탄핵. 이제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국회가 사법 농단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사법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매의 눈으로 먹잇감을 찾았다. 그 결과 임성근부장판사가 첫 먹이 감으로 걸려든 것이다. 열린민주당. 강민정, 정의당 류호정,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이 지난 1일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161명)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전쟁 영웅처럼 우쭐해 하는 모습들이 가련해보인다. 더 가관인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법관 탄핵에 나설 것이며, 다 함께 동참 해줄 것을 촉구한다.’ 왜 때 아닌 법관탄핵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말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일본기자의 판결에 대해 부당한 간섭이지만, 내심 배경은 조국 부인 정경심, 최강욱 판결 등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문정권의 누적된 불만이다. 법원에서 자신들의 위법에 줄줄이 유죄를 선고하고, 자신들의 초법에 번번이 제동을 걸자, 사법부에도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곧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공수 처도 가동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최강욱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도록 갚아주겠다.” 기소를 당한 후 자숙은커녕 오히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법정에서조차 주인을 모시는 점령군 행세를 하며 거드름을 폈다. 그는 대통령 우편에 앉아 계시다 저리로서 검찰(검사)과 법원(판사)을 심판하러 오신 분이 아니던가. 그런 그에게 법원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니 괘심 죄가 적용될 수밖에, ‘집을 지키라고 했더니 주인을 물려고 한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개인가. 전직 장관 추미애의 말이 생각난다. “내말만 고분고분 들으면 아무 탈도 없는데....”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부여받았던 사법부는 이제 더 이상 개혁주체가 아니라 개혁대상이다.” 앵무새처럼 익숙한 레퍼토리의 반복.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자기들이 칭찬하며 세운 검찰총장을 공격하더니 감사원장마저 쫒아내려고 했다. 급기야는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법석이다. 자신들의 실책은 생각지도 않고 모든 게 검찰. 감사원. 법원 탓으로 돌린다. 무지한 문파교도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려고 한다. 무조건 아멘이다. 거짓이 드러나도 믿으려 하지도 않고 불리한 것은 모두 가짜 뉴스로 몰아붙인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국회법에 따라 무기명 투표 방식으로 진행된 탄핵안 표결에서 재석 의원 288명 가운데 찬성 179표, 반대 102표, 기권 3표, 무효 4표가 각각 나왔다. 무기명이어서 정확한 찬반 명단을 알기는 어렵지만, 진보-보수 진영으로 정확하게 양분된 결과로 분석된다. 유일하게 문 대통령이 지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여러 차례 겪는 국민들은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문 정권 들어선 이후 ‘헌정 사상 초유’라는 말을 곧잘 듣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문 정권 주류세력들의 몸에 기입된 운동권 습속(習俗)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자꾸 충돌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법농단 판사들의 탄핵소추는 이미 2018년 11월 전국법관회의에서 거론된바 있다. 그런데 그동안 손 놓고 있던 집권당이 이제 와서 힘을 과시하듯 판사들을 싸잡아 적폐로 내몬다.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한 탄핵인가? 탄핵심판의 목적은 위법한 행위를 했으니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을 해임하여 직무를 정지시키는데 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지금 탄핵의 대상자는 어차피 이달 말로 임기가 만료되어 퇴직한다. 그래서 탄핵소추의 실익이 없다. 결국 쾌심 죄로 찍힌 한 사람의 변호사 취업을 막겠다는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탄핵대상은 이름도 생소한 일개 판사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부장판사는 의사만 표현했을 뿐 유무죄 판단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법정에서는 무죄를, 법원에서는 가벼운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굳이 국회에서 탄핵까지 해야 하는 지. 고작 명예훼손 소송을 사법농단의 대표사례로 내세우려니 명분이 부족한 것 같다.

한 술 더 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대표는 언론 개혁도 거론한다. 정작 제일 먼저 개혁될 대상이 국회의원인줄 모르고 설치는 것 같아 애처롭게 보인다. 2년이나 넘은 시점에서 딱 한 사람을 찍어 탄핵을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추측 건데 권력비리 수사를 막는 싸움에서 전패를 하다 보니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시선을 슬쩍 사법부로 돌려 우매(?)한 국민들로 하여금 사법부에 돌을 던지게 하려는 음흉한 심보가 엿보인다.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임성근부장판사의 희생으로 과연 검찰, 사법부는 순결해지고, 민주당은 결백하고 문파지지자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수시로 ‘선출된 권력’ 타령을 하는데 그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 검찰청을 제대로 견제하겠다니? 소름 끼친다.

한 고등법원의 부장판사는 "일부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정치적 존재감을 높이려고 벌인 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며 "자꾸 불리한 판결이 나오니까 본보기를 보이려는 게 아니겠나." 라고 질타했다. 한 고법 판사는 "각하될 수밖에 없는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정치권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핵 사유는 표면상의 이유일 뿐 실상은 여당에 불리한 판결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위헌성 여부와 형사재판에서의 판단은 별개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다른 어떤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탄핵소추가 이뤄졌다" 며 "탄핵의 증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짚었다.

다수의 판사들은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고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거짓 해명한 데 대해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방법원에서 형사부 재판장을 맡은 부장판사는 "피고인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조차 부끄러워서 할 수가 없다" 며 "대법원장부터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들통 났는데 얼굴이 화끈거려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일선 판사들은 대체로 참담하다는 입장이다. 일선 판사들에게 외부의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의연한 모습을 주문했던 대법원장이 정작 여권의 탄핵 논의를 의식해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 독립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날선 반응도 많았다.

비교적 대법원장에 우호적 입장을 보였던 판사들까지도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출범 3년 6개월여 만에 ‘거짓 해명’ 파문으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으며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2017년 9월 국회 찬성률 54%로 역대 최저치로 임기를 시작한 김 대법원장은 그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내세우며 전임인 양승태 대법원 출신 법관들을 좌천시켰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번엔 거짓말 논란에까지 휩싸여 대법원장 사퇴론도 불거지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설문지에 따르면 탄핵 찬성 44.3%, 탄핵 반대 45.4%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나타났다(오차범위 95% 신뢰 수준에서 ±4.4%p). 4·7 이번 법관탄핵 결과로 서울. 부산 시장 재 보궐선거 표심을 예측할 수 없는 분위기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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