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한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구성원끼리의 신뢰, 대인관계에서의 신뢰, 신용이 있어야 믿고, 상대를 해주는 것이다.

하나라도 부실하면 조직은 자연스레 삐걱거리게 되고, 끝내는 와해되고 만다. 조그만 조직도 그럴 진데, 한 국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족병(足兵), 족식(足食), 민신(民信)”이라 답했다. 안보. 경제. 신뢰를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여기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먼저 족병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족식, 최후까지 지켜야 하는 게 민신이다”라고 했다. 또 “예로부터 모두 죽음이 있지만 백성과의 신의가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설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경제와 안보를 중시하지만 이 모두가 국민들의 믿음에서 바탕이 되는 것이지만 믿음과 신뢰가 없으면 존립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출발은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노타이로 격식 없는 회의와 테이크아웃 커피 산책의 ‘감성정치’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참 나쁜 사람’으로 찍혀 쫓겨났던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을 차관으로 발탁하는 파격도 보여주었다.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신선해 보였다. 그런데 조각(組閣)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나물에 그 나물이 된 것이다.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 발굴 기용’ 약속은 초반부터 깨졌고, 후보자 시절 스스로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공직 배제 인사 5원칙’은 시작부터 아예 무시 되었다. 청문회가 무색할 지경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표절, 음주운전, 위장 전입, 등 숱한 흠이 드러난 이들에게 성은(聖恩)을 베풀었다.

모든 결정을 국민의 눈높이 맞추었다며 오히려 야당의원들이 발목을 잡는다고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특히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4년 전 자신들의 처지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4년 전 ‘인사 참사’ 때 자신들이 던진 비판에 화살로 돌아왔던 말들을 입으로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그런 실패한 인사의 결과로 정권을 잡은 여당이 너무 뻔뻔하고 음흉하기까지 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다. 그릇된 인사에 대한 합리적 지적에도,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도 눈 하나 꿈쩍이지를 않는다.

물론 흠이 많다고 능력까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 전 호기롭게 외쳤던 ‘5대 악(惡)을 메아리조차 없이 슬그머니 거두는 것은 뻔뻔함이요. 여론 지지율로 뭉겨버리는 것은 음흉함이다. 촛불 혁명을 말하면서도 국민들을 무서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미 청와대는 비서실장을 비롯한 정무수석 등 중요 요직에 주사파, 사노맹, 운동권 출신 회장들이 진을 치고 있어 문 대통령의 의중을 어느 정도 읽고 하나하나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 같다.

집권하자마자.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했던 보훈처장을 찍어내고, 국정교과서를 여과 없이 폐기시킨 장본인. 신세는 촛불 국민에게 졌는데, 엉뚱한 데다 빚잔치를 하다 보니 ’유시민(유명대학. 시민단체, 민주당)’내각이 이루어졌다.

17명의 국무위원 중 10명이 SKY 명문대 출신이다. 학벌 타파와 통합을 외쳤던 문 정권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박근혜 정부의 ‘성시경(성균관대. 고시, 경기고)’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바꾸는 것 같은 데 똑같다.

정권이 바뀌다 보니 5.18 광주묘지와 6. 10 민주항쟁 기념식에는 대통령과 각료, 정당인과 시민 단체가 대거 참석,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기도 했지만, 지난 6. 25 한국전쟁 67주년 행사와 29일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15주년 기념식에는 유가족과 참전 용사들만 참석했을 뿐, 정치인은 물론, 피우진 보훈처장마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대조를 이루었다.

문 대통령에게 ‘잘못하는 결정’ 이라고 직언을 할 인사가 주위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구조상 그렇다는 것이다.

공무원 성과급 폐기, 비정규직 정규화, 평둔화(平鈍化)교육 등 ‘원 웨이’ 정책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던져주고 있다.

그런 행태의 문 대통령이 탈(脫)원전 공약을 지키기 위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원전 백지화의 공론화 진행을 발표했다.

백년대계나 다름없을 국가 에너지 정책의 의사결정 기능을 국민에게 떠넘긴 셈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민주를 표방한 상습적 여론정치는 어쩌면 민주정치를 퇴행시키는 악습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때에 따라 만만찮게 반론이 나올 사안은 은밀하게 독단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 통합을 노동계에 약속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철도개혁을 위해 노무현 정부가 분리한 것을 뒤집겠다고 방향을 이미 정했다면 이후 과정은 보나 마나다.

이런 식이면 민심을 무겁게 받드는 건지, 여론 완장을 방패막이로 써먹으려는 건지 국민은 헷갈린다. 공론(公論)을 빙자한 공론(空論)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지금 대한민국이 원하는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한 본질적 변화가 진정 무엇인가 고민하고 이를 나침반으로 미래를 개척해가는 진정한 지도자다.

“여론이란 것은 없다. 공표된 의견만 있을 뿐”(처칠) “이 나라에서 여론은 모든 것이다”(링컨)처럼 정책과 여론의 연계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여론 수렴이나 국민 참여란 것이 듣기 아름답긴 해도 국론 분열의 소모전이 될 가능성 역시 다분함을 유념해야 한다.
 
국가 지도자의 힘은 여론 편승이 아니라 통찰력과 강한 책임의식의 리더십에서 나오는 것이다. 리더는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그것이 리더가 존재할 이유다.

갈대 같은 여론에 기댄 갈대 같은 리더십이라면 그 나라의 앞길은 무성한 갈대숲에 파묻힐 게 뻔하다. 정치는 여론조사나 높은 지지율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지율이라는 게 연예인 인기차트처럼 거품 같다는 것을 문 정권은 모를 리 없다.

국민의 뜻만 내세운다면 입법부가 무슨 필요가 있고, 대통령이 필요한가. 다시 언급하지만, 정치는 여론조사나 높은 지지율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코드에 ‘탕평과 소통과 협치’ 라는 색깔을 입히는 건 베풂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고속도로에서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 경력만 믿고 출발하는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을 보며 기대보다는 우려를 갖게 되는 것은 그만큼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드 문제를 비롯한 군 사병월급 50% 인상, 최저임금 16,4%로 인상에 따른 파급효과, 북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에도 강경대응보다는  대화를 강조하는 정부 태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되니 더더욱 불안하고 불신의 벽만 높아지고 있다.

지지율과는 달리, 나라 걱정의 소리도 지지율 이상으로 높아만 가고 있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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