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한의계 내분을 바라보며 과연 안 회장 탄핵 후 어부지리로 행운을 얻는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해 보았다. 1997년 대선 때 이 모 의원이 자민련, 민주당을 종횡무진하며 결과적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역사를 변화시켰는지를 생각하면 지금 대의원들이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알 것이다.

그에 앞서 한의협 안재규 회장이 사퇴서를 낸 것에 대해 감히 지적을 하고자 한다. 물론 ‘정승도 제 싫으면 그만’ 이라는데 일개 협회 회장 자리를 내놓는다고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회원들의 대표인 대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수장(首長)을 연임까지 한 사람이 일부 회원들의 원성과 불만을 기회로 알고 사퇴서를 제출하는 건 책임회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회원들이 어찌되든 나 하나만 벗어나면 된다는 이기주의자로 비춰질 수도 있다. 더구나 대의원 임시총회에서 탄핵이 부결된 사항임에도 불구 사퇴서를 낸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지도자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장수라면 적에게 포로로 잡힐지언정 항복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퇴에 앞서 회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때를 만난 것처럼 쉽게 포기를 하려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건 순전히 참모의 부재이며 정보의 부재이기도 하다. 대다수 회원들은 집행부의 실책을 나무라면서도 안 회장의 탄핵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회장의 눈과 귀를 막고 보필을 잘못한 일부 임원들이 물러나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회원들이 자유로운 투표로 회장을 뽑는 이 시대에 무작정 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야유로만 일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협회의 분열을 스스로 조장하며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내분으로 사분오열하는 한의계를 바라보는 많은 회원들과 국민들의 가슴은 실망감과 더불어 불신의 벽만 높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 고위인사 마저 한의계에서 일고 있는 현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고 단합이 되어도 현안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운 판인데 회장에게만 그 책임을 물어 탄핵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말할 정도다.

한의협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회원과 지도부가 함께 하며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함께 반성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또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찾아 답을 구하는, 그래서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허준의 후예들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한의계 집단이 지혜가 부족하고 회원간의 단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혜를 모으기 위한 토론의 문화가 사라지고 오직 투쟁만 있다면 살벌한 분열의 풍토만 남길 뿐이다.

과거 1993년 ‘한약분쟁’시 한의계가 내분을 보이지 않고 허창회 회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행동 통일을 하던 한의계에 대해 정부는 물론 의·약계단체와 기자들이 감탄을 하던 시절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문득 한의회원들과 함께 투쟁장소에서 밤을 지새며 보냈던 날들이 그리워지는 건 어쩐 까닭인지 모르겠다.

그런 한의협이 언제인가부터 사분오열되어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지혜를 짜기보다 서로를 헐뜯고 성토를 하게 되었는지 서글퍼진다. 바로 이런 이유들이 한의계를 모래알로 만들고 위기상황으로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적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작금의 상황에서는 대의원총회가 회장과 수석, 당연직부회장을 제외한 모든 임원들 특히 상근이사들의 사퇴서를 받은 후, 회장에게 재신임을 받도록 해 안 회장이 남은 임기동안 소신 있게 회무를 집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공연히 대다수의 회원과 국민들의 눈에 임원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한의계로는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안 회장의 사퇴서가 반려된다 해도, 새 집행부가 구성된다 해도 현 시점에서는 과도기로 반쪽 집행부가 될 것은 뻔하다. 한의협회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안 회장의 책임만은 아니다. 대의원총회의장을 비롯한 대의원, 그리고 지부장들과 원로 회원들에게도 그 책임이 크다 할 수 있다. 책임을 전가하기에 앞서 회장에게 일깨워 줄 의무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했다.

회장이 누가 되든 상관은 없다. 그러나 순간에 잘못된 판단이 어부지리 회장을 탄생시켜 남 좋은 일 만들며 희롱 당하는 대의원이 생겨서는 안 된다. 또한 일부 임원들이 부리는 농간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새와 쥐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득(得)을 취하기 위해 회원들을 좌불안석(坐不安席)으로 만들지는 말자.

18일이면 안 재규 회장의 사퇴건과 관련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린다. 최고의 엘리트를 자처하고 진정 지혜로운 대의원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슬기롭고 또 협회에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줄 알 것이다. 바라건대 회관 건축비도 부족한 판에 쓸데없는 임총으로 회비를 낭비하는 어리석은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