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는 게편…“국가 권한 자율에 맡기자”

가재는 게편이라고 했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약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8일 오후 국회의원 본관에서 열린 대토론회는 그들이 국회의원의 자질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이날 토론회 의제는 ‘보건의료계 상생과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 부제는 ‘국민건강권 확립을 위한 보건의료인의 책임과 권리방안’이었다.

그러나 핵심은 하나. 현재 정부가 행사하고 있는 의·약사들의 징계권을 보건의료단체들이 직접 행사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토론회의 멍석은 의사출신의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깔았다.

이 자리에서 장동익 의사협회장은 “회원 가입을 하지 않은 의사들이 주로 불법의료 행위를 하고 있는데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자율징계권은 국민건강을 수호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라고 말했다.

국민건강을 위해서 필요하니 국가의 권한을 소속 단체에 맡겨달라는 것이다.

토론회의 총대를 맨 안 의원도 거들었다. 그는 “이날 토론회 내용을 참조해 이달 중 보건의료단체에 회원 자율징계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법률안’과 ‘약사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가재가 게편을 드는 꼴이다.

앞서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배포한 약사출신의 문희 의원(한나라당)은 한술 더떴다.

안 의원은 자료에서 “약사 징계권을 약사회에 위임해야한다”며 “약사회 자율징계권 보장을 위한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문 의원은 “의약품 조제와 같은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에 대한 정부의 감시와 규제는 한계가 있다”며 “감시권한을 전문성을 지닌 약사회에 위임하여 국민건강 증진을 도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의 발언은 국가의 보건행정을 전담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를 졸지에 비전문기관으로 만들어버렸다.

치과의사출신의 열린우리당 김춘진 의원도 의료계에 자율징계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 현재 서명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쯤되고 보면 국가 공권력이 얼마나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의사면허나 약사면허가 특정 이해집단이 수여하는 표창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연히 국가에서 인정하는 라이센스다. 만일 의·약사들의 요구처럼 소속 단체에 징계자율권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사인(私人)이 사인을 징계하는 꼴이다. 위헌의 소지도 높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리를 대리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특정 단체의 이익을 대놓고 대변하는 모습은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감시·규제권한을 민간에 위임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문희 의원)

말은 상황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다른 법이다. 갖다 붙인다고 다같은 말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런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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