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다.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엊그제 저녁 MBC가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한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는 그야말로 2시간 내내 답답함과 아쉬움만 남긴 ‘국민과의 대화’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로 전락해버린 행사가 되고 말았다.110분간 300명의 국민 패널 로부터 23개의 질문과 의견이 나왔다.

국민 패널이 질문을 던지고 대통령이 답하는, 그럴듯하게 말하면 '타운 홀 미팅' 형식, 솔직히 말하면 김어준의 말처럼 "도떼기시장"이었다. 질문은 겉돌았으며, 답변 역시 원론적 수준에 그쳤고, 정작 한번쯤 언급 할 법한 인사. 경제, 안보 등 현안과 관련된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보고 듣는 것조차 안타깝고 답답했다.

MBC는 총 1만6000여 명의 지원자 가운데 성별과 나이. 지역 등을 고려해 300명의 방청객을 심도 있게 선별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생방송에서는 자유당 황교안 대표 때와는 달리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문제, 탈 원전 정책, 입시 문제, 방위비 분담금 등 경제와 외교와 관련, 문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질문들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대신 사적(私的)인 민원이 많아 ‘국민이 묻고, 국민과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심중에 갖고 있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훈련되지 않은 '국민 패널'의 대부분이 민원 또는 하소연에 가까운 발언을 이어갔던 것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각본 없는 질문 앞에서 대통령의 답은 원론적이거나, 또는 동문서답으로 이어졌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이 빌어먹을 쇼의 문제는 대통령의 목소리도, 시민의 목소리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는 것"이라고 혹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죽했으면 탁현민 조차 "내가 청와대 안에 있었다면 안 했을 것 같다."고 했을까? 이와 관련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일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통령께 가장 죄송한 형식의 방식이었다. 죄송했다. 대통령의 강점은 진심과 진정성인데, 그걸 제대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한 뒤 "언론에서 짜고 친다는 의혹을 제기하니, 그럴 바에야 아무것도 없이 해보자고 했던 것"이라고 말해 이번 국민과의 대화가 본 취지와는 다르게 진행된 것을 시인했다.

앞서 KBS는 지난 5월9일 정부 취임 2년을 맞아 이뤄진 '대통령에게 묻는다.' 방송에서 대담자의 질문과 태도가 논란에 휩싸이며 후폭풍을 겪기도 했었다. 대담 자였던 KBS기자는 위트도, 여유도 없었고, 정색하고 던진 질문은 80분이란 시간에 걸맞지 않게 평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몇몇 질문에선 질문과 '거리 두기'에도 실패했다.

MBC는 KBS와 전혀 다른 방식의 미디어 이벤트를 기획했다. 대담 자를 1명에서 300명으로, ‘기자’에서 ‘국민’으로 바꾸고, 음악인 배철수씨를 옆자리에 앉혔다. KBS보다 부드럽게, 기자 대신 국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듣는다는 취지였지만,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방치한 꼴이 되어버렸다.

경제와 관련해선 주 52시간과 부동산 문제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지만 국회 입법 미비나 전 정권 탓으로 일관해 정책 기조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국민적 바람과는 동떨어진 말을 했다. 또 서울의 치솟는 집값에 대한 질문에는 집값이 많이 하락해 안정세로 들어갔다고, 동문서답으로 답해 많은 국민들을 어처구니없게 했다.

검찰개혁 문제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나마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와 관련, 처음으로 ‘사과’란 표현을 했지만 진정성이 없어보였다. 그 이유는 문 대통령이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여전히 ‘검찰 개혁의 중요성과 절실함이 다시 한 번 부각된 것이 한 편으로는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국민들의 인식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음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존의 원론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적 통제라는 방향만 제시했을 뿐, 최근 논란이 된 ‘법무부장관에 수사 사전보고’ ‘오보기자 검찰청 출입 금지’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통령의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관련해서는 ‘정쟁화 돼있다’ 며 또 그 특유의 논법으로 야당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여전히 검찰에 압력을 넣는 모습이다. 한. 미동맹에 있어서도 문 대통령은 이렇다 할 해법도 내놓지 못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종료가 하루(22일 자정)밖에 남지 않았고, 방위비 협상마저 결렬되었는데 지소미아와 관련해 기존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지소미아와 관련 해 일본과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일본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국이 일본 안보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데 일본이 안보적으로 한국을 믿지 않고 수출 통제를 했기에 군사정보 교류를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원인 제공자는 아베가 아니라 문 대통령이다. 아무리 우리가 억울하고 분한 건 사실이지만 먼저 국제 법을 어긴 건 문 대통령이다. 60년 전 양국이 협약을 한 것을 이제 와서 인정 할 수 없다며 보상을 청구하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 문제(강제징용)는 “국내 대법원의 결정이지 정부가 개입 할 사항이 아니다”며 일본기업에 대한 보상 권을 취소하고 징용피해자에게는 전 정부에서 개성공단 기업주들에게 정부 돈으로 보상해주듯 정부에서 보상하면 된다. 지금은 일본에 억지떼를 쓰는 격이다.

23일 종료될 한. 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파기결정은 역사에 길이 남을 외교 참사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 대통령이 정부 내 전문가 그룹인 해당부처의 의견을 무시 한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애초에 지소미아 파기 주장이 머리를 들자 국방부와 외교부, 국정원 모두 반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거세게 반대한 건 서훈 국정원장 이었다는 게 의원들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국가 안전 보장회의(NSC)를 주재한 뒤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했다. 본인의 결단이든, 진의 탓이든, 부처 간의 의견들이 묵살 된 건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하나 특이점은 국내 정치를 위해 한. 일 관계가 이용됐다는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조국 사태가 본격화됐던 지난 8월말 무렵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평가(49.2%)가 긍정 평가(46.7%)를 앞서는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나타난 때와 일치한다. 조국 사태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뤄진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반일 감정을 자극해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전략으로 비출 수밖에 없다. 공약도 하나도 안 지킨 문 대통령으로서 이미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은 지는 오래 됐다.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판결에 일본 보복 조치가 내려지자 “절대지지 않는다.”고 응수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극적인 발언을 해 역사에 남을 해악만 남긴 꼴이 되어버렸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조국 사태 때 일찍 낙마를 시켰더라면 최악은 피할 수 있었다. 지소미아 폐기를 밀고나가다간 어떤 대가를 치를지 모른다. 오판을 깨끗이 인정하는 것도 지도자로서 용기이자 지혜다. 대북 포용정책 신봉자였던 노무현 대통령도 2006년 10월 첫 북핵 실험이 감행되자 정책 실패를 화끈하게 인정하고 대북 제재로 돌아왔다. 현 정부도 경우에 따라서는 대북 포용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 많은 국민들이 문 대통령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실망했다.” 며 “(지소미아를 종료하면)주한미군과 한국군도 더 큰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히 아시다시피 지소미아는 한반도 유사 시 북한의잠수함과 미사일을 신속하게 차단하고 주일 미군 기지를 통해 증원 병력과 물자를 한국에 공급하는 정보통로다. 한. 미. 일 안보협력의 기반이기도 하다.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더 이상 억지논리를 펴며 반일, 반미 감정을 부추기지는 말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대화를 마치며 “우리는 임기절반을 바른 방향을 설정했다” 며 “같은 방향으로 계속 노력해 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것 같고, 쇄신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허탈감을 안겨 준 국민과의 대화였다.‘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는 본훼퍼의 말이 왜 이 순간 떠오른 것일까? 앞으로 청와대가 정부 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심각한 헛발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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