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도 하고 이런저런 허물도 드러나게 된다. 때로는 용서를 빌만큼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용서받지 못할 존재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정계나 경제계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서 그런 것을 더욱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그들의 행위를 보면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을 정도다.흔히 사람들은 ‘용서’라는 말들을 곧잘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로서는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어떻게 상대방의 허물을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지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차면 찰수록 오히려 자신은 더 힘들고 그것에 얽매어져 고통을 느끼게 된다. 오래 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들을 죽인 사형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면회를 갔는데 생각외로 사형수가 하나님께 회계한 후 즐겁고 기쁜 모습을 보면서 갈등을 느낀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자신은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여자 주인공은 말한다.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용서하라구요? 이해해 주라구요?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가장 사치스런 충고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용서란 타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영화나 실화는 감정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내 아픔을 대신 짊어지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용서라는 행위는 생각보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용서에는 감정의 다스림 못지않게 배움의 자세도 필요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남을 받아들이고 남한테 진실해지고 남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먼저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드러난 내 허물부터 용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용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용서를 해서는 안된다. 다만 덜 괴롭고 덜 아플만큼만 용서를 하는 거다.

에이브럼 링컨 대통령에게 기자가 “재임 중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링컨 대통령은 “그것은 나를 핍박하는 정적들을 용서하는 일이고 또한 나의 잘못을 용서받는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다. 용서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내 자존심을 꺾고 저지른 잘못을 상대에게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며 용서를 받는 것 또한 대단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지속해 오면서 용서하고, 용서받기도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에게 “형제가 잘못을 빌면 몇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일곱 번까지 하면 되겠습니까?” 보통 일상적으로는 세 번까지는 말한다. 그래도 베드로는 큰 맘 먹고 해본 소리다. 그 정도라면 예수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용서를 빌면 횟수 상관없이 무조건, 무제한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잘못은 인지상사요, 용서는 신의 본성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정신적으로 고결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건강에도 이롭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샌디에이고 캠퍼스) 연구팀이 200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관찰한 결과다.

연구팀은 지원자들에게 친구가 자신을 비난했던 일을 떠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도록 했다. 즉 지원자 절반은 그 일이 얼마나 자신을 화나게 했는지를 생각하도록 한 반면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했다. 그런 다음 5분 동안 여기에 관심을 끊게 한 뒤 앞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도록 했다. 이번에는 마음가짐을 주문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이들의 혈압과 심장박동 수치를 측정했는데 화를 낸 그룹은 관대한 그룹에 비해 혈압이 훨씬 더 빨리 올라갔다. 화난 일을 처음 생각한 직후는 물론이고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가진 다음에도 그랬다. 얼마 전 내가 존경하는 목사 한 분이 악의적인 모함으로 곤경에 처한 때가 있었다. 오해와 억울함을 당한 그 분께 위로의 말을 했다.

“목사들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얼마나 괴롭고 분하셨겠습니까?”했더니 “억울할 것도 없어요. 예수님은 자신을 모함해 십자가에 못 박고 침 뱉고 욕하는 무리들까지 용서하셨는데 내가 당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용서하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어 마음은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용서를 하면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마음이 기뻐지는 것을 알았다. 또 몸과 마음이 건강하재고 장수하며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과 복을 받게 되고 행복해 질 수 있다. 용서란 상대방을 위한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거도 아니다.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결코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다. 세상 꼴이 말이 아니라도 모두 용서하자. 나 자신을 위해….

[시인.수필가.국민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