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의견 분분…대만의사회 "우리의 전철을 밟지 말라"

최근 정부의 지불제도 개편이 언급되면서 주목받는 것이 총액계약제이다.

총액계약제는 진료서비스나 약품 등 의료서비스의 총액을 사전에 결정해 지급하고 결정된 총액 범위 내에서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제도로, 현재 운영 중인 행위별수가제와 반대 의미다.

의료계 내에서도 총액계약제는 국가가 의료비용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을 갖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의견과 환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시도해 볼 수도 있다는 의견으로 분분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15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총액계약제가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에서 김병관 대한병원협회 상임이사는 "총액계약제는 유럽과 일부 국가에서 보험재정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의료비 지출 통제를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한국은 건강보험재정이 22조원의 흑자를 보이는데다 건강보험료율도 6.24%로 일본 8%대, 대만 15%대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어서 재정 건전화를 위해 보험료 인상 및 국고지원 등을 통해 노력했음에도 재정이 바닥나야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이사는 "우리나라는 이미 상대가치점수를 통해 총액을 제한하고 있다"며 "더 이상 지불제도로써 현실을 바꾸려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운 대한개원의협의회 법제부회장도 이 같은 의견에 동의했다.

이 부회장은 "대만과 독일이 총액계약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목적은 의료수가·의료소비량·의료공급량 통제를 통해 의료비 절감"이라며 "독일의 경우 공공의료가 89%를 차지하는데도 의료비 통제에 실패했다. 공공의료가 겨우 6%인 우리나라에서 총액계약제로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은 총액계약제를 실시하면서 진료량이 늘어났고 약품비가 상승했다"며 "국민건강이 돈으로 환산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이다. 총액계약제는 상상하기도 싫은 제도"라고 못박았다.

"몰락하는 개원가, 생존전략 고민해야"

반면, 시간이 갈수록 위축되고 미래가 불명확한 개원가 입장에서는 지불제도 변경으로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안양수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는 "2000년 10조원이었던 보험재정은 지난해 65조원으로 17년 만에 6.5배 성장했지만 개원가는 점점 몰락하고 있다"며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행위별수가제가 유리할 수 있지만 환자가 감소하게 되면 고민을 안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안 이사는 "대만의 총액계약제를 그대로 도입해서는 안되지만 참고할 부분이 있다"며 "병원과 의원의 총액계약을 따로 하는데 이런 부분은 우리 개원가의 생존전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의철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총액계약제를 규제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간과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의료의 역할을 정상화하는 전략적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총액계약제를 실시하면 지역의사회의 역할이 커져 질병 협상이나 심사 주체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예를 들어 예방접종의 경우 대상과 비용이 정해져 있다. 대상 인구에 비용을 할당할 수 있는 이유가 성립된다"며 "총액은 정부가 결정하지만 그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역할이 상당히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하우가 쌓이면 건강보험자료를 이용해 당뇨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난이도가 높거나 신의료기술 등은 기존 행위별수가제 적용으로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총액계약제 걱정 불필요…신포괄수가제 확대 예정

위 리엔 리우(Yi-Lien LIU) 대만의사회 사무부총장.
현재 의료계 현안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총액계약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팀장은 "현재 한국 의료체계에서 총액계약제가 시급한 과제인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이다. 이에 대한 개선 없이는 총액계약제 자체가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의 행위별수가제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고 차후 의료비가 OECD 국가 평균보다 많이 지출됐을 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정부 측도 이 의견에 동의하고 총액계약제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를 해소했다.

정통령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총액계약제 도입을 위한 계획들이 전혀 검토되고 있지 않다"며 "의료계는 정부가 의도를 갖고 진행한다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놓고 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과장은 "다만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지불제도 중심의 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적합한 지불제도 형태를 고민해 보고, 단기적으로는 현재 시범사업 중인 신포괄수가제를 현실에 맞게 틀을 바꿔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 총액계약제 도입 최대한 늦춰야

한편 총액계약제를 시행 중인 대만 의료계는 자신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며 한국에서 최대한 도입을 늦출 것을 제언했다.

이날 초청연자로 참석한 위 리엔 리우(Yi-Lien LIU) 대만의사회 사무부총장은 "대만은 2013년 총액계약제를 시행했으나 올해 건강보험제도 만족도 조사에서 의사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낮다"며 "의사들에게 있어 진료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대만에서는 연동되는 포인트 값이 있다. 1포인트에 1달러지만 결정된 총액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90%의 수가밖에 보전받지 못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정부가 100조 달러를 총액계약 했을 때 의료공급자의 포인트가 100조 달러를 넘어가게 되면 그 이상의 포인트는 보전해 주지 않는 것이다.

리우 사무부총장은 "고가의 신약들이 개발되고 신의료기술이 늘어나면서 의료지출도 증가하는데 여전히 총액에 묶여 있다"며 "한국은 총액계약제에 동의하기 전에 반드시 많은 연구와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총액계약제 도입을 좀 더 지연시킬 것을 권장한다"며 저희 전철을 밟지 말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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