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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환의 시간 속에서 독백
2017년 12월 21일 (목) 09:09:04 안호원 egis0191@hanmail.net

2017년의 한 해가 서녘으로 저물어가고 있다. 십여 일 후면 정유년이 가고, 무술년 새해가 다가온다.

이 맘 때면 늘 그랬듯이 뿌듯함보다는 뭔가 아쉬움이 더 크다. 돌이켜보면 무엇하나 변변하게 이뤄 놓은 게 없다. 의욕만 앞섰지 행동이 받쳐주질 못한 것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나와의 약속이든, 남과의 약속이든 말만 앞세우다 보면 언제나 남는 건 후회뿐이다.

그런 삶을 우리는 늘 되풀이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새해를 맞는다. 내년은 개(犬)의 해다.

지금까지 정세로 보아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한 해가 되겠지만, 길흉과 화복은 언제나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암튼, 필자는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데, 세월은 무심하게 날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가기만 한다. 육체도 정신도 그리고 나의 혼신인 영혼의 글까지도 흘러간다.

아직도 채워야 할 것은 너무나 많은데, 그냥 빈 수레로 시간은 내달리고만 있다. 아직도 마음은 아쉬움을 달래는데 철없는 아내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내년도 카렌다를 펼쳐 보이며 어디에 걸을까를 찾는다.

아! 또 수없이 맞이하며 설레었던 또 다른 새해가 저만큼에서 다가오고 있다. 갑자기 덧없는 인생을 일깨워주는 성경 말씀들이 문득 떠오른다.

모세는 인생을 잠깐 자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아침에 잠시 돋는 풀이라고도 했다. 다윗은 그림자와도 같다고 하였고 욥은 베틀 사이를 지나가는 북과도 같다고 했다. 또 사라지는 구름 같기도 했다고 했다. 야고보는 인생을 안개와 같다고 했다. 베드로는 시들어가는 풀과도 같다고 했다.

정말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가는 가보다. 필자가 아주 어릴 적 부모 곁을 떠나 외할머니와 안중 바닷가에서 살 때 외할머니가 밭에 일하러 나간 사이 난 땅에다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그리움을 달랬다.

때론 이름 모를 바닷새를 바라보며 어린 나이지만 시를 지으며 부모를 그리워한 적도 있다. 어떤 때는 모래와 돌로 작은 모래성을 쌓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외할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파도에 휩쓸려가는 모래성을 바라보면서 언덕 위에 있는 초가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 파도에 쓸려갈 모래성을 쌓다가 누군가가 부르면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달려가야 하는… 그렇게 소중한 시간이기에, 70여 년을 살아온 길. 뒤돌아보면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련만 별로 기억되어지는 추억은 낙엽만 하다.

그 기억은 고작 수십 몇 분(分)에 불과하다. 참으로 허무하다. 오래 살았다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 세월에 비해 기억되어지는 것이 너무도 짧기만 하다.

시간과 함께 스쳐 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 그렇다면 지혜는 누구에게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성경 시편에 모세라는 사람의 기도가 아주 특이한 뉘앙스를 남긴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나에게 날 수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자신의 남은 날을 셈하는 것. 이것을 그는 인생의 큰 지혜로 알고 남은 날을 셈하며 시간을 질적으로 충실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어쩜 잡을 수 없는 시간을 질적으로 충실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명의 발전을 시간에 대한 인식의 발전으로 파악한 사람이 있다. 문명 비평가 오스왈드 슈펭글러인데 그는 ‘서양의 몰락’ 이라는 책에서 ‘원시인들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론 그들도 시간 속에서 살았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그들이 의식한 것은 공간일 뿐이다. 공간은 우리의 감각 세계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지적을 했다.

그는 미개인은 공간에 관심이 많고 문명인은 시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러한 지적은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어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린다.

오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안타깝게도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든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또 우리를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마냥 흘러가면서 그들이 공간을 빼앗기 위해 다투는 것을 간과한다.

시간을 볼 수 있는 시계는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에게 빌릴 수도, 빌려주지도 못한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정작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는 무심하다.

세월이 흐르면 누군가는 곁을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불가에서는 억겁의 세월이 지나서야 만나는 게 인연이라 했다. 인연이란 어쩜 작고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인연이라면, 숨어있어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우리이지만, 떠난 후에라도 좋은 인상,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아, 그때,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어.” 라는 소리를 듣고, 기억에 남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는 세월이 참 아쉽다. 무술년의 해인 내년에는 우리 한반도에 큰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시대, 게다가 내년에는 문풍(文風)바람이 휘몰아친 뒤 실시되는 지방선거까지 맞물러 있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는 무술년 대운(大運)의 빛이 한반도에 깃들기를 기대해본다. 모두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패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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