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왜 이래?” “어쩌다 이 나라가 이렇게 무법천지로...” “결국,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건가?” 한숨 섞인 탄성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요즘엔 술이 잘 팔린다고도 한다. 왜 이렇게 국민들이 긴 한숨을 쉬며, ‘폭음’을 하게 되었을까? 답을 알아야 비로소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례없는 ‘관심법’이 존재하는 나라다. 대통령을 헌정 사상 초유로 마치 군주국가의 절대자인 왕(王)처럼 모시는 나라로 변질되면서 대한민국이 퇴보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래는 과거의 결산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다가올 미래를 알기 위함’이라 했다. 함석헌 옹은 역사를 설명하기를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은 모든 사람이 물어야 하고, 한 시대의 실패를 다음 시대가 회복할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명쾌한 답을 말했다.

다수의 민중은 어느 누구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임을 이구동성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돌아가는 품새가 가관이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이나 민중이나 모두 정상인이 아닌 것 같다. 날이 갈수록 거대 여당의 폭주가 점입가경이다. 집권여당은 다수의석을 빙자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을 비롯해, 논란이 일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대공수사권을 경찰청으로 이관하는 국가정보원법, 특정지역을 위한 5.18특별법 등을 단독 강행처리 했다. 이는 수적 우세를 앞세운 다수의 횡포다. 소수의 야당과 타협하지 않고 폭압적으로 처리하는 국회는 결국 전체주의나 다름없다.

요즘 청와대와 여당을 보면서 떠오르는 게 똥개다. 똥개의 특성은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똥개 모두가 영문도 모른 채 합창으로 짖어댄다. 똥개 스스로 지금 왜 짖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 ‘이니’의 뜻(?)에 따라 무조건 짖어대며 편 가르기를 하는 모습이 꼭 그렇게 비취진다. 586전사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자진사퇴하라’고 집단린치를 가하고 있다. 이유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사임의사를 밝혔고, 또 문재인 대통령도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 며 윤 총장 징계에 대해 ‘재가’를 했음에도 윤 총장이 그 명을 거역하고 덤빈다는 것이다. ‘재가’ 라는 용어도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옛날 군주시대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결재’또는 ‘싸인’ 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재가((裁可) 라는 용어를 써야 할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586전사들은 한참 착각을 하고 있다. 하나 만 보고 짖어댄다.

윤 총장이 만에 하나 징계 죄목을 인정하는 순간, 곧바로 좌파단체들이 고발이 들어오고, 공수처가 첫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 할 것은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윤 총장은 정직 처분을 받아드릴 수 없는 거다. 윤 총장은 법치주의는 물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법적’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을 보면서 과거 두 분의 검찰총장이 떠오른다. 한 분은 이명재 검찰총장(2002년 1월~ 11월까지 재임)이다 이 총장은 집무실 책장에 채기 없다. 단 한권의 법전과 낡은 서류 가방뿐이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과 신승남 직전 검찰총장까지 구속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취임 11개월 만에 검찰에서 피의자가 숨지자 책임을 느끼고 사표를 던지면서 깨끗한 뒷모습을 남겼다.

또 한 명은 2대 검찰총장을 지낸 김익진 총장(1949년 6월 ~ 1950년 6월 재임)이다. 평양에서 반탁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루고, 월남 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발탁되어 검찰총장을 지냈다. 이 총장은 당시 경무대에 선을 댄 정치 브로커들이 무고한 인사를 빨갱이로 몬 ‘대한정치공작대’사건이 터지자 ‘그들을 기소하지 말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서신을 무시하고 108명을 채포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분노한 이 대통령이 그를 지방 고검장으로 강등시켰지만, 김 총장은 그런 치욕 속에서도 “정치적 압력으로 검사를 몰아 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며 고검장직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 후에도 이 대통령의 보복이 계속 이루어졌지만 그는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총장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총장도 된다.” 며 스스로 수난을 각오한 인물이다. 역대 43명의 검찰총장 중 정권의 시녀가 되길 거부한 가장 상징적 인물이다.

여론조사를 100%다 믿을 순 없지만, 여론조사는 과학적이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다. 표본과 응답률만 잘 관리된다면 틀릴 이유는 없다. 특히 정치는 더욱 더 그렇다. 문 정권이 들쭉날쭉한 여론조사를 내세우며 포퓰리즘으로 달릴수록 오히려 의심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본드를 붙인 것처럼 고정 지지율이 떨어졌다. 그런 조사를 믿어야 할까. 믿어야 할 것 같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다. 눈만 뜨면 마치 여왕이나 된 듯 “내 명을 거역?”하며 매일매일 점입가경으로 질주하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폭주를 보게 된다. 이제는 눈에 가시 같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내 쫒기 위한 징계위 까지 열어 대통령의 결재까지 받아냈다. 헌정사상 최초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이 같은 갈등이 ‘추와 윤’의 갈등인양 딴청을 피더니 징계에 대해 결재를 하면서 모든 잘못을 검찰총장에게 떠밀며, 아주 나쁜 검사로 몰아붙였다.

그런데 그 완고한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로 보면 추미애 장관 아웃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윤 총장의 사표 반대 역시 압도적이다. 그래도 문 정권은 ‘무아지경’에서 헤매며,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이 나라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22일 법원이 윤 총장 징계 집행정지 신청의 심문을 했고 조만간 결정을 내릴 모양새다. 결과는 속단하기 이르지만 징계자체는 부당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미국에는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 아니라 반드시 보여져야한다.’는 법언(法彦)이 있다. 판결의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번 징계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절차도 다 무시한 권력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조차 54.8%가 ’윤 총장의 동반사퇴는 있을 수 없다고 응답했다. 이번에 심리를 맡은 홍순욱 부장판사가 아무래도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홍 판사의 평소 성향이나 인품이 신중한 만큼 법원이 정치적 다툼에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이번 집행정지를 기각시키고 시간을 두어 본안 소송에서 다투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기각될 경우 남은 임기(7개월)가 끝난 후에나 본안 판결이 나온다. 너무 늦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다.

윤총장 징계가 부당한 것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시급한 구제가 필요하다. 특히 임기가 보장 된 검찰총장 징계는 더 더욱 엄격해야 한다. 이미 여론조사에서도 부당한 징계라는 게 대세가 아닌가. 더구나 경륜이 풍부한 전직 검찰총장 9명의 집단 성명도 무겁게 받아드려야 한다. 이번 결정은 건국 이래 가장 중요한 판결로 남을 것이다. 윤 총장은 문 대통령에게 덤비는 게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자신을 지키고자 법정 투쟁을 하는 것이다. 3년 반 동안 온 나라를 블랙홀로 빨아들인 이 혼돈의 결과물은 이렇다. 대통령이 장(長)과 검사 25명을 임명하는 옥상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탄생과 뒤이은 윤 석열 검찰총장의 정직이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비를 걸지 않는다. 다만 이 같은 무소불위의 공수처는 이제 누가 견제하느냐는 것이다. 다음은 또 공수처 개혁을 말할 것인가? 음흉한 속내를 드려내지 않고 미소를 짓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완벽한 검찰개혁의 도구로 정치권력이 칭송하던 윤 총장이 제단의 예물로 전략해버렸는데 그 이유는 그의 칼날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날을 내밀면서다. 사람들은 집권 3년 반 내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윤 총장 자르기에 혈안이 된 문 정권에 ‘식상’이 되어 무척 피곤해 한다.

정경심 동양대교수가 징역 4년형을 받고 법적 구속됐다. 법원은 정씨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씨의 진학용‘스펙’ 위조에 대한 검찰 주장을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또한 조 전 장관과 정씨가 딸 조씨 인턴 경력 확인서 위조의 공범이라고 단정해 그 의미가 크다. 별도로 재판받는 조 전 장관에게도 유죄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판결로 우리 사회에서 옮음과 그름의 경계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정의’ 회복의 신호탄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범죄가 정의로 둔갑하고, 불법을 저지른 자가 꽃다발을 받는 타락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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