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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의 육아일기 - 오랜 기다림의 결실, 임신
2020년 06월 05일 (금) 06:37:32 문윤희 기자 news@pharmstoday.com

30대 후반에 결혼, 40대 중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험난한 육아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직장 맘이자 고령엄마의 눈물겨운 분투기. 매주 금요일 문윤희 기자의 생생한 체험담으로 찾아옵니다.<편집자 주>

1년의 휴직. 그리고 직장 복귀. 아이러니 하게도 시험관 아기에 도전하는 것은 경제적인 능력이 한참이나 보장되어야 하는, 그래서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내게 경제적 능력이 있고 냉동 할 수 있는 난자의 생산이 가능했다면 아기를 갖는 시간은 더 단축됐을까?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아기는 4번의 시험관 끝에서야 찾아왔다.

3번의 시험관 실패는 두근거렸던 임신 결과 전화에도 별다르게 놀라지 않는 무딘 감정을 안겨줬다. 4번째 시험관 결과를 위해 오전에 혈액을 체취한 나는 취재 현장을 찾았다. 취재가 끝난 후 바로 다음  약속을 위해 서둘러 이동해야 했는데 그 사이 전화가 울렸다. 5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한낮의 명동 거리를 가로지며 나는 낯익은 번호가 뜨는 전화기를 들었다.

"축하드립니다. 수치가 375 나왔어요"

이미 한 병원에서 네 번의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사이 나를 너무 자주 마주쳐야 했던 경험 많은 간호사는 진심어린 축하의 뜻을 담아 내게 말했다. "임신입니다"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감정은 그 순간 용암이 솟구치는 화산처럼 폭발했다. 나는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울음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정말이에요?" 나는 몇 번이고 확인했다. 간호사는 "이제 아기에게 신경 쓰셔야 해요"라며 나의 임신 사실을 재차 확인해 줬다.

375라는 혈액 수치는 아기가 한명이 아닌 둘임을 암시했다. 예약을 한 뒤 찾은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는 선생님은" 쌍둥이네요"라며 나의 예상을 확인시켜줬다. 그 말을 들은 다음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애 둘을 동시에 키워야 하는 험난한 현실이 그려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기에 마음가짐도 다시 해야 했다. 남편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쌍둥이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혀 기뻐하는 기색 없이 남편은 "쌍둥이구나"라며 담담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내가 서운해 하자 남편은 "아니야 정말 기뻐"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이때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고 훗날 이야기 했다. 

처음엔 둘이었지만 결국엔 하나가 된

난임 시술을 했건 자연 임신이 됐건 많은 엄마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임신이 됐음에도 하혈을 하게 되는 경험을. 나 역시 이 때는 너무 많은 하혈을 경험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일을 줄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유독 하혈을 심하게 하던 날 걱정이 되서 예약도 하지 않고 바로 병원을 찾았다. 아기집에 하나의 생명이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를 위로했다. "아기들도 경쟁을 하나봐요. 둘 중 강한 하나가 살아남는 것 같아요." 남은 아이에게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현장에 나가는 일을 줄였다. 그럼에도 하혈은 계속됐다. 급기야 일주일째 하혈이 지속되자 선생님은 "일을 그만둘 수 있으면 그만 두라"고 권고했다. 그녀의 강력한 권고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꿈이 달아나려고 하는데 나는 일을 놓지 못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편 역시 내게 일을 잠깐 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응급실과 회사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바보 같았다. 남은 아이 하나마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나는 조심스럽게 회사에 재택 여부를 물었다. 회사의 배려로 재택을 한 달 정도 하고 난 뒤에야 하혈은 완전히 멈췄다. 나는 다시 현지로 출근을 시작했다. 

현장에 다시 나가자 임신 사실을 알 리 없는 취재원들과 동료 기자들은 나를 보면 반갑다는 표현으로 "술 한 잔 해야지"라며 권주가를 불렀다. 응하고 싶었지만 이제 난 임신부가 됐다. 게다가 아기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막 경험한 터라 술을 권하는 이들의 말에 웃음으로 답할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던 취재원들과 동료들은 의아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의 침묵은 안정기라 확신이 든 임신 5개월에 들어서야 깨졌다. 

지인들은 자기 일 마냥 기뻐하며 임신을 축하했다. 일부는 늙은 육체에 찾아올 고단함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일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아기는 일하는 엄마를 배려하고 싶었던지 잘 버텨 주었다. 

임신 6개월에 들어서며 아기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저녁에 한 시간씩 걸으며 체력을 비축했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갖은 약물에 노출됐을 아이에게 출산까지 그런 경험을 하게 할 순 없었다. 자연출산을 결심한 나는 걸을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이 걸으며 체력을 비축했다. 

일하는 임산부 체력 비축의 키, 걷기

몸이 무거워질수록 걷는 것은 더 힘들어졌지만 일을 할 때 지치지는 않았다. 또 임신을 했다고 일을 빼며 고단한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걷기는 거의 오기 수준이었다. 때로는 취재로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할 경우도 있었는데 걷기는 이럴 때 빛을 발했다. 

몸이 걷기로 체력을 비축한 상태라 임신 전보다 오히려 무리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나의 걷기는 찬사 수준인데, 임신부에게는 특히 자주 걷기를 지면을 통해 권하고 싶다. 출산에서도 걷기의 능력은 힘을 발휘한다. 고역에 가까운 육아시기에 이 걷기를 통한 체력 비축은 꽤나 오래 나를 지탱해주는 지지대 역할을 했다. 육아를 시작한 지 15개월에 접어든 나는 지금 다시 걷기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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