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우리 민담에 있는 이야기를 말해볼까 한다. 어느 깊은 산골에 청상과부댁이 살고 있었다. 산 벼랑에 붙은 손바닥만한 천수답을 지키며 어렵게 사는 청상과부였지만 하루하루를 바르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 산골에 인상도 험상궂은 탁발승이 찾아와 하룻밤을 묵기를 간청했다. 단칸방에 식량이라고는 한끼 남짓한 쌀과 잡곡뿐이었는데 탁발승은 막무가내로 배가 고프니 우선 밥부터 먹게 해달라고 했다.청상과부는 그런 탁발승에게 화도 내지 않고 마지막 남은 곡식 한 톨까지 훌훌 털어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 식탁을 차려준 뒤 부엌바닥에서 가마니를 깔고 잠을 자려고 하자 탁발승은 “객이 주인을 몰아내고 자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화를 벌컥 내며 굳이 방에 들어가 자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청상과부는 탁발승을 아랫목에 정성스럽게 모시고 자신은 윗목에서 어렵사리 잠자리를 잡았다. 잠시 살풋 잠이 들었나보다.

코를 심하게 골던 탁발승이 느닷없이 그 우악스러운 손을 청상과부의 가슴에 올려 놓았다. 놀란 과부는 스님의 손을 살며시 밀어 놓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고, 평소 스님께서 얼마나 목탁을 열심히 두드리시며 염불을 외셨길래 주무시면서도 목탁을 잡는 시늉을 하실까’ 이렇게 좋게만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이번에는 그 스님의 무거운 다리가 과부의 다리 위로 덥석 올려지는 게 아닌가. 그때도 과부는 스님의 다리를 조심스레 제 자리에 갖다 놓으면서 이때도 역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스님께서는 탁발을 하러 낮에 얼마나 먼 길을 헤매셨으면 이런 깊은 밤에도 걷는 흉내를 내실까’.

다음날 아침 스님은 뒷산에 올라가 정갈하게 목욕을 한 후 짚을 한아름 안고 내려왔다. 그는 짚으로 가마니를 짜 청상과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깜깜한 밤중에 외간 남자의 못된 유혹까지도 그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그대야말로 살아있는 보살일세. 이제부터 쌀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이 가마니를 열어 보시게나” 결국 그 가마니 속에는 그 여인이 평생 먹을 수 있는 쌀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별의 별일이 많고 이 탁발승처럼 터무니없는 요구로 비춰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상대를 탓하면서 나쁜 쪽으로만 해석한다면 언제나 갈등과 고통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수 밖에 없다. 산 속의 청상과부가 낯선 탁발승을 끝없이 이해하며 매사를 좋은 뜻으로만 해석하듯 서로간에 오해가 생기고 의견충돌이 있을 때라도 될 수 있으면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화평해질 수 있다.

오래 전 천주교에서 주창했던 ‘내 탓이오’가 생각난다. 잘못된 것은 다 내 탓이려니 하는, 다시 말해 내가 먼저 밑지고 손해를 보겠다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 자신이 선의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해도 상대가 내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줄 때는 내 자신이 전생에 큰 죄를 지어 지금의 상대가 일단 그 업(業)을 갚는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요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공약했던 세비 30% 삭감과 의원연금 120만원 지급건과 관련 일부 의원들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고 개정안 상정에 반대를 하고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일전 한푼도 안내고 거액의 연금을 받아 먹겠다는 그야말로 날도둑 심보를 가진 의원들, 이것이야말로 특혜 중 특혜다. 얼마나 국민이 우습게 보였으면 이렇게까지 우롱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청상과부처럼 모두 내 탓으로 돌리자. 불살랐다고 한 강이 건재했나, 다시 강을 건너와 강북땅이 이제는 내 고향이라며 살림을 차린 안철수의 뻔뻔함도 이참에 화를 내지 말고 좀 더 숙연해지자. 그리고 그렇게 국민을 우롱하는 뻔뻔하고 낯두꺼운 그 부류에 대해 모두 내 부덕한 소치로 돌리자. 악처에 시달리다 위대한 철학가가 된 소크라테스, 아내의 잔소리 덕분에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러, 그런 부인들이야말로 자신의 업을 갚으라고 재촉하는 또 다른 부처임을 그 분들은 일찍이 깨달았나보다.

요즘 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저들도 어찌보면 전생의 업보(業報)를 갚으라고 재촉하는 또 다른 부처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편에서 밑지고 손해를 보며 나 자신을 탓하자.

[시인.수필가.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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