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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害한 사람이 되자
2018년 03월 15일 (목) 09:27:32 안호원 egis0191@hanmail.net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자연의 겨울은 길어야 4~5개월이지만, 인생의 겨울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딱히 기간을 정 할 수가 없다. 자연의 봄은 기다리기만 하면 오지만 인생의 봄은 준비 없이 기다리면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 없다.

개구리가 땅 밖으로 나온다는 ‘경칩’도 지났건만 여전히 방안은 눅눅하기만 하다.

직업상(칼럼니스트) 매일 같이 여러 개의 신문과 TV 청취를 한다. 그러면서 늘 가슴에 와 닿는 느낌으로 속 알 이를 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루터는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펜을 들어 글을 쓰라.”고 했다. 결국 1517년 루터의 글(반박문. 종교개혁)이 대중 속으로 퍼지면서 세상을 바꿨다.

영국의 사회주의자인 오웰은 “좋은 산문은 유리창(window pane)과도 같다"고 했다. 그 창(窓)은 세상을 제대로 보게 한 것 같다.

매주 원고를 쓰면서 이번에는 어떤 글을 쓸까 한참을 고민해야만 했다. 문득 ‘심청전’ 을 떠올리며 그 주인공인 심청이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게 고전에 나오는 옛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은유의 메아리가 너무 깊다. 심청의 아버지는 모두가 다 알다시피 앞을 못 보는 맹인이다.

그건 바로 우리들 자신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봄날의 꽃, 여름의 녹음 우거진 숲,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 겨울에 내린 하이얀 눈을 ‘있는 그대로 보질 못 한다’ 늘 거기에는 자신의 감정을 대입해 보게 된다.

그래서 감정에 따라 꽃은 항상 슬픈 꽃이 되고 녹음 우거진 숲은 절망의 숲으로, 바람은 외로운 바람, 겨울에 내린 눈은 두렵고 차가운 눈이 되어버린다.

결국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를 못하다 보니 이 세상과 우주는 희로애락으로 뒤범벅된 잡탕밥처럼 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안타깝게도 스스로 만든 창(窓)을 통해 바깥을 보게 되니까 편견의 삶을 사는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성현들은 말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한다.

범인인 우리로서는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지금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데, 있는 것을 보라 하니 무엇을 보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랬는데 우리의 주인공인 심청이가 그 말의 의미를 알려준 것 같다. 우리에게 ‘눈 뜨는 법’을 알려 준 것 같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심 봉사는 자신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자신의 신분도 망각한 채 선 듯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시주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곧바로 고심을 하며 괴로워한다. 결국 심청이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심청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찢어지게 가난한 처지에 공양미 300석은 ‘심청이의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는 뱃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주고 구할 수 있는 돈이다. 심청이는 그래서 잠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문제도 그렇지만 부처님께 시주를 약속한 것을 감히 외면할 수 없다는 게 더욱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모두를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내놓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결심을 굳혔다. 아버지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고 시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머리 깎고 산으로 가는 것만이 출가(出家)가 아니다. 나의 집착이 내려지는 순간, 바로 그게 출가의 순간이다.

목숨을 던지며 심청의 가장 큰 집착은 무엇이었을까? 잘은 몰라도 앞 못 보는 아버지에 걱정과 잘 모시지 못한 자책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안고 심청은 자신이 움켜진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치마를 둘러쓴 채 인당수 바다로 뛰어내린 것이다. 바로 그때 바다가 가라앉는다.

왜 바다가 가라앉을까? 색(色)이 공(空)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심청의 집착은 ‘색’이다. 그 ‘색’이 바다로 들어간 것이다. 바다는 공(空)을 뜻한다. ‘색’이 ‘공’으로 들어갔으니 결국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래서 우주가 조용해진 것이다. 바람도, 파도도, 심청이의 집착도 원래 비어있기 때문이다. ‘색즉시공’의 순간, 심청이는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심 봉사는 눈을 뜬다.

그뿐만이 아니다. 맹인 잔치에 왔던 모든 봉사들 역시 다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난다. 결국 내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날 때 세상이 눈을 뜨는 것이다.

해가 바뀌면서 칠십이 되었다. 까마득한 것 같은 숫자가 내겐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불경스럽지만 오십에 ‘지천명’했다는 공자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기보다는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불통에 뻔뻔해지는 것 같다.

아직도 철없고 갈 길을 모르겠는데 칠십이라니 착착하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해가 바뀔 때마다 생각해 보는 것이 있다.

무해(無害)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감히 성인처럼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되기도 힘들지만 그만큼 인생이 피곤해질 것 같다. 무해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살필 줄을 알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나이 먹을수록 더 되뇌어보게 되는 시간이다. 우리 역시 심청이처럼 틀어쥐고 있는 집착을 인당수에 하나하나 내려놓다 보면 결국 눈을 뜨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나만 눈을 뜨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더불어 동시에 눈을 뜨는 거다.

아! 그때가 되면 ”여기가 바로 천국(극락)이구나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올 것 같다. 심청이가 ‘눈을 뜨는 법’ 을 일러주듯 아집의 틀을 내려놓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 을 갖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패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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