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에 결혼, 40대 중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험난한 육아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직장 맘이자 고령엄마의 눈물겨운 분투기. 매주 금요일 문윤희 기자의 생생한 체험담으로 찾아옵니다.<편집자 주> 

결혼 후 1년간 자연 임신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우리는 자연스레 배란일에 집중하게 됐다. 약속이나 일로 인해 외부 일정이 생겨도 과감하게 불참했다. 남편은 허리디스크가 있었는데,  이 고된 1년을 용케도 참아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자연스런 임신의 결과물은 찾아오지 않았다. 남편과 상의 끝에 집에서 가까운 강남차병원 난임센터를 찾게 됐다.

일을 하면서 한 시간씩 짬을 내 가면 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일을 하면서 시험관 아기를 진행한다는 것은 바쁜 일정을 쪼개고 또 쪼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초음파를 먼저 받는 사람이 진료도 먼저 보게 되는 시스템은 대기실에 앉아서 진료를 기다리는 모든 여성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초음파야 순서대로 들어가서 받는다 해도 진료실에서 선생님과의 상담은 시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나의 자궁’ 혹은 ‘나의 임신 진행 여부’가 궁금한 예비엄마들이었기에 진료실에 들어가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 역시 수술과 진료를 오가며 봐야 했기에 ‘타이밍’이 관건이었다. 진료를 제대로 보려면 가장 먼저 가서 가장 먼저 진료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아침 7시 30분 초음파실 접수대는 항상 줄이 서 있었다. 이렇게 시험관 아기에 도전한다는 것은 시간과 돈, 엄마의 체력과 의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깨닫게 됐다.

아기를 갖기 위한 여정, 시험관

처음 소개를 통해 찾아간 선생님은 이미 내 나이가 서른아홉(그것도 만 나이로)이나 됐음을 상기시키며 바로 시험관을 추천했다. 병원에 간 날 선생님이 설명해 준 스케줄대로 차례차례 검사를 진행했다. 가볍게 생각한 혈액검사는 엄청나게 많은 피를 뽑아냈고, 피는 내 몸에서 임신을 어렵게 하는 요소를 낱낱이 수치로 드러냈다. 자궁이 건강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자궁난관조영술은 하복부에 심한 압박감과 불쾌감을 선사했다. 뒤이어 진행된 초음파 검사에서는 내 자궁과 자궁입구에 혹들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검사만으로 몸이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검사도 검사지만 당시에는 난임과 관련한 보험 지원 문턱이 높아 검사비용으로만 50여만원을 소요했다. 나중에 합산을 해보니 검사 비용을 포함해 시술 전체 비용으로 500만원 가까이 사용했다.

검사 비용이 50여만원이 되니 시술 비용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왔다. 내 걱정을 모르시는 선생님은 검사 결과지를 살펴보시더니 바로 다음 달에 시술을 하자고 했다. 선생님 방을 나오니 간호사가 배란주사를 놓는 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오전 오후로 시간을 맞춰 배란 주사를 놓아야 하니 시간을 엄수하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외부 일정이 많은 나는 주사기를 들고 다녀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행사가 있는 날은 행사장 화장실에서, 출근해야 하는 날은 회사 화장실에서, 가끔은 취재처 화장실에서 나는 주사기를 배에 꽂으며 주문을 외듯 주절 거렸다. "한 번에 와라. 아가야. 제발 한 번에 와라.“

배란 주사를 맞으며 4일이 지난 후 초음파로 난자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선생님은 난자채취 일정을 잡고 다시 배란 주사와 배란을 억제하는 주사(난자의 이탈 방지를 위해서 놓는 주사)를 처방해 줬다.

난자 채취 전날은 떨려서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난자 채취도 일종의 수술이라 금식을 했던 터라 목이 마른 상태에서 병원을 찾았다. 목이 마르니 말이 제대로 안 나왔고 마음을 졸이니 살짝 손이 떨렸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잘 될 거니 마음 놓으라"며 위로를 전했다. 수술대 위에서 나는 조금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건강한 난자 3개가 주는 의미

깨어보니 간호사는 밝은 얼굴로 난자 채취는 잘 됐다고 했다. 진료실에서 마주한 선생님은 "건강한 난자 3개를 채취했다"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 건강한 여성에게 과배란 주사를 투여하면 평균적으로 10~20여개 난자가 나오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난자수가 상당히 적은 소수에 속했다. 나보다 앞서 난자 채취를 한 여자는 난자가 15개나 나왔다는 결과에 미소를 지었다. 난자 3개와 15개. 나는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 귀한 난자 3개는 다행히도 상태가 좋은 등급이라고 했다. 이 난자들이 남편에게서 얻은 정자와 만나 수정한 배아를 다시 이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난자 3개가 정자와 만나 세포분열을 하면서 퇴화될 수도 있다고 하니 내겐 이 3개의 난자 모두가 소중했다.

선생님은 내게 부족한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늙은 내 몸은 임신에 필요한 호르몬조차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 와중에도 다행히 난자 3개는 남편의 정자와 만나 잘 성장해 배아가 됐다. 배아의 등급도 좋다고 했다. 3개의 배아가 내 몸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 임신이 된 것도, 안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무사하길, 평안하길" 맘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 모든 과정은 혈액체취로 결론이 났다. 오전에 병원에 들러 채혈을 하니 간호사가 오후 2시쯤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병원을 나서며 일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드디어 오후 2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심란해 하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취재원에게 일이 있다며 양해를 구한 뒤 조용한 카페로 들어갔다. 때마침 전화가 울렸고 수화기 너머 간호사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혈액 수치를 보니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는데 너무 긴장한 탓인지 그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임신이 아닌 건가요?"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네, 임신이 아니세요"라고 확인해줬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지만 "임신이 아니다"라는 말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순간에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런 과정을 대체 몇 번을 거쳐야 할까하는 두려움도 몰려왔다. 동시에 이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귀했던 난자 3개는 돌연 원망의 대상이 됐다. “왜 내게는 10개나 20개 정도의 난자가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스스로를 원망하는 기간은 예상외로 오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마 이때가 내게 찾아온 첫 우울의 시기였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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