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임신중절 허용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 포함시켜야"

낙태법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이 23만건을 돌파하면서 인공임신중절을 금지하는 현행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산부인과의사들도 이에 가세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이충훈)는 28일 "태아의 생명 존중과 동시에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건강권 또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며 "이번 기회에 모성건강을 보호하는 의학전문가인 산부인과의사들의 권고 방향대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인공임신중절 여성과 시술 의료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현 모자보건법 및 형법 개정은 물론, 태아의 생명권도 보호하려면 20% 수준에 머물고 있는 피임실천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법에서 인공임신중절(낙태)은 형법으로 처벌되는 중대한 범법행위로, 인공임신중절을 한 임신부와 시술 의료인 모두를 처벌하는 쌍벌죄이다.

산의회는 "인공임신중절로 임신모가 기소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고 200만원까지의 벌금형에 처해지는데, 이 때 배우자나 상대 남성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면서 "인공임신중절 시술 산부인과의사에게는 해당 조항에 벌금형이 없어 기소될 경우 징역형을 면하기 어렵고, 의료면허 자격도 취소되는 등 2중 3중으로 처벌되는 가혹한 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조건 없는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한 시한을 정하거나, 정당한 인공임신중절 사유로 ‘사회 경제적 사유’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만 23주, 영국은 만 24주까지 허용하고 있고, 해당 주수 이후라도 임신부의 건강이나 생명 보호를 위한 인공임신중절은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만 12주 미만은 전면 허용하고, 6개월까지는 임신부의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 허용하고 있다.

낙태를 원칙적으로 처벌하는 독일의 경우도, 12주 미만은 의사 상담 후 요건을 갖추면 허용하고, 12주 이후에는 의학적 정당성이 있으면 허용하며, 22주 이내에는 임부의 상담과 동의를 거치면 의사의 처벌을 면제하고 있다. 한국의 모자보건법과 가장 유사한 일본의 ‘모체보건법’도 ‘사회 경제적 사유’를 정당한 인공임신중절 사유로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합법적 인공임신중절은 ‘임신부, 배우자의 우생학적 장애나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 임신, 임신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는 경우’만 허용되고, 수술을 선택하는 가장 흔한 원인인 사회 경제적 이유는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조병구 전문위원은 "현재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인공임신중절의 정당한 사유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며 "불법적 인공임신중절의 상당 부분은 10대 청소년 임신, 미혼모 임신, 다출산 기혼여성처럼 낳더라도 양육하기 어려운 조건의 ‘사회 경제적 사유’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조 전문위원은 “보건당국이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여성들과 산부인과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모자보건법과 형법 규정들을 바꾸고,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인공임신중절 사유에 ‘사회 경제적 사유’ 조항을 추가하는 전향적인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너무 낮은 피임실천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노력과 동시에, 비혼여성들도 마음 놓고 출산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실질적인 혜택을 준다면,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저출산 해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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