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 나였다.’십 수년 동안 여러 정권을 겪어보았지만 ‘신년사’라는 게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졌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난 10일 대통령의 신년사를 들으면서 느낀 감정이다. 국민들에게 현실감각이 없는 말들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

핵심은 남의 탓으로 화살을 돌린다는 것이다. 주 타깃은 주로 재벌과 전(우파)정부다. 결론은 이명박근혜 보수정권이다. 그러니 해법도 같을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이다.

우선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시장. 공장. 편의점. 식당. 모텔. 아파트 등을 가보기나 했는지요. 청와대 비서진이 미리 준비해놓고 연극하는 그런 곳 말고 아무도 모르게 민정 시찰을 해보셨냐.”고 묻는 것이다.

팔도에 조선시대처럼 암행어사를 보내면 현실을 금시 알 수 있는 진실이다. 백성을 아끼고 생각하는 어사들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현장의 진실을 가감 없이 고했다.

이번에 탁현민 행정관이 두 번째로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각종 구설수에 올라 있다. 조선시대에는 관료들의 사직서가 난무했다.

‘직을 걸고, 목숨을 내놓고’ 바른말을 하는 선비 정신의 발로였다. 광해군 때 이조판서 이정귀는 사직서를 통해 인사의 난맥상을 질타했다. 심지어는 임금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까지 에둘러 비판했다.

대사간이었던 율곡 이이 역시 선조 임금이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사직서를 냈다.

‘신의 말이 채택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신다면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라고 까지 진언을 했다. 세종 때 정승 허조의 경우 하도 반대를 많이 해 세종으로부터 ‘고집불통’이라는 별명을 들었지만 세종은 대소사에서 꼭 허조 정승의 의견을 귀담아들었다.

서양에도 그런 소신을 지킨 각료는 허다하다. 지금도 그렇다. 얼마 전 물러난 한 제프 세션스 미국 법무부 장관은 수사의 공정성을 지키려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움을 샀다.

트럼프가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손을 떼겠다고 했던 게 화근이 된 것이다. 제임스 매테스 국방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에 반발해 최근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트럼프가 나토 무용론을 펼쳤을 때도 ‘아니오(No, President)’라고 당당하게 맞서기도 했다. 오래전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떠오른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그는 ‘산업자본이라고 대못질해서 금융산업에 동원하지 못하게 해놓은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등 정권에 맞서는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반골‘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그를 신임했다. 결국 윤 위원장은 최초로 임기 3년을 채운 금강위원장으로 기록됐다.

문 정권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고위 각료들이 도통 보이지를 않는다. 현 정권의 정책에 흠이 없는 것도 아닌 데, 진언하는 각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대통령이 ’고용 문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실패를 인정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언은 온데간데없다.

지금 문재인에게는 진언하는 보좌진이 필요하다. 국록으로 살고 있는 청와대 보좌진들은 이런 현실을 걱정하고 있을까? ‘경제를 바꾸고, 논란이 있어도 계속해서 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좋게 봐준다 해도 팔도 사정이 다르다면, ‘개혁의 역설인가’ ‘개혁의 부작용인가?’ 청와대 보좌진들이 젊은 시절 투신했던 반독재투쟁의 목적은 분명했다.

몸이 으깨질 정도의 부작용. 그걸 견뎠을 텐데 지금의 부작용은 누가 견디고 있는가 묻고 싶다. 최저임금제와 주 40시간 노동제는 누가 감당하겠는가? 현 문 정권이 애지중지하는 자영업자와 하청업체는 직격탄을 맞고 사망 일보 직전이다.

소상공인들이 ‘못살겠다.’고 비명을 질러도 정권 뜻대로 묵묵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관료만 눈에 띌 뿐이다.

고작 하는 소리가 ‘인내하고 성숙한 자세로 밀고 나가면 경제 틀이 바뀝니다.’라는 헛소리만 남발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땐 이미 민초들은 말라 죽었을 것이다.

고용과 소득 모두 결딴내고, 소상공인 사업 접게 만든 건 정책의 어설픈 설계와 실행방식 때문임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예상된 부작용을 검토도 하지 않고 급하게 서둘렀던 탓이다.

미래가 암울한 자식세대가 눈에 밟혀 잠을 설친다고 말하는 국민들의 탄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을 정도다. 대통령이 경제에 서툴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전문가의 말을 잘 듣거나, 잘 맡기면 된다.

일일이 대통령이 챙기기보다는 믿을 만한 부총리를 골라 경제사령탑으로 쓰면 된다. 그러나 문 정권에서의 경제부총리가 과연 경제사령탑이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컨트롤드 타워’라 하는 게 더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국책발행에 대한 청와대 압력, 김동연 전 부총리의 정무 적 판단 등과 관련한 전직 사무관의 폭로 이후 그런 인상이 더욱 짙어졌다.

모두가 일등공신을 자처하는 귀족노조에 끌려다니고, 단순이론과 낡은 신념에 집착하는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경제사령부에 가득하다.

경제 틀을 바꾸기에 앞서 이들을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현 정권이 오래갈 수 없다. 그래도 계속 고집을 부리며 진행을 할 것인가? 눈치가 뻔한 우리 사회에선 누가 힘이 있는지 금방 안다.

출중한 정무감각으로 무장한 관료들과 청와대 보좌진은 권력의 코드에 맞춰 정책을 생산해 진상한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지난 2년간 다 드러나지 않았는가.

눈멀고 귀먹은 자들의 행진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고달플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경제는 정치와는 사뭇 다르다. 이념과 의지만으로 잘 굴러가지 않는다. 현실에 막히면 속도를 늦출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론 돌아서 갈 줄도 알아야 한다.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좌파정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권력자들에 대한 실망의 크기는 국민이 판단한다는 것을 알아, 권력의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드루킹’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의 소극적 수사, 이른바 ‘적폐청산’ 과정에 얽힌 검찰의 무리한 과잉 수사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은 “과거 정부와 달라진 게 도대체 무엇이냐” 며 “적폐청산을 내세우는 문 정권이야 말로 적폐청산 대상”이라고 착잡한 심정을 드러내며 울분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사회에서 부당한 권력행사를 감시하는 핵심수단이 언론이다. 그런 탓이지 얼마 전에도 그랬고, 불과 며칠 사이에 언론사에서 청와대로 일자리를 옮긴 기자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은 이들을 영입하면서 “그야말로 아주 공정한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 해 온 분들”이라며 “지금 정부에서는 권언 유착이 전혀 없다” 는 등으로 자신의 비서실 인사를 옹호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이미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은 대통령, 경제를 비롯한 외교 등 현실 감각에 무딘 이런 대통령의 판단 때문에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할 말을 다하는 소신 있는 관료, 참모들이 그립다.

그리고 그 말을 겸허하게 경청하는 군주와 대통령은 더더욱 그립다. 정도를 걷는 언론인도 그립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다고, 촛불정신을 강조하는 문 정권이지만 자칫 그 촛불이 탄핵의 촛불로 바뀔 위험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다시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있는 판국이다. 소통 정부에 소통을 주문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패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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