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었다고, 우정사업본부가 착각을 해도 유분수다. 한참 잘못하는 것 같다.

바뀐 정권에 과잉 충성심을 보이려는 듯 우정사업본부에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해프닝이 아니라 구조적일 수도 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에 앞서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해 6월 박정희 대통령 기념우표(탄생 100주년 기념.11월 4일)를 오는 9월 60만 장을 발행하기로 결정한바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최근까지 “지난해 4월 박근혜 정부 당시 우표발행심의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 예정대로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돌연 우정사업본부가 여권과 공무원노조, 진보단체가 ‘우상화’라고 비판하며 반대 입장을 보이자 마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식으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면서 뜻있는 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정국이 꼬이며, 법률보다 권력이 앞서다 보니 ‘어공’들이 미리 겁을 먹은 것 같다.

주무부서가 이미 결정된 사안을 일부 진보 측 단체들이 반대를 한다고 해서,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12일 ‘정치적. 종교적. 학술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의 경우 기념우표를 발행할 수 없다.’는 ‘우표 류 발행업무 처리 세칙’을 내세워 발행 계획자체를 철회했다.

지난해에 결정된 사안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말을 바꾸면서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결국 순수해야 할 대통령 기념우표도 ‘권력 바라기’란 걸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었다.

미국 우정공사(USPS)는 매년 20개 안팎의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99년 만의 개기 일식, 픽업트럭 100년사 등 기념비적인 주제를 엄선해 찍는다.

미국 우정공사에는 철칙이 있다. 현직이나 생존한 전직 대통령 우표는 만들지 않는다. 사후 1년이 지나거나, 탄생 100돌이 되어야 발행 대상에 올린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존 F.케네디의 기념우표도 올 5월에서야 발행되었다. 100주년(1917년 5월 29일) 기념우표다.

우리는 대통령 기념우표를 오래전부터 발행한 역사가 있다. 편지를 많이 쓰던 시절, 대통령의 우표가 흔해 희귀성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전에 다섯 번의 취임식과 새마을 운동 우표 등 20종을 발행했다. 20~25장을 한 세트로 판매했는데 다른 대통령과는 달리 ‘자조정신. 자립정신. 자립경제. 자주국방’이란 구호를 꼭 집어넣는 특색이 있었다. 80년에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 우표도 나왔다.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는 취임 기념우표를 찍었다. 그런 대통령 기념우표가 정권이 바뀌면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박정희대통령 기념우표 발행과 관련, 구미 YMCA. 구미 참여연대. 민주노총 구미지부 등 지역 시민단체들이 “구미시는 어떠한 의견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우정사업본부에 일방적으로 요청했다.” 며 “구미시와 경상북도가 중심이 돼 추진하는 ‘박정희 100년 사업’은 이미 지역에서부터 수많은 반발에 부딪치고 전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 독재자를 미화. 우상화하는 사업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강하게 우표 발행을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표발행을 요구하는 구미시 측은 “엄연히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정된 사안을 일부 단체의 반대 의견만 듣고 정당한 근거 없이 뒤집었다.” 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울러 구미시는 지난 18일 서울행정법원에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 발행 결정을 철회 취소 청구의 소장을 제출했다. 소장 원고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보존회, 피고는 대한민국(소관 우정사업본부)이다.

구미시 한 관계자는 “원고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보존회지만 구미 시장이 법원에 가서 소장을 같이 제출한 것은 실질적으로 구미시가 전면에 나서 함께 소송을 이끌어 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구미시와 생가보존회는 “우정사업본부가 적법한 절차 없이 당초 발행 결정을 철회했다” 며 “신뢰보호 원칙을 위반한 실체적 위법성이 있다.” 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행정소송을 계기로 집회.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정사업본부의 우표발행 결정 철회에 적극 대응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엄밀히 말하자면 역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것은 정치적 논란 및 공과(功過)의 판단과는 별개다.

전병억 박정희 대통령 생가보존회장은 “지난해 우표발행 심의 때는 압도적으로 찬성을 했던 심의위원들이 정권이 바뀌고 나니 결정을 뒤집었다.” 며 “이는 새로운 정권에 비위를 맞추며 아부하는 행태로밖에 볼 수 없다.” 고 허탈해했다.

앞서 지난 12일 서울 중앙 우체국에서 열린 우표발행 심의위원회에서 철회 8표, 발행 3표, 기권 1표로 기념우표 발행 계획 자체를 철회한 바 있다.

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엄연히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을 때, 함께 하며 수출입 전략, 외자도입, 중화학공업 육성, 경부선 고속도로 등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다.

또한 어느 역대 대통령보다 검소한 삶을 살아온 대통령이다. 유신헌법 등으로 독재자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부강한 나라로 있기까지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송 제기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서울행정법원에 제출된)소장 내용을 확인해 보고 법 절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과 같은 해에 태어난 “100세 케네디를 떠나보내지 못하겠다.” 며 기념우표를 어루만진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다른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출수 가 없다.

우정사업본부 ’어공‘을 보면서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漂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회오리는 아침내 불지 않고 소나기도 종일 내리지 않는다)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늦은 봄이면 매년 가뭄이 닥쳐 물 가뭄에 시달린다. 고생이 되더라도 자연재해는 시간이 지나면 비도 오고 바람이 불어 해결해준다. 인간사 역시 잘 나갈 때 주위를 잘 살펴 어그러짐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는 데, 이를 자주 무시한다. 폭풍이 종일 불지 않듯이 열흘 붉은 꽃도 없는 법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권력이나 진보 세력을 의식하지 말고 지난 해 결정된 대로 박정희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를 바란다.순간의 자리 보존을 위해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자로 손가락질 받지는 말자. 더 많은 국민들은 그것을 원한다.

분명한 것은 권력의 힘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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