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일찍부터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국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한심하다 못해 기가 차고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17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이었고,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17대 의원들 역시 국민들을 또 한번 우롱하며 실망을 안겨준 것 같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파행을 거듭하며 개원 이후 지난9일까지 제출된 1143건의 안건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못 마쳤다. 입법을 다루는 국회의사당이 꼭 국회장이 아니라 격투장인 것 같다. 쌈질만하는 의원님들에게 때마다 세비를 주는 국민들의 후한 인심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더구나 탈북자 간첩이 검거되고 우리의 목사가 납북되는 등 국가안보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 여전히 열린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연내처리를 강행하려는 저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왜 국가 원로나 국민 대다수가 불안해하고 반대하는 '보안법 폐지안'을 법사위에 변칙 상정까지 하면서 야당과 이전 투구 식 몸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그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법사위가 이런 무법천지로 아수라장이 되었으니 다른 법안들이야말로 오죽 하겠는가?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았을 게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보안법 폐지안만 통과시킬 수 있다면 나머지 민생법안과 경제회생 법안은 처리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똥 배짱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야말로 대한민국의 체제 안전에 중차대 하고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많은 국민이 인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아무리 국회의원이고,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라 해도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마음대로 법안을 폐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런 사안일수록 집권당인 열린 당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홍보를 하는 가운데 야당과도 타협하는 자세를 보여야만 했다.

결국 집권당인 열린당의 홍보 부족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면서 본래 취지와는 달리 의심을 받게 되는 등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거듭 강조하는 것은 현 체제에서 북한과 사실상의 경제교류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상과 이념이 다른 현 상황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다.

어떻든 지난 50여년간 엄존해 온 국가보안법을 여당이 힘으로 하루아침에 폐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무리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공청회를 거친 후 여·야의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지금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열린당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열린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것은 그 당이 좋아서 국민들이 지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 개혁의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제16대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반사적 효과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업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며, 착각이다. 특히 입만 열면 민주의회를 자처하는 열린 당이 그래서는 안 된다.

굳이 말하자면 지난 3월 의석 수에 밀려 대통령 탄핵 안을 저지하지 못해 국회 장에서 눈물 콧물로 대성통곡을 하며 추태를 부린 의원들이 열린 우리당 의원들이 아니었던가?.

그런 열린 당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처럼 민감한 사안을 지난번 설움을 까맣게 잊고 다수의석을 빌미로 무조건 밀어 부치려 한다면 상당한 어패가 있다고 본다. 역사는 흐르기도 하지만 돌고 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 같은 무리수는 결국 역풍을 자초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그 어느 해 보다도 더 쌀쌀하고 춥고 배고픈 겨울이 될 것 같다. 모쪼록 그런 겨울, 우리들의 마음만이라도 따뜻한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

논설위원 안 호 원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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