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도 불안하고 세상인심도 흉흉하다. 거기에다 비까지 구성지게 내리니 마음마저 어수선하다.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문득 1년 전 고우 스님의 ‘백일법문’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고우 스님은 중도(中道)를 말하면서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한 개, 반 개’의 비유를 들었다. 사람은 흔히 손바닥만 보고 손등을 보지 못하는데 손등과 손바닥이 결국 하나의 손을 이룬다는 뜻이다.

여기서 손바닥은 듣고 보는 작용이 몸뚱이에 미치는 세계, 즉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色)의 세계다. 사람들은 이게 전부인 줄 알고 말하지만 손등에는 ‘공’(空)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을 모두 바라보아야 온전한 ‘한 개’가 보이는 거란다. 그렇지 못하면 반쪽 반개만 보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사람도 무수히 작은 원자의 집합체일 뿐이다. 그러니 실체가 없어 ‘공’ 하나라는 게다.

그런 관점에서 나를 지나치게 내 세우지 말고 남을 생각하는 중도에 눈을 떠야한다. 중도는 타인에 대한 배려, 혹은 존중이다. 그런 중도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마음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찾으려고 하는 것은 천리, 만리 밖에 있어 잡히지도 않는다. 무심히 앉아있으니 마음까지도 무심하게 앉아 있게 된다.

“돈이 의미 있는 곳에 쓰여 진다면 출세간법(불교의 행법)으로는 손해가 아닌 이익이다” 얼마 전 동국대에 6억 원을 무기명으로 기부한 부산 영일암 주지 현응(75) 스님의 말씀이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중생은 돈을 가져도 더 가지려고 한다. 가지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생의 업인가보다. 아무리 삭발염의(削髮染依)를 해서 출가를 하고 절에 머물지만 중생의 습기(習氣)에 벗어나지 못하면 중이 아니란다.

우리가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은 마음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처리 하는데 있어 공심(公心)으로 하지 않고 사심(私心)이 개입되어 있어서다. 공심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마음이다. 그게 지금 실종된 것이다. 새삼스러운 말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잃은 것만큼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잃은 것이 클수록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포기하고 놓아야 한다.

태어날 때는 욕심 때문에 손을 움켜쥐고 나오지만 죽을 때는 모든 게 허무하다는 뜻에서 손을 펴고 떠나간다. 전에도 그랬지만 국회의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무리 회기 중 면책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라지만 가릴 것은 가려야하지 않을까 금도를 넘어서고 상식에 벗어나는 막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에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당의 공식논평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귀태’(鬼胎.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라며 고인에 대해서 비하하는 막말을 했다. 홍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내고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관여 했던 인물로서 초선의원이기도 하다. 자기 스스로가 ‘귀태’ 인지를 한 번 쯤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싸잡아서 하는 말이다. 그런 무리들, 막말을 하고도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민주당 언제까지 이렇게 무식한 품행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실망시킬 것인가. 적어도 정치인이라면 국익과 사익(私益) 정도는 구분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야당의 일개 초선의원이 대통령을 '귀태'에 비유하며 "일본 아베 총리는 노골적으로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최근 형태를 보면 박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막말을 쏟아낸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었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새끼 감싸듯 옹호하고 있다. 당연히 의원직도 사퇴해야 한다. 대변인 사퇴로는 안 된다. 그리고 여, 야를 떠나 의원의 품격을 실추시킨 자들은 윤리위원회에 넘겨야 한다. 민주당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세종시 이전을 강행한 처사도 그렇고, NLL포기 논란도 그렇고, 국정원 댓글 문제도 그렇고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는 언제나 정당하고 남이 하는 건 불법이고 잘못이라는 건 중도의 길을 제대로 걷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노 전 대통령도 비록 고인이 됐지만 남아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준 분이 아니던가. 노태우 전두환 비자금 환수 문제도 그렇다. 이 세상은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깨끗한 사람도 없다. 제 아비를 존중한다면 남의 애비도 존중 할 줄 알아야 한다. 김, 노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듯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막말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막무가내인 민주당에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은 원죄의 존재다. 세상의 덫에서 벗어나려는 억센 몸짓도 원죄를 진 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죄의식은 인간다움이다. 죄의식이 없다면 양심이 없는 뻔뻔한 인간이거나 성화(聖化)한 바른 인간일 것이다. 죄의식 없는 사람이 사는 이 사회가 바로 카타콤(초기 기독교의 지하무덤)이 아니겠는가.

흔히 정치권을 '저능아 집단'으로 본다. 지금 국회의원이 이 세상의 신뢰를 잃은 것은 중도의 가르침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년부터 매년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하되 평점제를 도입, 미이수자에게는 일정기간 세비를 깎는 불이익을 주었으면 한다. 마음으로 사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머리로 삶을 살다보니 중도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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