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당 원내대표가 남대문 시장을 들렸을 때 상인들에게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 이라는 원성과 함께 호되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추석 연휴기간 중 지역구 출신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께서도 너나 없이 지역주민들에게 혼나고 욕먹느라 정신이 없

아무튼 이번 추석연휴가 정치인들에게는 특히 더 달갑지 않은 추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형식적인 지역 순방에서 생각과 달리 곤욕을 치루며 당혹해 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저절로 코웃음이 나온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민심이 싸늘해졌을까? 왜 자기들을 지지했던 지역주민들이 등을 돌리며 성난 표정이 되었을까?

불황의 장기화로 전문직이 하루 평균 100여명이 퇴출되고 계속된 경기침체로 인한 실직자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치 경제가 혼란스러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개원된 이래 의원들께서는 과연 어디에 마음을 두고 무엇을 했는지를 자기 반성차원에서 한번쯤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회사경영의 악화로 명퇴자가 늘고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니 하는 말들이 상징적이듯 직장인들의 고용불안이 점차 가중되고 종로거리와 지하도에 늘어져있는 수많은 노숙자들과 갈 곳 없어 방황하는 노인들이 이 땅에 계속 생존하고 양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이는 의원님은 없었다.

더구나 과거와는 달리 말레시아, 인도 등 동남아, 남미로 3~40대의 ‘무조건 나가고 보자’는 식의 ‘묻지 마’ 이민 열풍이 불어도 그 심각성을 지적하는 의원을 불행하게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이처럼 성난 민심은 민생의 시급한 생활 경제 문제는 뒷전에 두고 ‘친일 등 과거사 들춰내기’ ‘보안법 폐지’ 논쟁 등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이슈에만 열을 올리며 국민들이 힘들게 낸 세비만 축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지도자부터 다루는 핵심 쟁점이 민생과 경제 살리기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안들이고 짜증만 나게 만드는 사안이었다는 사실과 이 같은 잘못을 지적해주는 의원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특히 서슬이 퍼런 왕권시대에도 목숨을 내던지고 백성들을 위해서는 왕께 간언을 한 신하들이 많았건만 민주국가가 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몸 사리기에 바쁜 나머지 민생에 대한 문제는 감히 언

더구나 군주국가도 아니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여야가 한 치의 양보나 협상도 없이 당리당략에 따라 뒷골목에서나 있을 법한 싸움만 일삼는 등 종전의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울분이 치솟지 않을 수가 없다. 분노한 민심은 바로 이런 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성난 민심으로 망신을 당한 것은 정치인들 스스로가 만든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없다면 사회적 불만이 확대되는 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기반도 약해질 것”이라며, 현 정부의 정책을 꼬집고 있다. 특히 최 교수는 한국의 정치가 이데올로기적 쟁투의 장이 되는 동안 사회경제적 이슈들은 방치되고 탈정치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은 ‘과거사 청산’ 과 ‘보안법 폐지’ ‘행정 수도 이전’을 논할 때가 아니다. 어쨌든 정치권이 이번 추석에 확인한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면 여야가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는 정치적 현안들은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시급한 민생현안 문제부터 먼저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할 것만 같다.

마침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보수단체와 일부 종교단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보수성향이 있는 시민들이 애국충정에서 시국 집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건국이래 나라를 수호하겠다며 시민들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모인 적은 별로 없는 걸로 기억된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정치를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정기국정감사도 시작됐다. 정치인은 물론이지만 지난 달 26일 “추석대목이 없다, 추석 상차리기가 너무 빠듯하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제 마음도 한없이 무겁습니다.” 라고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 내용처럼 대통령도 국회의원들이 지역에서 겪은 추석 민심과 함께 지난 4일 대규모 시국 선언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이념 논쟁은 피해야 한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서로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이용하라” 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관점으로부터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호존중 속에서 물리적이 아닌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의견을 나누며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으로 거듭 나야한다. 아울러 국민들도 정치인들의 행동과 발언을 주시하되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것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정치인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는 정치인들의 관행화된 악습을 바꿀 수가 없다. 민심은 여야가 정쟁을 중단하고 오늘의 일용할 양식과 내일의 경제발전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려는지? 여의도가 난장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논설위원 안호원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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