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없어지면 나라가 발전하고, 박지원이 없으면 빨갱이가 사라지고, 추미애가 없으면 헛소문이 사라지고, 전교조가 없으면 교육이 바로 서고, 민노총이 없으면 경제가 바로 살아남고, 국회의원이 없어지면 국민이 행복해진다.' 나라가 뒤숭숭하고 어지럽다 보니 별의별 말들이 다 떠돌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말이란 입 밖에 나오면 주워담을 수 없다. 말이 직업인 특정인들이 걸핏하면 설화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말을 하기 전 두 번 생각하고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

옛말에도 ‘말이 많으면 쓸 말은 적다’고 했다. 꼭 해야 할 말을 잘 가려 최소한의 말만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늘 말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도 또 사고를 쳤다. 지난 1일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빨갱이’란 표현은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잔재’라고 한 것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빨갱이와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말했다. 이어 “‘빨갱이’는 일제가 모든 독립 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빨갱이란 용어 자체가 설사 일제의 독립운동가 탄압 과정에서 생겨났다 해도 굳이 기념사에서, 그것도 100주년까지 겹쳐 의미가 더욱 각별한 3.1절 행사장에서 대통령이 힘주어 강조할 말이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빨갱이라는 말 자체가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거론하는 일상용어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김일성 일당의 전쟁도발이 그 세대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한(恨)이 주원인이다.

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빨갱이’ 발언은 최근 북한 비핵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야당을 겨냥해 ‘적대와 분쟁의 시대를 바라는 세력’이라고 지칭한 것과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 정권의 남북 대화 기조에 비판적인 정치 세력을 ‘친일 잔재’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 인터넷이나 일부 보수집회에선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를 비판하면서 ‘빨갱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이 문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쓰는 표현에 과한 측면이 있다 해도 집권자가 공개적으로 이를 친일잔재로 규정하는 건 건전한 비판조차 봉쇄하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사회경제적 양극화에다 세대. 지역갈등까지 겹쳐 몸살을 잃는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불구, 문 정권이 ‘부역자’ ‘적폐청산’ 운운하며 적과 아군, ‘내 편’ ‘네 편’으로 편을 갈라 갈등과 대결을 부추겨 왔다.

그 결과로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되는 괴변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문대통령이 앞장서서 한 줌도 안 되는 일부 극우 세력을 큰 목소리로 질타하고 자극하는 것은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을 조장 할 뿐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빨갱이’ 어원 풀이는 오히려 거꾸로 ‘색깔론’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좌우 이념 갈등의 최대 상처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이라는 사실을 빼고서 좌우 갈등의 반쪽만을 말할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反)체제 인사에게 ‘빨갱이’란 이름을 붙여 ‘용공 프레임’으로 악용된 적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빨갱이란 단어를 친일잔재로 등치시킨 것은 6⋅25 남침(南侵)을 한 북한 김일성이나 북한 핵무장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까지 ‘친일 프레임’을 씌우려고 국민을 호도하며 선동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이 단어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인한 6⋅25 전쟁의 상처가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빨갱이 단어=친일잔재’로 규정하는 것은 자칫 김일성 3대 정권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까지 ‘친일 프레임’에 가두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빨갱이’란 단어의 어원을 두고는 일본 강점기 때 항일무장유격대를 지칭한 ‘파르티잔(빨치산)’에서 나왔다는 설과, 구(舊) 소련의 국기 색깔이 빨간 데서 유래했다는 설 등 다양하다.

그 뒤 중국의 국기도 홍기(紅旗)고 공산 위성국가 대부분의 국기도 빨간색이 주조를 이뤘다. 그 때문에 해방 이후엔 주로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역사 왜곡 여지가 있는 표현이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 등이 발의한 ‘5.18 비방 특별법안’도 그렇다.

명예훼손죄가 분명 있음에도 특권층을 위한 특별법을 또 제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한마디로 정부의 견해와 다른 생각을 갖고 의심을 하는 국민들을 붙잡아 감방에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는 분명 반민주적 발상이다.

법안엔 바른 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들이 가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 취급도 못 받는 이들이 무슨 근거로 대한민국 시민으로부터 ‘반대할 자유’ ‘표현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하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긴급조치’라는 헌법 조항이 있을 때 모두 반대를 하지 않았든가. ‘표현물에 대해 부정. 반대. 왜곡. 비방. 타인에게 알리거나 권유하는 등 일체의 언동을 금지시키며 입을 막았던 악법이다.

그 당시 헌법이나 5.18이냐로 대상이 달라졌을 뿐, 언론 등을 통한 시민적 확산을 차단하며 위반 시 신체형을 부과하는 패턴은 그때나 지금 문재인 정권 때나 다를 게 없다.

이철희 의원이 발의한 5.18 특별법이 통과되면 “광주 사태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더라.” 식의 술집 논쟁으로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5.18 비방 죄‘로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될 것이다.

국민의 입을 법으로 막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라는 문재인도 5.18 비방에 대해 강력한 불쾌감을 보였다. 최고지도자로서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5.18민주화운동이 신성하다 해도 3+3=6이라는 산수 식 진리가 아니기에 모든 국민이 다 공감하고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하나의 견해만 용납된다면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이뤄 논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정부와 정당, 언론과 국민들의 생각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공론장에서 토론을 거쳐 자연스럽게 국민의 의사가 형성되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다.

요즘,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여당 세력이 집권 후 언뜻언뜻 드러내는 전체주의적 행태가 매우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악법을 만들기 전 북한군 개입 여부와 가짜 유공자를 가리는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1년 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5.18 진상 규명 법’이 있음에도, 비방금지법 제정은 불일치라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북한군 개입설’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런 주장을 법으로 막는다는 발상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가 어떻게 이뤄진 나라인데, 또 다시 일부 정치꾼들에게 놀아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시대로 돌아간단 말인가.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주류를 교체하겠다고 장담했다.

조선시대 ‘노론’을 거론하고, 친일파를 들먹인다. 그 때 인물들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 후손들이지만 뿌리를 뽑겠다는 게 아닌가. 그런 억지 논리라면 당시 호구지책으로 공직 생활을 한 모든 사람들까지도 다 친일파가 되어야한다.

문 대통령이 추구하는 완전한 악의 제거는 가능한 것일까. 유생의 입을 틀어막은 ‘분서갱유’ 경제적 파국을 홍위병 난동으로 덮어버린 문화대혁명, 유대인 증오로 민족주의에 불울 지른 나치, 그것이 정말 악이건 아니건 집권자가 그렇게 힘으로 규정하고 말살하려고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한 사례가 없다. 지금은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미래를 향한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가 절실한 때이다.

비난의 경쟁이 아니라 잘하기 경쟁을 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남북통일과 평화도 중요하지만, 국민통합의 실천이 먼저다.

정적을 죽이기 위해 사정기관을 통해 ‘혐의 털기’에 나서지 않는 문 정권이 되기를 바란다.3.1 운동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쳐 새롭게 출발하는 실마리가 됐다.

남녀노소, 이념과 정파, 계층의 구분 없이 하나가 되어 총 칼을 둔 일제 탄압에 온몸으로 항거한 우리 민족이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바로 3.1 정신이다. 그 정신으로 하나 되어 함께 살자.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힘이자 시대적 요구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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