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신의학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장 이승현 교수

▲국내 최초의 '한방음악치료사' 이승현 교수
"쿵~쿵~쿵~쿵쿵쿵쿵쿵~"

어디선가 북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싶더니, 점차 그 소리가 커지면서 몹시 빨라진다. 이내 소리가 멈추더니 누군가가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흑흑흑...10년 전에 우리 큰아들이 나한테....어쩜 그렇게 할 수가 있는거지?”

“그러셨어요? 할머니, 이것도 한번 해볼까요?”

할머니 손에는 차분한 음색의 차임벨이 들려진다. 그의 손짓을 따라하며 소리를 내는 할머니는 이내 안정을 되찾아간다.

반신마비의 중풍환자인 할머니에게 악기를 건네며 따라하게 하는 그는 보통의 음악강사는 아니다. 중풍의 원인일 수도 있는 할머니의 분노한 마음을 읽고 보다듬어줄 줄 아는 손을 가진 그는 심리치료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중풍을 하루 아침에 씻은듯 낳게 하는 신도 아니다.

그는 ’한방음악치료사‘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장 이승현 교수다.

한의학 이론서 '황제내경'에서 궁상각치우의 오음 발견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음대 석사를 밟던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갑니다. 평소 국악에 관심이 많던 터라, 우리나라 고유 음계인 오음(五音) ‘궁상각치우’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오음을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의학 책인 ‘황제내경’에서 발견했지 뭐에요."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바이블로 꼽히는 이론서로, “오행의 금토목수화가 오음의 상궁각우치, 오장의 폐비간신심(肺臂肝腎心)과 상응한다”는 음양오행설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런 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원리를 이용해 치료를 한다는 것이다."보통 생각하시는 서양음악치료법은 심리치료 위주잖아요. 자폐아라고 해도 원인과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지만, 치료법은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

그때 번뜩이던 것이 바로 황제내경에 담긴 오음이었어요.

오행과 오장에 연계된 오음을 이용해 병의 원인과 증상에 따라 다른 치료방법을 위해 한의학을 이용한 음악치료 공부에 몰두하게 된거지요.

예를 들면, 보통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보는 심화항염이나 간기울결 환자의 경우 화기나 목기의 리듬을 연주하게 하여 막혀있는 기운은 풀어주고, 부족한 기운은 보충하고 넘쳐나는 기운은 사해주는 치료를 하는 원리지요."

그는 실제로 암환자와 중풍환자를 대상으로 한방음악치료 임상시험을 시행해 어느 정도 치료효과가 있음을 입증했으며, 2003년에는 '한방음악치료' 주제로 경희대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또 임상결과를 토대로 장구, 북, 소고, 꽹과리 등의 국악기와 피아노, 차임벨, 마라카스, 우드블록 등 서양악기를 이용해 구음요법, 색건반요법, 칠정치료음악요법, 오행리듬요법, 오행음악감상요법 등 모두 10여가지의 음악치료법을 개발했다.

지난 6월 개원한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에 세계 최초로 '한방음악치료센터'의 문을 열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 '한방음악치료센터'

'한방음악치료센터'는 중풍 및 뇌혈관 질환, 관절염, 만성피로, 오장(간,심,비,폐,신)병, 근육마비, 암, 당뇨, 아토피, 심혈관 질환 등의 질병이 있는 환자에게 약물이나 침 치료와 더불어 시행할 수 있는 치료 수단이다.

동서신의학병원에 내원한 환자중 담당교수나 진료 코디네이터 등의 추천을 받아서 이용한다. 치료시간은 50분.

“비용면에서 약간 고가로 느껴질수 있어서 보호자도 추천을 받고 오시긴 하지만, '대체 저 악기를 가지고 무얼하는 걸까'하고 굉장히 미심쩍어 하시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치료받는 중에 환자 옆에서 꼭 지켜보고 계세요.

그렇지만 2~3회 치료를 거듭해 나갈수록 환자가 혼자서도 잘 따라하면서 너무 흥에 겨워하시니까 환자도, 보호자도 너무 만족해 하세요. 만족할만한 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가 더 이상 그 치료를 받지도 않고, 그 병원을 찾지도 않기 마련이잖아요.

암환자나 중풍환자같은 경우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고통이 매우 심하잖아요. 그분들이 제일 괴로워하시는 것이 바로 불면증이거든요. '치료를 받고 간 어제밤만큼은 정말 편히 잤다'는 말 한마디에 보람을 느낍니다."

한의학을 공부하거나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황제내경에서 오음을 발견하기는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발견만으로 하루 아침에 한방음악치료사가 된 것은 아니다.

"한의사와 함께 환자에 대한 실증적인 임상 연구결과를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교육대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있구요. 한방음악치료가 서양의 심리치료와는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한방음악치료실에는 환자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주는 악기소리와 환자의 마음이 되어주는 이승현 교수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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