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개발된 수십만가지의 약물 중 ‘탈리도마이드’ (thalidomide)만큼이나 숫한 화제를 뿌린 약물도 흔치 않다.

공포의 약물로 불리우는 이 약물이 최근들어 관심을 끌고 있다.

1950년대 말 독일에서 개발돼 임산부의 입덧 진정제(항구토제)로 널리 사용된 이 약물은 50∼60년대 세계 48개국에서 1만2000여명의 기형아를 출산시키면서 악명을 날리기 시작했다.

혈액순환 억제기능이 있는 이 약물을 복용한 임산부들이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를 출산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약물은 세계 각국이 사용을 금지할만큼 공포의 약물로 통했으며, 지금도 죽음을 눈앞에 둔 극소수의 환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다.

■새롭게 주목받는 탈리도마이드

그러나 이후 암, 에이즈, 루푸스 등 난치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실험결과가 잇따르면서 세계의학계는 공포스런 이 약물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지난 1998년 7월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나병)으로 인한 합병증 치료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승인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가 호주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탈리도마이드’를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승인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이 약물을 개발한 셀진(Celgene)사가 파미온과 라이센스 제휴를 맺고 ‘탈리도마이드 파미온’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물론 뉴질랜드 정부가 이 약물의 사용을 승인한 것은 재발하기 쉽고 치료하기 힘든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의 치료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신, 뉴질랜드 정부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이 약물의 사용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엄격한 파미온 위험평가프로그램(PRMP)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이 프로그램은 처방자와 조제약사, 환자 등에 대해 세밀히 기록하고 모든 환자들은 전반적인 치료 정보에 대한 승인과정과 비밀기록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이에앞서 지난 1998년 11월 미국 아칸소대학 암연구센터의 바트 발로기 박사도 의학전문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탈리도마이드가 표준치료법이 듣지 않는 말기의 다발성골수종 환자들의 치료에 특효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다발성골수종 치료에 효과를 나타낸 약이 나오기는 지난 30년만에 처음이다”고 말했다.

다발성 골수종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돼있는 20만 건의 암질환 사례 중에서 약 1%, 암으로 인한 사망사례 중 약 2%를 차지하고 있으며 혈액암 중에서 두번째로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폐암·백혈병에도 효과적

최근에는 이 약물이 폐암과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치료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물론 이 약물의 사용 대상은 암환자가 주류를 이룬다.

영국에서는 2003년 2월부터 폐암 중에서도 치료가 가장 어려운 소세포(小細胞) 폐암 환자 400명을 대상으로 탈리도마이드를 투여하는 대규모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 임상은 마지막 3단계 실험으로 앞서 진행했던 소규모 임상실험에서 소세포 폐암 환자의 40%가 1년이상 생존하는 등 상당한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 임상에 성공적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탈리도마이드가 혈액의 흐름을 억제함으로써 종양을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최종 임상 실험이 성공을 거둘 경우 다른 암 치료에도 탈리도마이드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탈리도마이드가 백혈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독일 뮌헨대학 롤프 메스터스 박사는 2002년 2월 의학전문지 ‘혈액’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강력한 화학요법이 듣지 않거나 골수이식이 적합치 않은 AML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실험에서 탈리도마이드가 일부 환자들에게 어느정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메스터스 박사는 이중 7명은 신경손상, 발진, 피로, 변비 등 부작용이 심해 한달도 되기전에 임상실험에서 탈락했으나 나머지 13명 중 5명은 AML때문에 감소하던 혈소판이 현저히 증가하는 등 부분적인 치료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메스터스 박사는 “종양은 혈액이 공급되어야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종양에 혈액을 공급하는 새로운 혈관의 형성을 차단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며 “탈리도마이드는 이러한 혈관형성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탈리도마이드는 항암제(?)

지난 2002년 10월 영국 세인트 조지스 병원의 키스 드레지 박사의 연구결과는 탈리도마이드에 강력한 항암성분이 들어있음을 보여준다.

드레지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탈리도마이드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또 암종양에 대한 혈액공급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 화학요법과 병행했을 때에는 일부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드레지 박사는 당시 의학전문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서 “탈리도마이드와 유사한 물질인 IMiD와 SelCID는 탈리도마이드보다 훨씬 강력한 항암효능이 있으며 특히 암종양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형성 억제력이 탈리도마이드에 비해 10배나 강한 것으로 임상실험에서 밝혀졌다”고 밝힌 바 있다.

드레지 박사는 또 “탈리도마이드 유사 물질이 폐암, 피부암, 신장암, 유방암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연구도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기

하지만 탈리도마이드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을 떨쳤던 이 약물을 누가 복용하려고 하겠는가.

때문에 의사들은 항암제가 듣지 않았을 경우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탈리도마이드를 처방하고 있다.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됐을 때 극약처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저명한 의학자들 역시 탈리도마이드가 예외없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며 아직은 더 많은 연구와 임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약물을 개발한 셀진사도 탈리도마이드 판매에 법적인 위험이 따르는 만큼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특히 임신여성은 절대로 복용해서는 안된다.

이를 복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여성이 반복적으로 임신테스트를 받아야 하며 또 효과적인 피임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분명히 받았음을 인정하는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

탈리도마이드는 여전히 ‘공포스런 약물’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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