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댓글조작의 공범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대로 형이 확정될 경우 지사직도 상실한다.

2017년 대선 전후와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벌어졌던 ‘민주당원의 포털사이트 댓글 조작 사건’은 김경수 경남지사와 ‘드로킹’ 김동원씨 일당이 공모해 저지른 중대한 선거 범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1심 재판부는 특검이 적용한 두 가지 혐의, 댓글조작 공모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지사가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취지다. 현직 도지사의 구속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그 자체로 참담하기 짝이 없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에 기여한 것으로 사법적 결론이 난 국가 정보원 댓글 사건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야권에서는 김 지사의 지사직 사퇴와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면서 정치적 파장이 일고 있다.

판결 직후 김 지사는 "특검의 물증 없는 주장과 드루킹 일당의 거짓 자백에 의존한 유죄판결은 이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부가 끝내 진실을 외면했다.”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다시금 진실을 향한 긴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말한 뒤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그러면서 재판에 사실관계 외에 다른 요인이 개입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특수 관계가 자신의 유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 지사가 언급한 특수 관계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성 부장판사가 대법원장 비서실에 2년 동안 근무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직전엔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으로 근무했다.

한편 김 지사 측은 선고 직후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피고인으로 지난주 법정에 섰던 김경수 경남지사는 5년형이 구형되자 “나는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비서관”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늘 처신을 주의를 기울여 왔는데 드루킹 같은 인물과 불법을 공모했겠느냐” 는 취지의 항변이다.

어려움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 말엔 감동보다 열 받는 국민들이 더 많을 것 같다.

그 당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에도 ‘고인이 된 노 대통령을 언제까지 팔아먹고 살 거냐.’는 분노와 조롱의 글이 압도적으로 달렸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노. 친문이나 중도까지도 ‘자기가 잘못한 일에 왜 고인이 된 노무현을 끌어대느냐’며 김경수 지사 발언에 대해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을 욕보였다는 것이다.

그런 김 지사가 이번에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재판장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특수 관계라는 점에서 이번 재판에 영향을 미쳐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남 탓을 하면서 많은 국민들을 통분케 했다.

한편 김 지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맡아온 허익범 특검팀은 "진상규명이라는 국민이 부여한 업무를 공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큰 의미" 라며 남은 재판 절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이는 문제에 가장 크게 부담을 느껴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법정의 김경수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신’을 유산 삼아 집권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요즘 정치는 노무현 정신과는 동떨어진 듯하다.

계승해야 할 순수한 이상에서 멀어졌고, 극복해야 할 도그마화한 이념에 갇힌 모양새다. 촛불 덕에 집권하면서 지속된 콘크리트 고공 지지율에 취한 탓일까 콘크리트가 쪼개져 금이 가면서 새해엔 지지율이 30%대로 추락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문 대통령은 딴 나라 대통령처럼 행동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노무현 정신은 불법에 저항하고 주변의 잘못을 자기 문제처럼 수치스러워 하는 마음이다. ‘부끄럼이 있어야 의로움이 생긴다.’는 맹자의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지금 문 대통령과 그 주변 참모들에게서 도무지 노무현의 수치심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책임을 질 주 모르는 정권이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임기 초 최도술 비서관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터지자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국민들은 저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도덕적 신뢰만이 국정을 이끌 밑천”이라며 “나의 재신임을 국민에게 묻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임기 중 대통령의 진퇴를 국민에게 묻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정국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은 지나칠 만큼 측근의 불법. 비리에 민감했다. 말년에 가족의 뇌물비리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법적 판단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기준을 청와대와 자기 스스로에게 적용시켰다.

핵심일수록, 실세일수록 엄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거기에 ‘내로남불’ 이란 사고방식은 끼어들 틈이 없다. 과도하게 책임을 지려는 바람에 노무현의 정치는 위험하기까지 했다.

이번 김경수 댓글 조작사건과 관련해서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서 “제 꿈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다. 참여정부(노무현 정부)를 뛰어넘어 완전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확장해야 한다.”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100% 계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현 정부는 좋으나, 싫으나 노무현 정신이 녹아있는 정부다.

새 대한민국을 위한 ‘기대’ 와 내 편만 옳다는 독선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이 측근 가신들에게는 관대하고, 핵심일수록 감싸며, 실세에 대해서는 침묵 내지 방관하는 언행을 보여 왔다.

최근에 청와대 참모들의 불법 사찰, 블랙리스트, 직권 남용 의혹에 대해 방치에 가까운 대응이 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적자국채 발행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사무관에 대해 ‘그 결정권은 장관에게 있는데 사무관 주제에 잘 모르는 일에 함부로 나서서 까불지 말라’는 훈계조의 발언으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기도 전에 소통을 봉쇄하는 ‘우’를 범했다.

엘리트 공무원으로서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면서 국민을 위해 직언을 한 젊은이를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를 들어 검찰에 고발했다.

이런 자세는 노무현 정신과는 180도 어긋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을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국가 통치자의 모습으로선 감히 지적하지만 부적절한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 진영만의 정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모든 시민들이 만든 정부다.

진보. 보수의 두터운 벽을 넘어 시민 주권의 폭을 넓히려는 이들이 문 정권에 표를 던졌던 것뿐이다.

진보와 보수 사이를 높은 울타리로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니다. 그 울타리는 지도자의 역량으로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 벽을 허물려 하기 보다는 ‘적폐청산’ 이라는 미명아래 국민을 선동하며 집권 3년차가 될 때까지도 정적(政敵)제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연산군 때 ‘사화’가 떠오른다. 이청득심(以廳得心) 곧 국민은 물론 반대편의 말에도 귀 기울여야 마음을 여는 법이다. 노무현 정부 때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었던 것은 정권이 진영에 갇혔기 때문이다.

말로는 쓴소리를 듣겠다고 하면서도 독주하는 문 대통령이다. 말 잔치뿐이다. 국민과의 약속도 지키는 게 하나도 없다. 신뢰마저 잃었는데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것 같다. 남을 탓하기 전 진지한 자기 성찰과 반성이 먼저 필요한 때다.

벽을 쌓아 성안과 성 밖을 나누고 작은 땅덩어리에서 ‘내 편 네 편’ 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보복 정치를 한 연산군도 자신의 실정(失政)을 뒤늦게 깨닫고 선정(善政)을 하려고 했지만, 반대 세력에 의해 밀려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자기반성은 빠를수록 좋다.

국민은 대통령의 입이 아니라 귀를 원한다. 듣는 데서부터 지혜의 열매가 싹튼다. 말하기보다 귀를 열어야 공존과 상생의 시대도 열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여기저기에서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무사히 끝내고 청와대를 떠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9년 기해년을 맞이하면서 나타나는 풍경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패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