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은 닦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위와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얼핏 무슨 퀴즈를 말하는 것 같아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바로 답을 말한다면 ‘입과 항문’ 이다. 입은 먹고 항문은 싼다. 먹고 싸지 않으면 인간은 그 생명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비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과 항문은 항상 청결해야 하고 냄새를 피우지 않기 위해서는 다물고 있어야 탈이 없다. 입과 항문이 탈이 나면 인간은 고통을 받고 또 심할 경우 존재할 수도 없다.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이가 들어 비로소 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인간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짐승의 후손이라는 모욕적인 개념들을 소화했다”고 말이다.

거창하게 인간의 존재 또는 실존을 말하기는 했지만 작가 김훈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이다. 나머지는 다 부속기관에 불과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김훈이 하고 싶은 말은 궁극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이라는 뜻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혼이나 사상 같은 게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인간들의 실재 또는 실존이 무엇보다 중시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책 이름 조차 ‘영혼의 자서전’ 이니까 영혼이나 사상이 강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이들 작가들이 강조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요즘 흔한 말로 하면 ‘민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의 대가들조차 인간이라는 존재를 파악하는데 있어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 하지만 요즘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보면 여의도 국회가 시끌하기는 한데 국민들의 삶과 직접 관련된 사안보다는 자신들의 이권문제에 매달려 아까운 시간을 허송세월로 소비하며 세비만 날름 챙기고 있다. 입이 좋아 그런가, 배설을 잘해 그런가, 소화를 아주 잘 시킨다. 탈도 나지 않는다.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 신성해야 할 국회에서 막말을 마구해대면서 정국이 시끌하다. 남의 소리에 귀 기우리기보다 자기의 소리만 내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가시 돋친 입씨름이 여의도에서 끊이지를 않는다.

대기업 임원이 여승무원에게 막말을 하고 중소기업 회장이 벨보이를 함부로 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모 기업 영업사원의 경우 대리점주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막말을 해 자살까지 한 충격적인 일도 기억난다. 갈수록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일이 실종되어가는 듯해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답답하다. 말을 함에 있어 ‘역지사지’ 하여 상대방을 생각할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 가치관, 태도 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지인 한 분이 있다. 그 지인은 기업가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성과달성 등을 이유로 공격적인 언사를 쓰기도 하고 부하 직원들을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를 보면 온몸이 경직된 가운데 미소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성난 사자와 같았다. 오직 일에만 매달리는 분이다. 그 분에게 조언을 했다. 우선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먼저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하라’고. 침을 삼키는 그 짧은 순간 언어가 걸러지기 때문에 막말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옛말에도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고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하루에 10가지 이상 좋은 점만 기억하고 그것을 적으라고 했다. 말이 그렇지 10가지 장점을 적기란 생각보다는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그는 하루에 10가지 장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노트에 적고 또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는 활동을 꾸준히 했다. 그 결과 얼마 후 그 분의 표정이나 언어가 상당히 순화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누구든지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 좋다는 게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내가 늘 좋은 말을 하게 되면 내 마음이 가볍고 편한 하다. 그런 입에서는 향기가 솔솔 나오는 것이다. 막말은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 인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입 달렸다고 함부로 비하하는 막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게 바로 인격의 척도라 할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런 막말을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무슨 변명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막말은 막말을 낳지만, 좋은 말은 자신과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고 행복감을 느낀 사람은 또 누군가에게 그 행복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존재한다. 서로를 향한 긍정의 언어,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내며 이 사회를 밝은 세상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영혼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다니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승을 실컷 먹이고 마른 목은 포도주로 축여주었다. 음식은 곧 피로 변했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 보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육체라는 거대한 이름의 짐승을 실컷 먹여주고, 목을 축여주고, 그래서 대통령을 욕해도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정치인이 단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과연 그런 존경받을 수 있는 인격의 국회의원을 찾을 수 있을까?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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