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학교병원 정신과 김지웅 교수)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과 뇌물혐의로 수감 중이던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에 이어, 박태영 전 전남지사가 지난달 29일 한강다리에서 투신자살했다.

이러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잇따른 자살은 사회적인 충격은 물론 절망감까지 안겨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인터넷을 매개로 한 집단자살과 가족 동반자살 등 갖가지 유형의 자살이 꼬리를 물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은 모방 자살, 유행까지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부정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

자살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며 심각한 사회적 범죄이다.

우리 사회는 터키를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연평균 자살률 1위의 자살왕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으며, 이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예방상담센터 등 자살 예방 프로그램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갱생 프로그램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하며, 청소년의 자살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자살 예방 교육을 전면 실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드롬으로 불려질 만큼 우리사회 곳곳에서 자살이 시행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우리 국민 1만3000명이 자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해 본 사람까지 따지고 보면 자살 신드롬은 결코 나 또는 내 가족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죽음의 충동, 자살의 충동을 이겨내는 방법을 건양대학교병원 정신과 김지웅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자살이란?

자살은 고의적으로 자신에게 부과한 죽음이다.

자살은 함부로 저지르거나 의미가 없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에게 심한 고통을 주는 위기나 어려움을 탈출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자살자는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를 한번쯤은 시도하게 된다.

■자살의 원인

자살의 원인은 크게 사회학적 원인, 심리적 원인, 생리적 원인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사회학적 원인은 다시 세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개인이 한 사회에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해 일어나는 것으로 정신분열증, 우울증 등의 환자에서 발생하는 자살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개인이 사회에 너무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어서 일어나는 자살로 일본의 가미가제 자살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 번째 형태는 경제적 파탄이나 자신의 가치가 붕괴되었을 때 발생하게 되는 자살이다.

▶심리적 원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향한 분노가 갑자기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갈 때, 또는 복수, 징벌, 희생 등의 감정에서 발생한다.

▶생리적 원인은 유전적 원인으로 최근 뇌와 관련하여 연구되고 있으며 조울증, 우울증에서 자살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거의 모든 자살자가 갖는 공통된 감정은 절망감이다.

가족 등 주변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아 어떠한 희망도 없다고 느낄 때 헤어나기 힘든 절망감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모와 배우자, 자식 등에게서 비롯되는 실망감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자살의 요인가운데 60~80%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중요한 원인이 되고있다.

외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15~20% 정도가 자살을 시도하며, 2~3% 정도는 자살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밖에 알콜중독증, 정신분열증, 강박증, 불안장애 등의 정신과적인 문제도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사회분위기로 인해 치료 가능한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게 아니라 뇌신경전달물질의 조절이상 등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므로 반드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국내외 통계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보다 4배정도 더 많이 자살을 기도하지만 자살에 성공하는 경우는 오히려 남자가 여자보다 2~3배 많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수면제나 손목 동맥 절단 등 소극적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하지만, 남자는 투신, 독극물 등 보다 적극적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기혼자의 자살률이 낮고, 결혼 뒤 사별·이혼한 사람의 자살률이 높다.

특히 과부보다 홀아비의 자살률이 2~3배 높다.

연령은 남자는 30대와 60대, 여자는 50대와 60대가 많다. 중산층보단 사회적 지위가 아주 낮거나 아주 높은 사람의 자살률이 높다.

직업별로는 의사, 법관, 음악가 등 전문직 종사자와 무직·실직자의 자살이 많은 편이다.

■자살의 증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살자의 80% 정도는 주위 사람에게 자살의사를 넌지시 표현하거나 직접적으로 밝힘으로써 구조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도 자살이 자살요인의 최선의 해법이 아닌 최후의 탈출구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위의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자살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해서 지켜보아야 한다.

▶갑자기 식사량이 크게 줄었다. ▶말이 없어졌다. ▶잠을 자지 못한다. ▶멀리 떠날 사람처럼 아끼던 물건을 남들에게 나누어준다. ▶늘 불안해하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하고 침작해지는 등 마음의 평정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주위사람들에게 직접 또는 전화를 걸어 󰡒그동안 고마웠다“, ”잘 지내라"등의 말을 한다. ▶상투적으로 "못 살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단호하고 분명하게 죽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신체적 질환이나 질병을 지나치게 비관한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 신경안정제 등 약물을 지나치게 남용한다. ▶어떠한 일에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집착하고 분노한다. ▶이성문제, 가정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직장이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자살충동의 극복

주위에서 자살의 가능성을 보인다면 철저하게 관찰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명확한 자살의 증후들을 보이면 지체 없이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철저히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혼자 내버려두지 말고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자살을 못 하게 해야 한다.

자살의사를 넌지시 또는 직접적으로 내비칠 때에는 피하지 말고 자살의 동기와 방법 등을 꼬치꼬치 캐물어 자살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게 해야 한다.

되도록 장기간 대화를 유도해 문제점을 파악해야 하며, 얘기 중 이의를 제기할 때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자살 기도자 주위에서 위험물을 제거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점은 한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수개월 혹은 수년 내에 자살을 재시도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변에서 항상 잘 관찰해야 한다.

자신이 자살 충동이나 유혹에 빠져들 때는 자기조절을 통해 적개심과 공격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화가 나있거나 흥분해 있다는 점을 깨닫고, 더불어 자신이 왜 화를 내게 됐는지를 되짚어 자살 충동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도록 "나는 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좋아질거야” 등의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생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미래의 긍정적인 결과를 생각하고, 가족이나 친구, 상담원 등 자신을 이해해 줄만한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종교생활, 글쓰기, 음악감상 등으로 기분전환을 시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자살충동이 계속해서 생긴다면 주저없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평소 지나치게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적당하게 표현하면서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우울증이 요인인 경우에는 약물치료가 가능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자살의 위험에서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다. 약물치료의 경우 2~3주면 호전되고 빠르면 수개월 이내에 정상에 가깝게 회복될 수 있다.

자살은 일단 시행하면 돌이킬 수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예방이 중요하다. 자살은 대부분 정신질환의 결과며, 적절히 치료함으로써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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