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라는 단어가 요즘 대유행입니다. 너도나도 입만 열면 목청을 돋워 소통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촛불 시국 미사로 국민과 정부와의 소통 문제가 또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치평론가들은 두달째를 넘어가는 촛불정국의 근본 문제가 소통 부재의 탓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합니다.

소통. 다양한 사람과 어울려사는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한데 소통하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낍니다. 가까운 가족은 물론 친구와 동료들끼리도 완전 소통하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개미처럼 페로몬으로 완전 소통하거나 아니면 외계인 ET처럼 손가락을 마주쳐 교류할 수 있다면 무척 좋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의사인 나는 환자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을까?' 가끔 내원한 환자와 상담할 때 그런 고민에 휩싸이곤 합니다. 진정 환자와 소통하기 보다는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할 이야기를 의무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입니다. 그들이 정확히 이해하기 보다는 말해 준 것으로 만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급자의 논리이지요.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가끔 이런 일도 발생합니다. 수술 후 더러 크고 작은 부작용이 생기면 의사에게 달려옵니다. "이미 상담시에 이야기 해주지 않았느냐"고 말하면 미심쩍은 눈치로 되레 반문합니다. 언제 그랬느냐고? 이럴 때면 비디오로 찍어놓을 수도 없고 정말 미칠 노릇이지요.

이것은 매우 독특한 사례도 아닙니다. 자주 생기는 일이지요. 그도 그럴만한 게 대다수의 환자들은 수술 전 상담시에 자신이 원하는 답만 골라 듣고 나머지는 흘려듣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을 주어 강조를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경험상 그것을 익히 아는 의사로선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가급적 피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된다" "멋지게 될 것이다"라는 의사의 확신에 찬 답변이니까요.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대하는 의사로선 나름의 꾀가 생겨 환자가 원하는 대답만 시원스레 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의사 친절하다", "자상하다"는 칭찬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일까요? 듣고 싶은 달콤한 말만 서로 주고 받는 것. 큰 일 날 소리입니다. 수술후 아무 문제가 없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엔 뒤끝이 안좋게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의 아픔을 건드려도 필요하다면 서슴지않고 해야겠지요.

진정으로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게 되면 다양한 시너지가 생길 겁니다. 상대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꿰뚫고 니드(need)를 정확히 파악하면 의료 효과는 갑절로 커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좋은 소통, 왜 못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바라는 것만 들으려고 하는 닫힌 자세탓은 아닐까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려는 열린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거기에다 의사는 환자의 입장, 환자는 의사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곁들여진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소통이 화두가 되는 세상, 의사와 환자의 소통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