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노발대발’이란 말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크게 화를 낸다는 의미가 담긴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원래는 ‘노발충관(怒髮衝冠)’이라고 한다. 그 유래는 이렇다. 전국시대 때 조나라 혜문왕이 귀중한 옥구슬을 손에 넣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웃 강대국 진나라의 소양왕이 15개 성(城)과 옥구슬을 바꾸자고 했다.

귀가 솔깃해진 혜문왕이 신하를 통해 그 옥구슬을 소양왕에게 보냈다. 그런데도 소양왕은 성을 내줄 생각은 아예 없고 오히려 협박을 하며 옥구슬을 빼앗으려고 하자 혜문왕이 보낸 사신이 소양왕의 염치없는 행동을 준엄하게 꾸짖었는데 이때 사신이 매우 분노해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바람에 의관이 벗겨질 정도(怒髮衝冠)였다는 것이다.

의관을 찔러 들어올릴 만큼 머리카락이 곤두섰다니 그 분노의 깊이가 어떤 정도일까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 말이 세월이 흐르다보니 노발대발로 바뀐 것이다. 오래 전 의관을 쓰는 풍습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참지 못하는 현 세태의 반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화가 치밀면(怒發), 좀처럼 제어가 안되고 커지기만 하는(大發)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분노가 증오로 바뀌는 게 여반사다. 그런 세태이다 보니 주택이나 차량에 불을 지르고 묻지마 살인이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을 보아도 그렇고, 사회지도층 인사를 보아도 정말이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그런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 분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꾼이 있어 경우에 따라 사회전반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총선과 대선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다수의 후보들이 국민을 기만하며 분노를 자아내게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언제 분노(怒發)를 했던가 하는 식으로 또 감언이설에 솔깃한다.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그렇다. 국민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았던 사람이 자기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외국으로 떠난 사람이 또 새 정치 운운하며 순수한 젊은이들과 유권자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출마하는 지역을 제2고향이라 하면서 갈 때도 없다고 낯두꺼운 말을 한다. 듣기에도 민망하다. 언제까지 국민을 우롱할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기주의자인 그가 후보로 재등장 한다는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지난해 돌풍으로 몰아쳤던 ‘○○○ 현상’이 ‘○○○식 정치’로 인해 또다시 지역주민들이 상처받고 정치권이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때는 대선후보였던 그 분에게 충고하자면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울어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분노를 이해하며 함께 울분을 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정치리더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분명히 지적하자면 국민을 행복의 삶으로 이끌 대안과 이를 이뤄내려는 확고한 의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에게는 그게 없다. 그런 정치꾼들이 너무 많다.

내친 김에 허리춤에 ‘성성자(惺惺子)’라 불린 방울과 작은 칼을 차고 다닌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좌우명(左右銘)’이 생각난다. ‘언행을 신의있게 하고 삼가며, 사악함을 막고 정성을 보존하라.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움돋는 봄날처럼 빛나고 빛나리라’는 말뜻을 음미해 본다.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 인사와 정치꾼들이 마음속으로 깊게 새겨볼 말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자기를 일깨우기 위한 장치’였다는 남경 선생처럼 자신을 깨울 맑은 방울을 갖고 있는지? 또 안으로 마음을 밝히고 밖으론 흔들림없이 행동을 결행하게 하는 ‘경의검(敬義檢)’과 같은 마음의 칼날을 제대로 세우고 있는지? 아울러 세치 혀와 한뼘 손, 그리고 자신의 그것을 가볍게 놀리지 않겠다며 스스로를 잘 조여 맸는지? 끝으로 산(山)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지는 못할망정 이 삭막한 세태에 휩쓸려 살지 않도록 스스로 중심은 잡고 있는지?

누가 되었든 모름지기 세치 혀를 제대로 가눌 수 있어야 한다. 혀를 함부로 놀려 패가망신하는 정치꾼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니 가볍게 혀를 놀리며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된다. 제대로 묶어둘 것이 어디 세치 혀뿐이겠는가. 사회지도층 인사를 자처하는 사람들, 정말이지 매사 온전하게 처신(處身)해서 보신(保身)해 보시는 게 어떨까. 자신의 영달을 위해 국민들을 더 이상 선동하는 작태는 없어져야 한다.

시사주간 타임(TIME)은 지난 2011년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을 꼽았다. 시위의 출발점은 분노다. 개인적 분노가 소셜미디어의 날개를 달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져 나갔다. 일부 정치꾼들이 그런 심리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그러니 노발대발 할 수밖에. 노발대발의 원뜻이 노발충관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대발하기 전 의관을 생각하자. 생각하다 보면 절로 냉정의 시간을 갖게 되지는 않을지.

“분노와 어리석은 행동은 나란히 걸으며 회한이 양자의 뒤꿈치를 밟는다”는 경고가 가슴에 와 닿는다.

[시인.수필가.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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