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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의 육아일기 - 일하는 것이 태교다
2020년 06월 12일 (금) 06:16:24 문윤희 기자 news@pharmstoday.com
30대 후반에 결혼, 40대 중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험난한 육아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직장 맘이자 고령엄마의 눈물겨운 분투기. 매주 금요일 문윤희 기자의 생생한 체험담으로 찾아옵니다.<편집자 주>

임신을 하게 되면 또 하나의 숙제가 찾아온다. 아기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하는 고민인데, 우리는 이를 '태교'라고 부른다.

일하는 임신부에게 시간을 따로 내어 클래식을 듣는 다던가 심신의 안정을 위해 요가나 수영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다. 일단 시간이 없다. 주말엔 누워 자기 바쁘고 일어나면 밥을 차리거나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임신을 하게 되면 누구나 한다는 태교였기에 대충 넘길 수는 없었다.

나는 임신 초기, 출근길에 태교음악을 들으며 다녔는데 정말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태교 음악은 대부분은 느릿한 속도의 클래식이었는데 아침 출근길에 이 여유로운 음악을 들으며 이동하는 것은 안 그래도 임신 때문에 졸린 나의 육신에 잠을 쏟아 부었다. 음악을 켜면 눈이 감기는 통에 나는 여러 번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치곤 했다.

맨 정신이었을 때 들어보자 다짐해도 느릿하고 따분한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곤혹이었다. 엄마가 유쾌하지 않아 하는 음악을 아이라고 좋아할 수 있을까. 태교음악은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았기에 나는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보기 했다.

태교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

먼저 음악을 내가 좋아하는 퀸, 아바, 카펜터즈 등의 팝송으로 바꿨다. 내 귀에 익숙한 음악은 듣기도 편해서 마음이 즐거웠다. 졸리지도 않아서 정류장을 지나치는 일도 없었다.   

요가나 필라테스, 수영 등 임신부에게 좋다는 운동은 더더군다나 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많이 걷기 위해 노력했다. 날이 선선하고 걷기 좋은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일부러 취재처에 가는 길 두어 정거장 전에 내려 설렁설렁 걷기도 했다.

집에 와서도 저녁을 먹고 오후 9~10시쯤 남편과 함께 동내 산책을 하려고 노력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을 겨우 걸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걷는 내내 기분은 좋았다. 또 남편과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부부사이도 더 좋아졌다.

우리는 산책을 하며 밀린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주제는 다양했다. 아기를 낳으면 어떻게 키울까하는 주제부터 노후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과 나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를 보였는데 각자의 입장에서 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나를 이야기하다보니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이렇게 운동 삼아 하는 산책은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줬다. 아마 이 시간 동안 누워 TV를 보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으로 흘려보냈다면 남편과의 관계도, 내 육체의 피로감도 지금보다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하는 게 태교라는 건 슬프잖아요"

신기하게도 내가 임신했을 무렵 다른 매체 여기자들과 홍보업계 관계자들도 임신을 했다. 출산 시기도 대동소이해 임신부의 고초를 나누기에 좋았다. 이들은 모두 일하는 엄마였기에 태교에 신경 쓰고 싶었지만 따로 시간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했는데 "일을 하면 아기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그것이었다. 서로에게는 "태교는 무슨, 일이나 하자"며 격려 아닌 격려를 했다.

그럼에도 엄마간 격차는 분명히 있었다. 좀 더 여유로운 엄마와 그렇지 못한 엄마. 나는 일에 있어서 어쩐지 시간에 계속 쫓기게 됐는데, 그 반대쪽에서 선 엄마들은 좀 더 여유로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한 예비 엄마는 시간 단위로 끊어 일하는 나를 보며 "너무 여유가 없다"고 한소리 했다. 그는 "일하는 게 태교라는 건 너무 슬프지 않냐"며 "일을 좀 줄이라"고 충고했다.

임신부의 경우 업무에서 주변의 배려로 일을 줄이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건 정말이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받아 들이냐의 문제인데, 나의 경우에는 이런 상황이 익숙치 않아서 나는 내 몫의 일을 해내려 했다. 그것이 가끔은 다른 이에게 무리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한 지인은 "그냥 대충해. 다 이해해"라며 임신부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미덕을 수용하라고 권했다. 직장 동료도 내가 할 일을 자신이 하겠다며 나서기도 했다. 이 고마운 배려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일로 태교를 한다며 스스로 위로를 했던 내게 '아기에 대한 미안함'을 얹어줬다.

이런 내 고민을 들은 선배는 "엄마가 일을 즐기면서 하는데 아기도 즐겁지 않겠어? 남들의 시선 신경쓰지 말고 너는 너하고 싶은 일을 해"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는 "엄마 정신건강에 일이 좋으면 아기에게도 좋은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를 응원했다. 그의 희망적인 응원에 나는 좀 더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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