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고물 갖다 주고 엿 바꿔 먹은 적은 있지만 나라 갖다 바치고 폐렴 바꿔 처먹는 놈은 처음 봤네 그려.” 요즘 항간에서 풍자되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나라’로 바뀐 이 나라가 깊은 바다에서 마치 태풍을 만나 난파된 배처럼 출렁인다. 많은 사람들이 울렁거림에 멀미까지 한다. 또 민심이 흉흉하다보니 “하나님이 노하셨나? 부처님이 노하셨나? 인간들이 얼마나 거짓과 막말을 하였기에 마스크로 주둥이를 막고 살라하는지요. 그리고 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떨어져 살라(거리두기)하는 지요. 또한 얼마나 도둑질과 못된 짓을 많이 했기에 물만 보면 손을 팍팍 씻어라 하는 건지요? 어찌하여 한 해가 다 저물도록 비. 구름으로 태양을 가리고, 농사를 망치게 하고, 상인들은 문을 닫아야 합니까?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기에? 천지신명이시여. 두 손 모아 비오니 이제는 노여움 푸시고 거짓 위정자, 죽정이 베 듯 뿌리 채 뽑아버리시고, 이 나라 만백성을 구원하여주옵소서.” 라는 탄식에 소리가 들린다.

요즘 들어 정치권 행태를 보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자유와 경제발전을 이룩해놓은 이 나라가 파국을 맞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가 재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곳간이 비게 되면서, 세금을 올리고, 결국은 지도자의 ‘실정(失政)’으로 국민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너무 비약하는 것 같지만, 동서양 모든 왕조 몰락도 이와 같았고. 무능한 권력층으로부터 무자비한 착취와 폭압정치가 계속되고, 백성들이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 생활고로 인해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일어나게 된다. 프랑스혁명도 마찬가지다. 위축된 경제가 급격한 세금 인상을 초래했고, 세금 상승과 내핍생활에 힘겨워하던 백성들이 혁명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망국(亡國)이 되어 가는 순서다. 지금 이 나라가 바로 그런 순서를 밟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여의도 정치가 아주 실종됐다는 긴 한숨소리가 퍼져 나오고 있다.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국회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한 여당이 ‘일하는 국회’를 앞세우고 야당이 사사건건 국정 발목만 잡고 늘어진다며 야당 탓만 늘어놓는다. 이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최고 지도자는 물론이지만, 입법부가 제대로 기능을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삼권분립을 권력 운용 원리로 채택한 대통령제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란 비판을 받아온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헌법에 보장 된 대의 권력 상호 간 권력분립과 견제의 원칙이다.

입법부가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려면 여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여당은 청와대가 미처 놓칠 수도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해 국정에 민심의 뜻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물론 여당이 청와대와 선을 그어서는 안 되지만, 의원직은 임명직이 아닌 별개의 독립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선출직이다. 그래서 국회는 권력 간 상호견제의 목적에서 주권을 행정부와 나눠 국민에게서 위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회 내 여. 야 간 소통이 정체되고 여당이 독주하듯 법안이 단독 처리되고, 입법부를 통한 대의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이다 보니 국민들은 대의 기관인 국회를 통하기보다 청와대 게시판에 직접 청원의 글을 올리는 빈도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흉악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 요구부터 야당해산, 추미애 장관 아들 병역문제, 손혜영, 조국 수사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청와대 게시판을 두드리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답변 등 실효성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내 편에 불리한 청원은 유야무야 어물 쩡 넘기려하고 특히 대통령과의 문제 제기는 아예 흐지부지 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정권과 달리 청와대 중심으로 흐르는 한국 정치에 대해 국회나 다른 정부 조직을 탓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비대한 청와대는 스스로가 과도하게 많은 업무를 직접 챙기려 든다. 시시 꼴꼴한 잡다한 일까지 모든 것을 간섭하려고 한다. 현재 문 정권 들어서면서 청와대 조직은 과거 어느 정부 때 보다 비대하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 외에도 각종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행정부 조직과는 별도로 각종 소관업무와 개혁 작업(?)을 챙기고 있다. 청와대 스스로 주요 사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활동 반경이 확대 될수록 내각마저 움츠러들며 권한 위임이 약해지는 것이다.

내각 역시 임명제가 되다보니 좀처럼 소신 있는 업무자세를 보이지 않고 절대자의 입맛을 맞추려고 한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정치과정의 핵심에 위치하는 권력구조다. 대통령제의 주된 성패요임은 삼권분립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지켜지는 냐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행정부처에 대한 책임감 있는 권한 위임은 전문성 기반의 민주 정부가 갖춰야 할 핵심 통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헌법은 대통령이 내각(국무 위원회)을 통해 통치하고, 입법부인 국회는 정부를 견제하도록 했다. 이러한 제도적 기제를 통해 권력 집행의 ‘불편함’을 가미해 놓은 것은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통치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었다.

‘오직 이니가 한다면’ 운동화를 던지며 ‘이 나라가 네꺼냐’ 하는 소리가 나올 만큼 헌법을 능가 할 정도로 삼권 분립이 무시되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장관들은 인사청문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부적격자다. 임명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하나같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사법부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와 국민을 생각에 하기 앞서 단 한 사람을 위한 인사를 하다 보니 상식 이하의 인사로 지탄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내 편이라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법. 입법. 행정, 국정원 심지어는 언론사까지도 모두 장악된 상태로 알고 있다.

절대 왕권시절에도 목숨을 걸고 “아니 되옵나이다.”하는 간언을 한 신하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코로나 확산과 관련,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모두를 대변해야하고 중립적인 입장 이어야하는 대통령. 유독 8월 15일 광화문 집회에 대해서만 “국가방역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며 “정부는 강제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매우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 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 하느냐 하는 것이다.

로마 시에 큰 화재가 일어나 민심이 흉흉해지자 네로 황제가 기독교도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대대적으로 처형했다. 이는 로마제국 최초의 대규모 기독교 탄압이다. 종교에 관대했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탄압한 것은 기독교가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때가 연상되며 참으로 무서운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실책으로 코로나가 확산된 것에 대해 솔직히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빠른 대책마련을 했어야 하는 데, 오히려 그 진원지를 자신에게 반기를 둔 전광훈 목사와 그 교회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조국 때처럼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일까 진보성향이 있는 모 교단은 대통령의 의중을 읽은 듯 전광훈 목사를 비난하며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방역체계를 무시한 전 목사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고 법적, 교단 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를 전 목사와 사랑의 교회에 두고, 교계가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작 국민들에게 사과할 대상은 정부이자 대통령이다. 원천적으로 우한폐렴을 막지 못했고, 또 방역당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외식장려 등을 부추긴 정부에 책임이 더 크다. 그러면서 이제는 교회의 예배까지도 자신들이 결정하며 모든 예배를 비 대면으로 하라더니, 뒤늦게 교계 원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부탁을 했다. 정말 도움이 필요했다면 원로들의 만남 이전에 교인인 국민들과의 소리도 들었어야 했다.

정부와 여론은 교회를 감염 위험지로 낙인을 찍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과 교회를 싫어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교계가 그 획책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전광훈 목사를 기독교계에서 파문하는 것과는 별개다. 침묵이 때로는 공범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은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에 의해 멸망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하며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에 의해 멸망 할 것이다.” 엘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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