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60대 중반의 나이 쯤 되면 다들 나라걱정을 한다. 요즘 상황이 더 더욱 그렇다. 많은 국민들이 나라가 경제 침체에 이어 뒤숭숭하다고 긴 한숨을 내쉬며 불안해한다. 광장의 분열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 한 해 내내 ‘조국’을 두고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쪼개진 민심이 이번에는 백선엽과 박원순,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 확연하게 다시 갈라섰다. 하루차이로 타계한 고(故)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서울 시장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사수한 전쟁영웅 백 장군에 대해서는 한 줄에 추모 논평조차 내지 않은 반면, 성추행의혹 혐의로 고소당한 직후 자살(?)을 한 박 시장에 대해선 닷새에 걸쳐 당. 정. 청 고위층이 총출동, 영웅으로 만들며 박 시장 띄우기에 혈안이 되는 등 ‘국민장 급’ 장례를 치르면서 막대한 국비를 낭비했다. 그러나 세계 전쟁사(史)에 기리 남을 업적을 남긴 전쟁 영웅인 백 장군의 장례는 ‘국군 장’이 아닌 ‘육군 장’으로 격하시키고, 유해도 서울이 아닌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안장 됐다. 세계 군인들이 다 알아주는 전쟁 영웅을 대한민국 정부는 외면했다. 보훈처는 ‘서울 현충원이 묘역이 부족하다’는 구국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려되는 것은 현 집권 세력이 백 장군을 ‘친일파’로 몰아세우면서 대전 현충원에 안치 된 장군의 묘가 언제라도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15일 안장 식에서도 일부 좌파세력들이 몰려와 신성하고 엄숙해야 할 현충원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김홍걸, 이수진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국립 현충원에서 친일파의 유해를 이장시키는 ‘파묘’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속죄인지, 도피인지 분명치 않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시장의 의혹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조국을 지켜낸 백선엽 장군의 경우는 다르다.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이 합세해 전쟁 영웅을 친일파로 몰아세우며, 장례도 격하시키는 건 망자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외국 대통령과 정부가 군인을 예우하는 모습에서 참으로 낯 뜨겁고 부끄러운 마음이 된다.

굳이 과거를 들춰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북한하고 싸움이 붙으면 먼저 총 쏘지 말고 방어만 하라’는 지시로 많은 사상자를 낸 연평해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 월드컵을 관람했다. 또 간첩죄로 복역을 한 ‘신영복과 윤이상, 그리고 6.25 전쟁 시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김원봉을 존경한다.’ 던 문재인 대통령. 그래서 “북한 김정은이가 싫어하는 백선엽 장군을 전쟁영웅으로 만들기를 거부하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는 믿고 싶지 않은 세간의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백장군의 부음(訃音)을 실은 어느 신문에 달린 장군에 대한 부제들 중에서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이 가장 존경한 한국군인"이라는 부제를 보고 마음에 피멍이 맺힌다. 멋진 부제였는데, 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군인"이라는 부제는 달리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슬픔과 하늘의 분노가 엉겨 붙어 가슴이 돌덩어리가 되는 데, 이런 마음이 필자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대한민국의 반만년 역사는 외국의 침략으로 점철된 피의 기록이지만, 꺼져가는 나라를 구한 충신들에 대해서는 참으로 인색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국민들이요 정치인들이다. 이 나라에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로 지금까지 422년 동안은 평화롭고 아무 일이 없었기나 한 듯이 충무공 이외에는 어떤 충신이나 장군도 거국적으로 받들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이루어 놓은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을 물먹듯이 누리는 이율배반적인 역사관이 만연해 있다. 6.25전쟁 때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한 백 장군의 공(功)은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과(過)가 있었던 것 또한 부인 할 수 없다. 문제는 ‘공’과 ‘과’의 무게를 사실에 근거, 온당하게 평가하는데 달렸다. 백장군의 ‘과’ 만 집중 조명하는 부류들은 ‘공’ 에는 눈을 감거나, 아예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정치적인 의도도 있겠지만,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

백 장군이 일제지배하인 1943년 2월 만주 군에 복무한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당시 독립군은 만주를 떠난 상태였다. 이미 항일연군이 궤멸되고 김일성 등 조선인 잔여 세력은 1940년 소련으로 도피 한 뒤였다. 그런 이유로 백 장군은 간도 근무 시절 순찰활동만 했고, 교전은 없었다고 그의 회고록에 쓰여 있다. 겨우 하는 일이란 정보 수집이나 민간인 상대의 선무공작 활동을 할 정도라고 했다. 백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한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위원회의 보고서(2009년)나 연구 자료에도 백 장군이 구체적으로 독립군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된 사례는 없다. 따라서 1938년 창설 된 간도특설대가 한 모든 만행을 43년 부임한 백 장군에게 전가 해 ‘독립군을 때려잡았다.’는 낙인을 찍을 순 없다. 그럼에도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일제군대의 일원이 된 것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일 수밖에 없다. 설령 그 같은 ‘과’가 있더라도 ‘공’을 뛰어넘을 순 없다. 미국 백악관. NSC 등에서는 백 장군 ‘서거애도’ 성명서가 발표되는데도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누구의 눈치를 보는 건지 그의 친일 경력만 부각시키고, 선동하며 추모 성명 한마디도 내지 않고 이상하리만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반면에 자살을 한 박 전 서울 시장에 대해선 여권이 나서서 서울 광장에 대규모 분향소를 설치해 시민들의 조문을 유도하고, 민주당 당 대표가 영결식에서 조사를 직접 낭독하는가 하면 한 술 더 떠 거리 곳곳에 추모 현수막을 걸고 ‘맑은 분’ 이란 표현까지 쓰며 미화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또 ‘잊지 않겠다.’ 는 문구도 눈에 띈다. 뭐가 맑은 것이고 또 무엇을 잊지 않겠단 것인가? ‘추행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인가.

문대통령도 박 전 시장에 대해서는 “사법연수원 동기로 오랜 인연을 쌓아온 분.”이라며 애도 메시지를 냈지만, 전쟁영웅으로 칭송 받는 백 장군에 대해서는 조문 여론을 일축하고 비서실장을 빈소에 보내는 선에 그쳤다. 국군통수권자가 그런 태도를 보여일까. 육군본부조차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우국 청년단체들이 지키기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현역은 그렇다 해도 예비역 장성들이 침묵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5.18 광주사태나 4.15세월호 해상사고로 인한 행사에는 줄을 이어 찾아다니고, 극단적 행동을 취한 박 전 서울시장 빈소에는 앞 다퉈 조문을 하면서도, 정작 전쟁영웅인 백 장군에 빈소는 찾지를 않았다. 언론도 매 한가지다. 박 전 서울 시장 빈소는 시시각각 보도하면서도 백장군의 분향소 현장의 보도에는 매우 인색해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했다. 6.25 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과 함께 싸웠던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대장의 아들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백 장군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등 전직 주한 미군 사령관들도 잇따라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끝내 아무 말도 없었고,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사병의 영정 앞에 서는 다른 나라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런 국군통수권자가 있는 나라에 국민이 군인이 되어 목숨을 바치겠는가.

조국 가족 사건에서도 정부 여권이 분열을 조장했지만, 호국 영웅 백 장군과 성추행의혹이 불거진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한 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여권의 지나칠 정도의 대응에서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분열이 더욱 신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동안 미군 장성들은 한미연합사령관으로 부임하거나 한국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백 장군을 만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평가는 냉철하고 엄정해야 하지만, 여기에도 정상참작의 여지는 남겨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해방된 조국에서 백 대장이 남긴 공적의 평가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후대가 평가한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우(愚)를 범 하지마라.’ 국민은 투표로 심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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